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하게 살아온 삶.. 빚 갚는 심정으로 쓴 詩"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2016. 11. 2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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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시집 낸 전원책 변호사]
보수 논객으로 알려져 있지만 1977·1990년 등단한 시인
새·개·고래 등 다양한 동물 등장, 현실 풍자.. 自省 시도하기도

정치 평론가로 활동 중인 전원책(61) 변호사가 시집 '나에게 정부(政府)는 없다'(포엠포엠)를 냈다. 현재 TV조선에서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를 진행하는 전 변호사는 원래 시인이었다. 경희대 법학과 재학 중 1977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가 1981년 군 법무관에 임용돼 한동안 문단을 떠났다. 하지만 틈틈이 시를 썼다가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재등단 절차를 밟았다. 이듬해 변호사 사무실을 열면서 첫 시집 '슬픔에 관한 견해'를 내기도 했다. 변호사와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느라 시에 전념하진 못했지만, 시를 완전히 놓진 않았다.

25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 전원책 시인은 "다시 시를 쓸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왜 사느냐'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대여섯 차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 그는 우화(寓話)를 연상케 하는 시를 통해 자신의 삶과 오늘의 세태를 그려냈다. 새, 개, 소, 고래 등 다양한 동물을 등장시켜 현실을 풍자하는 수사학을 선택했다. 특히 '개'가 자주 등장했다. '낮술' 연작시에서 '세상 어디에도 개들은 있다'라며 현실은 '개판'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그는 '한때, 나는 개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적선을 구하고 교미하고 밥을 훔칠 때엔 나는 그들의 동지였다. 개들도 가르마를 타고 안경을 거만한 모자를 쓰기도 한다. 그래 봤자 개다!'라고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전원책 시인은 "우리 시대엔 누구나 자본과 권력을 욕하지만, 저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자본과 권력을 핥을 수밖에 없다"라며 "남들을 '개'라고 욕하는 나도 '개'가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보수 논객으로 불리는 그는 TV 토론에선 공공의 적(敵)을 가리켜 "단두대에 보내야 한다"며 '과대망상'이 담긴 우스개를 종종 터뜨려 왔다. 그러나 시인으로선 '눈 잃고 생각 잃는 일은 늘 있다. 인생이 그렇다'며 자기모멸에 빠진 지식인이 돼 자성(自省)을 시도한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보수/진보' 이분법에 대해 그는 "보수든 진보든 각자 이념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나름대로 다 정의를 추구하니까 존중받을 수 있다"라면서 "그런데 생계를 위해 이념을 이용하는 앵벌이 '개'들이 보수와 진보 양쪽에 다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개'들은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다. 그 '개'들이 권력을 획득한 뒤 사유화하기 마련"이라는 것.

그런 '개'와 달리 '고래'는 전원책의 시 세계에서 숭고한 삶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세상 어디에도/ 박제가 되어 있는 치사한 고래는 없다/(중략)/ 고래가 태평양이라는 어마어마한 물을 마시고/ 토해놓는 동안/ 아직 한 차례도 낚시줄에 걸려들지 않는 것은/ 미끼라는 놈보다는/ 좀 나은 상상을 즐기기 때문이다.'(시 '고래' 중에서)

전원책 시집의 마지막 부분은 17편의 연작시 '심우록(尋牛錄)'으로 꾸며졌다. 그는 "소는 본연적으로 선(善) 심성을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날 밤/ 문득 소를 타고 찾는 손님 있으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차를 내어 놓겠느냐'라고 노래했다. 풍자와 해학이 중심을 이룬 시집의 마무리를 '구도(求道)의 노래'로 장식한 까닭에 대해 "내가 구도자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천박하게 살아온 것에 대해 빚을 갚는 심정으로 시를 썼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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