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의 쿨투라4.0]"서럽다 뉘 말하는가"..안치환이 다시 묻는다

신혜선 문화부장 입력 2016. 11. 27. 16:28 수정 2016. 11. 27. 17: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7>"끝내 이기기라" 양희은의 외침, '너는 듣고 있는가" 뮤지컬 배우들의 분노..답은 명료하다

[머니투데이 신혜선 문화부장] [<17>"끝내 이기기라" 양희은의 외침, '너는 듣고 있는가" 뮤지컬 배우들의 분노…답은 명료하다]

26일 5차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에는 푸른 고래가 하늘을 날았다. 등에 노란 배를 싣은 고래는 아이들의 꿈을 함께 싣고 자유의 나라로 가려는 듯하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전경. '청와대 인간 띠 잇기'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저마다 촛불을 들고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사진제공=뉴스11

“쌍용자동차, 세월호, 백남기 농민까지 쓰러져가는 무고한 생명들에 대해 진정 가슴 아파하고 살았는지 반성한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다.”

26일 열린 5번째 대통령 퇴진요구 촛불 집회 현장. 가수 안치환이 김남주 시인의 ‘자유’와 정지원 시인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를 때까지만 해도 광장에 모인 촛불 시민들은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이미 촛불집회는 다른 의미로 축제가 아니던가.

하지만 안치환이 “이 노래는 꼭 부르고 싶다”는 짧은 소견 이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연주가 시작됐을 때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후 안치환의 노래가 이어지면서 숨죽인 울음과 흐느낌이 곳곳에서 들렸다.

"휴, 우리가 이 노래를 지금 다시 불러야 하다니." 지난 집회에서 가수 전인권의 애국가를 들으며 함께 부르며 흘린 눈물과는 또 다른 의미였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 학생. 1987년 6월 9일, 수평으로 쏘아진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끝내 사망했다. 스물둘 나이었다. 안치환은 이후 그를 추모하면서 이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

우리가 쟁취한 민주화의 역사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피를 먹고’ 자랐다. 이는 비유가 아닌 사실이다. 그해 1월엔 전기고문과 물고문으로 박종철(서울대 언어학과)이 죽었다. 87년 항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많은 국민이 죽었다. 시대가 만든 이런 죽음 앞에 우리는 ‘서럽다 뉘 말하는가’라며 슬프다고 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 광장에서 다시 부른 그 노래는 잊었던 부채의식을 고스란히 깨웠다. 21세기에도 공권력에 의한 죽음이 있다니.

나라는 부자가 됐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를 뇌까리며 산다. 민주화된 사회, 최소한 절차상 합리적인 시스템이 마련됐고, 과거보다는 공평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두 착각이었음을, 변화와 진보를 가장한 채로 이 나라는 여전히 부패했고, 그 중심엔 국민을 우습게 보는 권력이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면서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면서 상황을 즐기고 있음을 깨닫게 한 것이다.

설마, 21세기에도 우리가 공권력에 의한 죽음을 다시 보게 될 거라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설혹 불법집회였다 해도 공권력은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했다. 수평 최루탄과 마찬가지인 직사 물대포로 농민을 죽여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 나라의 가장 큰 자산인 아이들이다. 그들이 탄 배의 안전은 어떤 이윤과도 교환될 수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지켰어야 했다. 아이들이 산 채로 수장되는 걸 실시간 방송으로 봐야 했던 부모와 국민이 받은 충격에, 국가는 사죄하고, 사죄하고 또 사죄했어야 했다. 하지만 국가는 변명했고, 거짓말했다.

대한민국 현실에 안치환은 반성하고 속죄하면서 노래로 묻는다. 우리는 우리 이웃의 죽음에, 부당한 죽음에 진정 함께 아파했는가.

이날, 30명이 넘는 뮤지컬 배우들은 무대에서 ‘레미제라블’을 합창하며 '너는 듣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어떤 코멘트도 없이 노래만 부르고 간 양희은은 '상록수'로 '끝내 이기리라'고 외쳤다.

촛불 집회는 국가가 국민에게 한 거짓말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국민들의 몸부림이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다.

국민의 질문에 여전히 묵묵부답인 단 한 사람. 다시 예정된 담화는 그 답이 명료하고 분명하길 바랄 뿐이다. 그 답을 들을 때까지 국민은 지금의 촛불을 끌 생각이 전혀 없음을 재차 느낀 현장이다.

신혜선 문화부장 shinhs@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