종말 앞둔 '초저금리 시대'.. 우리에게 닥칠 일은?

구성/뉴스큐레이션팀 2016. 11. 2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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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기정사실로 된 가운데, 한국에서는 벌써 금리 인상의 후폭풍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피부에 가장 먼저 와 닿는 위기는 대출 금리와 원·달러 환율의 상승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11월 들면서 폭등해 최고 5%대까지 올랐다. 1,300조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불안한 상황이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제로(zero)'에 가까운 금리를 유지했던 미국이 금리 상승을 논하게 된 배경과,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정리해봤다.

*기사 속의 '금리'는 미국의 경우 연준이 정하는 정책금리, 한국의 경우 한국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

트럼플레이션 + 美 연준의 이중 공격

채권 투자자들 경악하게 한 '트럼프 발작'

금리는 정말 신(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자 여의도 증권가의 표정은 둘로 나뉘었다. 비명을 지른 쪽은 주식시장이 아닌 채권시장이었다.

사실, 만에 하나 트럼프가 당선되면 채권에 돈이 몰릴 거라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채권은 비교적 안전자산에 속하기 때문이다. 채권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기존에 투자자들이 보유한 채권의 가치는 높아지고 금리는 떨어진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한 채권 금리는 일주일 새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약 1,752조 원의 손해를 안겼다. 그야말로 '트럼프 탠트럼(tantrum·발작)'이었다. ▶기사 더보기

'트럼프 발작' 뒤에 있는 '트럼플레이션'

전 세계 채권 금리의 급격한 상승에는 트럼프가 유발할 인플레이션, 즉 '트럼플레이션(Trump+Inflation)'에 대한 우려가 담겨있다. 대선 전 트럼프는 1조 달러를 풀어 인프라에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밝혔었다. 대규모의 돈을 푼다는 건 화폐가치의 하락을 의미하고 이는 곧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채권의 경우 만기때 받을 원금과 이자액이 정해져 있는데,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기사 더보기

옐런 美 연준 의장 "금리 정상수준으로 돌리겠다"

미국 금리를 결정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eral Reserve Board of Governors)의 재닛 옐런 의장은 올해 8월부터 꾸준히 금리 인상 발언을 내놓고 있다. 옐런 의장은 금리 인상을 해도 되는 이유에 대해, 미국의 실업률이 3개월 연속 5%를 밑돌고 있는 데다가 경제 상황이 개선되는 지표가 꾸준히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리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이 8년여간 지속해 온 저금리가 비정상이란 뜻과 같다.

당초 9월 정도로 예상됐던 미국 금리 인상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인플레이션 정책'에 맞서, 다음 달인 12월에 금리가 인상될 거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옐런 의장은 지난주에도 "비교적 빨리 미국 금리를 인상하는 게 적절하다"고 했고, 그녀의 발언 이후 달러 가치는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도 5개월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기사 더보기

미국의 초저금리, 언제부터 시작됐나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줄곧 금리를 0%대로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초저금리 정책은 다른 국가들에게도 '제로 금리'를 유발했다. 심지어 일본과 유럽에서는 제로 금리보다 더 낮은 '마이너스 금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마이너스 금리'란 돈을 맡길 때 이자를 받는 대신 수수료를 내야 하는 상태를 뜻한다.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2011년 무렵부터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5%대 금리가 0%대로 떨어지기까지…

2004~2007년

■ 초저금리 시대의 서막,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00년 이후 미국은 지속적으로 금리를 내리는 저금리 정책을 펴기 시작한다.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등으로 경기가 악화하자 자금의 유동성을 높여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돈이 주택시장으로 대거 흘러가기 시작했다. 개인들은 금리가 낮아진 틈을 타 대출을 통해 집을 구입했고, 부동산 가격은 급격히 올랐다. 미국의 금융회사들은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하며 이에 동참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2007년에 와서야 터졌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이 집값 거품을 바로잡기 위해 기존에 1%대이던 금리를 5.25%로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돈을 빌린 저소득층은 금리가 오르자 더 이상 대출금을 갚을 수 없었다.

2008년

■ 서브프라임의 나비효과, 글로벌 금융위기

저소득층에 무분별하게 주택자금을 대출해줬던 미국의 금융회사들은 줄줄이 파산하기 시작한다. 150년 역사의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도 이 사태로 무너졌다. 당시 리먼의 부채 규모는 6,130억 달러로, 터키의 GDP와 맞먹을 정도였다. 이러한 리먼이 파산하자 전 세계의 금융 시스템이 마비됐다. 기업과 개인은 대출을 받을 수 없었고 돈이 돌지 않았으며, 세계는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지게 된다.

2008~2014

■ 금리 내리고 돈 풀고, 버냉키의 긴급 수혈

금융위기 당시 미국 연방의 의장이던 벤 버냉키가 가장 먼저 손을 댄 건 금리다. 2008년 연 4.25% 수준이던 금리는 7번의 통화정책회의 끝에 0~0.25% 수준으로 대폭 하락했다. 금융위기 여파로 막힌 돈줄을 풀기 위한 조치였다.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버냉키는 재임하는 6년간 세 차례의 '양적완화(QE·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편다. 양적 완화란 중앙은행이 국채나 회사채를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것인데, 금리 인하만으로 경기 부양 효과가 없을 때 사용하는 정책이다. 미국 연준이 세 번의 QE를 통해 푼 돈은 4조 달러, 우리나라 GDP의 3배가 넘는 규모였다. 2014년 버냉키의 후임으로 취임한 옐런은 금리를 0.25% p 올리며 '제로금리'의 종지부를 찍었지만 여전히 저금리 기조는 유지하고 있다. ▶기사 더보기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흔들리는 한국

■ 2년 만에 年 5% 돌파한 주택 대출 금리

지난달부터 주택 담보대출 상담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이달 들어 훌쩍 뛴 금리 때문에 깜짝 놀랐을지도 모른다. 10월 말 연 2% 중반대이던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약 3주만에 평균 3%대로 뛰었기 때문이다. 일부 상품은 금리가 연 5%까지 치솟았다. 2억 원을 대출받는다고 했을 때, 금리가 0.5% 뛰면 이자 부담은 1년에 100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

정부, 빚 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더니…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국은행은 총 6번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면 소비도 증가할 거라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발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저금리가 지속되자, 갈 곳 없어진 투자 자금은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긴 했다. 그러나 이것이 소비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국민들이 빚을 내 집을 산 탓에 가계부채가 늘었고, 소비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기사 더보기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300조 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올라갈 경우, 원리금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거나 집을 급매물로 내놓으며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을 가능성이 있다.

*기준금리는 그대로인데, 대출금리는 왜 오를까?

은행들은 대출 규제 강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가계부채 규모가 과도하게 커져, 금융당국이 대출의 공급 자체를 줄였다는 것. 수요는 같은데 공급이 줄어드니 대출 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금리 상승기를 틈타 은행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출금리를 올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기사 더보기

■ 한국 시장 빠져나가는 외국인들

트럼프 당선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자금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보통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신흥국 시장(EM)보다 선진국 시장(DM)을 선호하는데, 우리나라는 신흥국 시장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금처럼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내달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경우, 외국인 자금 이탈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면 주가는 그만큼 떨어진다.

*금리가 오르면 왜 외국인 자본이 이탈할까?

외국인들은 현재 미국 금리(0.25~0.50%)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 금리(1.25%)를 보고 한국의 주식시장에 투자한다. 고금리에서 수익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미간 금리 차이가 좁혀지며 외국인 자금이 국내에 머물 요인이 약해진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한국의 금리도 따라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여기에 지금과 같은 달러 강세(원화 약세) 상황이라면 환차손(환율 변화로 인한 손해)까지 감당해야 하므로,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국 주식시장을 빠져나가는 게 유리하다.

■ 한계 상황에 내몰릴 기업들

미국 금리 인상에 앞서 숨죽이고 있는 이들이 또 있다. 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들과, 저금리 기조 아래 중장기적으로 상환할 목표로 빚을 진 중소기업들이다. 장기적으로 이어진 저금리는 가계빚뿐 아니라 이처럼 부실한 기업들도 대거 키웠다. 조선·해운·철강 등 구조조정에 들어간 한계기업들도 금리 인상으로 인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은행들은 3년 동안 이자 비용을 납부하지 못할 만큼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을 한계기업으로 분류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러한 한계기업은 3,278개에 달했다. 특히 이 중에는 중소기업이 2,750여 개에 달해 더욱 위험한 상황이다.

한국은행의 딜레마

미국의 금리 인상 조짐에 따른 한국은행의 반응은 어떨까?

한국은행은 미국 대선 이후 채권 금리가 급등하자, 직접 시장에 개입해 국고채 1조 2700억 원을 사들였다. 금리가 오르면서 채권 가치가 떨어지니, 공급량 자체를 줄여 가격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한은의 국고채 매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8년 만이다. 한은은 이후에도 금리 급등세가 계속되면 추가 매입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리 인상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다. 사실상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딜레마 상태에 빠져있는 것과 같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본 이탈을 막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이럴 경우 1,300조라는 가계부채 뇌관이 터질 수 있다. 한은의 추산에 따르면, 금리가 1% p만 올라도 '한계가구'가 8만 8000여 가구 더 늘어나게 된다. 한계가구란 금융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고 가처분소득에서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는 가구를 뜻한다.

당장 다음달에 미국 금리가 인상된다고 한국 금리가 똑같이 오를거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세계 경제가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 장기적으론 금리 상승세를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0%에 가까운 '초저금리'가 경기 부양을 위해 일시적으로 쓰이는 정책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언젠가 금리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맞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취약계층의 빚 상환 능력을 점검하고 이들의 상황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오랫동안 낮은 금리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제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저금리의 시대'에서 빠져나올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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