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경복궁 찾는 국민들 '소지품 검사' 논란

2016. 11. 2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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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선글라스 남성’ 등 경복궁 정문서 소지품 검사
세월호 전단지 등 ‘정치 유인물’이라며 수거도
특정 시민 검문하고 있어 ‘불심검문’ 비판 거세

지난 23일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들. 유덕관 기자 ydk@hani.co.kr

“손에 들고 계신 유인물은 들고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11월5일 ‘2차 범국민대회’를 앞둔 오후, 경복궁 정문 앞에서 선글라스를 낀 남성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문 앞에 버티고 서서 입장권을 제시한 뒤 경복궁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었다. 손에 무엇인가 들고 있으면 발걸음을 제지당했다. 그의 복장이나 분위기는 위압감을 풍겼다.

기자의 손에도 사전 집회가 열리고 있는 광화문 광장을 지나오면서 받은 유인물이 들려 있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라는 문구가 쓰인 것이다. ‘선글라스 남성’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다짜고짜 “놓고 가라”고 말했다.

-왜 놓고 들어가야 하나?

“전단지를 들고 가 경복궁 안에서 시위를 할 수도 있어서 그렇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내가 시위를 할 수도 있다고 하는가?

“‘정치 유인물’을 갖고는 입장할 수 없다.”

‘선글라스 남성’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누구냐”고 묻자 뒤늦게 소속을 밝혔을 뿐이다.

경찰직무관리법 제3조는, 경찰이 국민을 불러 세워 소지품 검사를 하기 위해선 소속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글라스 경찰’은 끝까지 ‘경복궁 입장 불가’를 되풀이 해, 끝내 지목된 유인물을 ‘맡기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날 <한겨레> 토요일치를 들고 있는 시민들은 ‘정치적 유인물은 반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신문을 빼앗겨 논란이 된 바 있다. (▶ 관련 기사 : “정치적 유인물 안 된다”며 ‘한겨레’ 뺏은 경찰)

지난 12일과 19일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토요일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경복궁 정문에 검문하는 이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는 가방 검사까지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누리꾼은 “경찰들에게 가방 검사를 당했고, 세월호 추모 전단지와 스티커를 반입금지 물품이라며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추모 전단지도 ‘정치 유인물’로 간주됐다.

이렇게 경복궁 정문에서 전단지나 신문을 ‘정치 유인물’이라며 수거하는 것을 두고 경찰의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경복궁 정문에서 검문하고 있는 이들은 서울지방경찰청 산하로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202경비단 소속 경찰들이다.

경찰의 불심검문은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지속돼 왔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거리에서 경찰이 오토바이 운전자를 검문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이들은 일부 관람객들에게 ‘선별적 검문’을 실시하고 있다. 단체 관람객이나 외국인 관람객에 대한 검사는 느슨하게 진행된다. 특정인을 지목해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것은 ‘불심검문’에 해당하는데, 불심검문은 ‘그럴만한 상당한 혐의가 존재하는지’에 한해서만 진행될 수 있다. 청와대 정문에서 약 20m 떨어져 있는 신무문에서도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소지품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평소에는 관람객이 소지한 유인물이나 신문 등을 무분별하게 수거해가지는 않는다. 수요일인 지난 23일 신무문을 통과하면서 5일과 똑같은 물품을 들고 있던 기자의 소지품을 검사하던 경찰들은 이를 수거해가지 않았다. 촛불집회가 있는 날만 ‘정치 유인물’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2013년 경복궁 매표소 앞에서 ‘불심검문’을 받았다는 한 누리꾼이 경찰청에 민원을 제기하자, 경찰은 “청와대 인근 지역을 목표로 한 불법적 시위가 증가하고 있어, 위험물의 은닉이 용이한 가방을 소지한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검문을 실시하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청와대 100m 이내를 집회·시위 금지구역으로 설정하고 있는 집시법 제11조에 따르면, 경복궁 정문에서부터 시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시민들의 소지품을 반납하게 해서는 안 된다. 경복궁 정문은 청와대 100m 훨씬 바깥에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복궁을 통과하면 바로 청와대이기 때문에, 궁내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위험 물건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인물이나 신문이 ‘위험물건’인지에 대해선 별 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경찰이 정문에서부터 시위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아도, 경복궁 내에서 시위가 발생할 경우 경복궁관리소가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경복궁관리소 쪽은 “정문 소지품 검사 등은 경찰이 진행한 것이다. 별도로 관리소와 협조 없이도 경비를 담당할 수 있다”며 “관리소는 입장한 관람객이 궁 안에서 소란을 일으킬 경우만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시민 한 사람이 전단을 가지고 들어가 설사 시위를 한다고 해도, 1인 시위 개념이기 때문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경찰 관리 대상도 아니다”며 “경찰이 전단을 압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한 만큼 경찰의 과잉 통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경찰의 불심검문에 대응하는 방법 등이 공유되고 있다. 누리꾼들은 “일관성 없이 정부가 꺼려 하는 소지품을 수거하는 경찰의 행태가 매우 황당하다. 경찰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불심검문 대응 매뉴얼’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 배포한 ‘불심검문 대처 요령 수첩’의 내용1. 불심검문, 거부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이유 없이 강제로 검문을 하거나 법에 정한 요건을 지키지 않고 하는 검문은 거부할 수 있습니다. (경직법 3조1항, 7항) 2. 불심검문, 반드시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불심검문은 ‘임의 조항’ 입니다.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관은 검문을 받는 사람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며, 강제로 할 수 없습니다. (경직법 3조7항) 3. 불심검문과 임의동행 시, 경찰은 신분 및 목적, 이유, 장소를 밝혀야 합니다. 질문을 하거나 임의동행을 요구하는 경찰은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면서 소속, 성명, 목적과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경직법 3조4항) 4. 임의동행, 거부할 수 있습니다. 임의동행 역시 동의 없이는 불가능 합니다. 경찰관은 동행 장소를 밝혀야 하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고지해야 합니다. (경직법 3조2항, 4항, 5항, 6항) 5. 불심검문, 질문만으로 끝내야 합니다. 강제적인 신분증 요구와 신원조회는 거부합시다.불심검문은 수상함이나 범죄혐의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으로 끝나야 합니다. 신분증 요구와 신원조회는 강제할 수 없고, 소지품 검사는 외부를 만져보는 것까지만 가능합니다. (경직법 3조1항, 3항)



불심검문을 겪을 때, 경찰의 신분을 기억 기록해 둡시다. 위법한 불심검문에 대한 저항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유덕관 기자 yd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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