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손학규, 親朴·親文 제외한 합리적 '제3지대' 추진
"탄핵 수습책 부실한 야당 책임의식 부족해
국회추천 총리가 개헌해 '7공화국' 열어야"
26일 저녁 6시 130만명의 인파가 몰린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까지 채 100m 남짓한 거리를 헤쳐나가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하얀 목도리를 두르고 촛불을 들고 있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이게 나라냐'고 써진 종이컵이 그의 촛불을 감싸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자 그에게서 나온 첫마디는 "12일은 모든 구호가 '하야'였고 19일은 '퇴진'이었는데 오늘(26일)의 구호는 '탄핵'이군요"였다.
매주 촛불시위에 나온 그는 민심의 향방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탄핵이나 하야까지는 바라지 않았다"고 입을 뗀 손 전 대표는 "이제 대통령이 물러나는 건 불가피하다. 탄핵 절차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치권이 탄핵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데 그런 논의가 부족한 것은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촛불을 들고 걸어가는 그에게 많은 시민들이 인사를 건넸다. 경기도 시흥에서 왔다는 한 시민은 손 전 대표와 악수하며 "이제 강진에서 나오셔야죠"라고 말했다. 오랜 팬이라고 밝힌 그가 손 전 대표의 정계 복귀를 몰랐을 리는 없고 본격적으로 전면에 등장해 달라는 요구를 돌려 말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종각으로 가는 도중엔 한 시민이 "사랑합니다. 총리 해주세요"라며 손 전 대표의 손을 잡았다. 손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든 와중에도 시민들은 손 전 대표를 향해 혼란스러운 시국을 정리해주길 부탁했다. 이날 매일경제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손 전 대표와 1시간가량 동행해 취재를 했다. 광화문광장에서 걷기 시작해 종각을 지나 무교동을 향할 무렵 많은 인파로 헤어지게 되기까지 그의 국정운영 철학과 촛불민심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 촛불집회 시민들 "孫, 총리 돼달라"
시민들이 손 전 대표의 손을 잡으며 총리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 이유는 통치불능 단계에 들어간 박근혜정부를 대신해 국정을 책임질 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권한대행을 맡은 고건 전 총리와 같은 위기 수습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손 전 대표는 이 위기정국을 안정시킬 책임총리로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앞으로 이어질 많은 정치적 격랑을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 현 총리가 넘기에는 역부족이란 점에서 그의 역할을 요구하는 인사들이 많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 엄정한 시국에 난마처럼 얽힌 정국을 풀고, 분노한 민심을 어루만져 줄 품 넓은 지도자"라고 극찬했고,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의 경륜과 식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총리를 맡으면 6개월 만에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 탄핵 이후 대비 없는 야당 비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정치권 분위기는 탄핵에만 집중돼 탄핵 이후에 대한 플랜이 없는 상황이다. 손 전 대표는 최근 "야당이 황 총리 권한대행 체제하에서 다음을 수습한다는 것이 탄핵과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인 것이냐"며 야당을 비판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대권도 그렇고, 정권 교체도 그러하지만 국민을 어떻게 보고 이 나라를 책임질 야당이 이 따위로 정국 수습책을 내놓고 있느냔 말이다"라며 "탄핵은 불가피한 국민의 요구지만 탄핵 절차에 들어갔을 때 이 나라를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대한 책임 의식이 국회, 특히 야권에 없다"며 야권을 비난했다. 손 전 대표는 이어 "국회는 체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의해 나타난 비선실세, 이러한 구체제를 청산하고 신체제를 준비해야 한다"며 개헌을 촉구했다.
손 전 대표가 내놓은 수습책은 국회 추천 국무총리가 거국내각을 구성해 과도정부를 이끌고 개헌을 해 제7공화국을 열어가는 것이다. 그는 "국무총리는 여야 합의로 선출하되 대통령은 국민 앞에 헌법 71조에 의거해 대통령 유고를 선포하고 모든 권한을 국무총리에게 넘긴다고 국민 앞에 공포한 뒤 국무총리가 개헌하는 대로 대통령이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손학규發 제3지대 재편 시작되나
이날 광화문으로 향하기 전 손 전 대표는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아침식사를 같이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얘기에 대해서 손 전 대표는 함구했지만 정 전 의장과 손 전 대표는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친박(친박근혜)·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에 대응하는 '대안(代案)' 정치세력을 형성해야 한다는 데도 의견 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대표 측은 "어제 열린 개헌 토론회에서 정 전 의장이 시간·장소를 제안했다"며 "둘 다 개헌 찬성론자라 개헌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개헌 등을 고리로 한 정계 개편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앞으로 야당 인사뿐만 아니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과 두루 접촉하며 외연을 확장할지도 주목된다.
■ He is…
△1947년 경기도 시흥 출생 △1965년 경기고 졸업 △1973년 서울대 정치학 학사 △1988년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1988~1993년 인하대·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2년 제14대 민자당 국회의원 △1996년 제15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 △2000년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02년 경기도지사 △2008년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2010년 민주당 대표 △2011년 제18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2016년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
[김태준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朴'운명의 일주일'..靑 3차사과 가능성
- "어둠은 빛을 못이긴다"..NYT등 외신 평화시위 극찬
- 전직 국회의장·원로 "朴, 내년 4월까지 하야해야"
- '삼성 합병'만 별도청문회라니..민주당 추진
- 길어지는 국정공백..공무원들이 목숨걸고 돌파하라
- 강경준, 상간남 피소…사랑꾼 이미지 타격 [MK픽] - 스타투데이
- AI가 실시간으로 가격도 바꾼다…아마존·우버 성공 뒤엔 ‘다이내믹 프라이싱’
- 서예지, 12월 29일 데뷔 11년 만에 첫 단독 팬미팅 개최 [공식] - MK스포츠
- 이찬원, 이태원 참사에 "노래 못해요" 했다가 봉변 당했다 - 스타투데이
- 양희은·양희경 자매, 오늘(4일) 모친상 - 스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