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예복합아파트, 예술가·아파트 모두 윈윈"
‘주상복합아파트’는 상가와 주거 공간이 공존하는 모델이다. 1층에 상가 대신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상을 만드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들어찬 ‘주예복합아파트’는 어떨까.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임대료가 올라 기존 세입자가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한국에서 예술가뿐 아니라 정책 당국자에게도 발등의 불이 됐다. 서울 마포구는 서교동·상수동·합정동 일부를 포함한 홍대 일대를 관광특구로 지정하려던 계획을 최근 연기해야 했다. 싼 임대료를 찾아 모여든 예술가가 부동산 가격이 올라 다시 주변으로 밀려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자 예술가들이 강력 반발한 때문이다. 대안은 없을까.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사회적 기업 ‘애크미 스튜디오즈(ACME·이하 애크미)’ 공동설립자 데이비드 팬톤(68) 대표를 지난 23일 만났다. 그는 서울문화재단이 젠트리피케이션과 예술가 복지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서울시 창작공간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했다. 애크미는 1972년 예술가들이 작업 공간(스튜디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조직이다.
애크미는 2000년대 들어 젠트리피케이션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흥미로운 변신을 했다. 부동산개발업자와 손잡고 신개념 아파트 공급에 나선 것이다. 배랫홈즈, 텔포트홈즈, 카탈리스트하우징 등 유수의 업체와 함께 애크미가 지은 주택은 ‘주예복합아파트’라 할 수 있다.
팬톤 대표는 “폐공장 부지 등에 아파트 건설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가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부동산개발업체에겐 애크미가 필요한 존재였다”며 파트너십을 ‘정략결혼’에 비유했다. 런던 동부 사우스워크 폐공장 부지에 배랫홈즈와 협력해서 지은 ‘갤러리아 스튜디오’를 사례로 들었다.
“인근에 인쇄공장이 있고 총기사고 빈발하는 등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었죠. 예술가가 입주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어요. 그들이 우리를 원했고 반값에 주면 참여하겠다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이곳엔 아파트 100세대와 예술가 스튜디오 50세대가 들어섰다. 주로 볕 잘 드는 1층에 위치한 작가 스튜디오를 저가에 보유하게 된 애크미는 회화·조각·영상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예술가들에게 저렴하게 빌려준다. 임대료는 시중의 3분의 1수준이다. 그는 “예술가들이 입주한 이후 이미지가 좋아지고 카페 등이 생겨나면서 아파트 값이 올랐다”며 “작가들은 저렴하게 안정적인 작업실을 확보할 수 있어 모두에게 윈윈”이라고 강조했다.
애크미는 이런 방식으로 런던 동부 지역 16개 아파트 단지에 573개 이상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다. 애크미는 설립 초반에는 지방자치단체 소유 건물을 임대해 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을 제공해왔다. 1997년 정부복권기금 170만 파운드(약 25억원)를 지원받은 것이 전기가 돼 임대에서 소유 방식으로 전환했다. 정부 지원금으로 대형 건물 2개를 매입했고, 여기서 나오는 개발이익을 활용해 추가 건물을 매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내건 대처 정부 하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며 “영구적으로 부동산을 확보하면 추가로 개발사업을 벌일 수 있고, 그 이익으로 우리가 임대료를 통제할 수 있어 안정적인 작업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팬톤 대표는 “예술가 지원을 위해 정부가 작품을 사주는 것보다 작업 공간 같은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그래야 예술 활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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