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제서야 "공개하라"..뒷북 판결
[경향신문] ㆍ나흘 뒤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발표’ 하는데
교육부가 공개를 거부한 국정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편찬기준)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소송 제기 후 시간을 끌다가,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과 집필기준 발표 예정일 나흘을 앞두고서야 뒷북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국정화 고시 발표 당시엔 투명성을 강조하며 집필진과 집필기준 공개 방침을 밝혔던 교육부의 말바꾸기에 이어 하나 마나 한 판결을 내놓은 법원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강석규 부장판사)는 24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조영선 변호사가 이준식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교육부가 2016년 7월18일 한 2015년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용 도서 집필기준 정보에 관한 공개 거부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교육부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정보가 공개된다고 하더라도 국정교과서 집필·심의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고도의 개연성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오히려 정보 공개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업무의 투명성과 공정성 등을 확보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과는 교육부 패소지만, 실효가 떨어지는 뒷북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조 변호사는 지난 8월2일 소장을 제출했다. 교육부는 11월1일에야 답변서를 냈다. 이미 10월 말 “11월28일 집필기준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뒤였다. 교육부는 재판부에 보낸 답변서에서 “집필기준이 공개되면 집필진이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조만간 공개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재판부는 이 답변서를 보고도 12월에 선고하겠다고 했다가, 원고의 항의를 받고 선고일을 조정했다. 12월에 선고했다면, “이미 집필기준이 공개됐다”는 이유로 소송은 각하처리됐을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3일 국정화 고시 발표 때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하겠다”며 “집필진과 집필기준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대표 집필진 중 한 명인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의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자, 모든 정보를 비공개로 바꿨다. 교육계와 시민사회의 공개 요구에도 교육부가 집필기준을 공개하지 않자, 조 변호사는 지난 6월23일 교육부에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조 변호사는 “정보 공개 청구소송은 시급을 다투는데 정부는 소송에 지연작전을 쓰고, 재판부는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다가 뒤늦게 판결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조 변호사는 “정부가 주요 정책 정보를 최소한으로만 공개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정보 공개 청구소송인데, 법원이 이런 식으로 재판을 하면 소송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집필기준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지난 9월 집필진 비공개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선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다.
<장은교·이혜리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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