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을 못이긴다"..NYT등 외신 평화시위 극찬
◆ 전국 190만 촛불집회 ◆
눈비와 추위까지 뚫고 모여든 국민이 청와대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지 말고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촛불로 성이 안 찬 일부 시민들은 '횃불'을 들었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며 민심을 냉소한 정치와 검찰 조사에도 꿈쩍도 않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시민들의 답답함을 보여준 장면이다. 횃불은 안전을 우려한 시민들 목소리에 금방 꺼졌다.
이날 광화문에만 150만명(주최 측 추산), 전국적으로는 190만명에 달하는 헌정 사상 최대 인파가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으로 모여들었지만 큰 충돌이나 사고 하나 없었다.
밤 8시께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통의로터리 인근 경찰 폴리스라인 앞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머플러로 얼굴을 가린 40대 남성이 경찰에 시비를 걸고 헬멧까지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보던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을 데리고 시위에 나온 이동구 씨(48)는 "평화시위 합시다. 폭력시위는 안 됩니다"고 외쳤다. 주변 집회 참여자들도 이씨를 따라 '평화시위' 구호를 외치자 머쓱한 듯 40대 남성이 줄행랑을 쳤다.
이런 시민들의 평화시위 의지가 모여 총 5차례에 걸친 대규모 집회를 성공시키고 한국의 집회문화 역시 새로 쓰고 있다는 평가다.
서 교수는 "교수이기 전에 한 명의 시민으로 힘을 보태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최순실과 연루된 교수들이 다신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방학을 반납하고 광장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하루 종일 눈비가 몰아치면서 체감기온이 '확' 떨어진 날씨에도 촛불민심이 물러서지 않은 건 시민들 간 훈훈한 '나눔'의 온기 때문이었다.
경복궁역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길에 있는 한 카페는 오후 3시께 영업을 끝내고 시민들의 '쉼터'로 변신했다. 가게 유리창에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카페 매니저 이 모씨(38)는 "이곳까지 도달한 촛불집회를 본 것은 세월호 때 딱 한 번뿐"이라면서 "시민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따뜻한 물과 핫팩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무료 칼국수를 제공하는 식당도 나타났다. 종로 얼큰버섯칼국수의 맹충숙 씨(52·여)는 "평소 영업 때문에 집회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뜻을 같이하고 싶다"며 "원래는 100분만 한정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오시는 분 모두에게 온기 가득한 칼국수 한 그릇을 대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규남 씨(56)는 자신도 직업을 잃은 상황에서 통장을 탈탈 털어 추운 날씨에 부모 손 잡고 집회에 나온 꼬마들을 위해 '털모자'를 나눠 줬다. 박씨는 "TV를 보다가 아이들이 추위에 떠는데 너무 마음이 아파서 털모자를 가지고 광장으로 나왔다"며 "350개를 들고나왔는데 금방 다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계각층의 국민이 촛불집회에 나서고 전국적으로 19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집회에 나서면서 에리카 체노워스 미국 덴버대 정치학 교수의 '3.5% 법칙'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체노워스 교수의 주장은 간단하다. 역사적으로 한 나라 전체 인구의 3.5%(한국 인구 기준 180만명)가 시위에 참여하면 정권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외신들도 이날 촛불집회에 주목하면서 한국 시민들이 시위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호평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눈이 내리는 날씨에도 많은 시민이 모여 정권을 비판하는 집회를 했지만, 축제에 가까운 모습으로 평화적으로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연규욱 기자 / 유준호 기자 / 박재영 기자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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