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장] 광장과 밀실의 음악적 저항 / 조은아

2016. 11. 2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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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란 비장한 제목을 가진 피아노 변주곡이 있다. 변주곡을 작곡하기 위해선 우선 주제로 삼을 하나의 선율을 선택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리듬, 화성, 음형 등을 다양하게 변형해 완성하는데, 작곡가 프레더릭 제브스키가 선택한 주제선율은 독특하게도 저 비장한 제목을 지닌 칠레의 민중가요였다. 군부 피노체트의 독재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불렸던 이 대중적 노래는 아방가르드 작곡가에 의해 다양한 변주 기법을 탐색하며 웅숭깊은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빅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4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19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수 전인권이 노래하고 있다.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20세기를 대표하는 변주곡으로 손꼽히는 작품이지만 흔히 연주되진 않는다. 36개의 방대한 변주곡을 완주하려면 연주시간만 67분이 걸리는데다 연주자에게는 고도로 훈련된 테크닉을, 청중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음향을 감내할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나 웬만한 맷집으로 도전하지 않으면 패배를 면하기 힘든 높고 가파른 준령과 같은 작품이다.

광화문 시위 현장에서 만난 동료는 이 변주곡을 다시 연습하기 시작했다며 비장한 어조로 전해왔다. 엉킨 실타래처럼 불가해한 악절을 맞닥뜨릴 때마다 최근의 시국이 요동케 한 내면의 울분으로 헤쳐나간다는 것이었다. 주제선율이 담고 있는 뜨거운 가사도 그의 전진을 돕는다 했다.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수백만 민중은 진실을 완성하고 있다/ 일어나, 노래하라. 민중은 승리할 것이다.” 연습실 혹은 밀실에서의 고독한 저항이 다분히 피아니스트스럽다 서로 공감하는데, 광장 저 멀리서 전인권이 부르는 상록수가 들려왔다.

‘걱정 말아요, 그대’와 ‘애국가’로 이어진 노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청을 함께 울리며 뜨거운 저항을 결속하고 있었다. 가수 전인권은 어눌한 목소리로 이렇게 당부했다. “이 광장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단식으로 투쟁하던 세월호 유족 옆에서 피자를 먹던 이들이 혐오스럽더라도 무력으로는 싸우지 말자. 한 대 때리면 맞자.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맞으며 버텼다.” 평화적 저항을 설파하던 그는 마지막 곡으로 ‘행진’을 불렀다. 광장을 가득 채운 60만이 온 마음을 다해 부른 그 노래는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정신을 한데 담아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었다.

그렇게 광장의 연대와 밀실의 투쟁 사이에서 여러 생각이 뒤엉킬 즈음, 오케스트라로 저항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청년을 만났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며 플래시몹으로 동 띄워낸 이 음악적 사건은 ‘하야든 탄핵이든’이란 기치를 내세우고 있다. 함께 모인 100여명 연주자의 면면은 퍽 다양하다. 전문 연주자에서부터 대학교 연합 오케스트라 단원,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는 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음악애호가들이 함께 일구어갈 무대라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음색은 광장의 연대와 어떻게 조우할 수 있을까. 이 음악적 저항은 12월3일(토) 오후 3시, 광화문광장에서 널리 울려 퍼질 예정이다.

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던 귀갓길, 지하철의 거대한 인파에 휩쓸려 옴짝달싹하지 못할 때 등 너머 누군가 이게 다 ‘정운호의 나비효과’라 신기해하는 대화가 들렸다. 나는 뒤돌아 아니라 대답하고 싶었다. 수장된 세월호의 아이들이 7시간을 분연히 끌어올리고 있지 않는가. 이 연대와 저항은 진도 앞바다로부터 출발한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일지 몰랐다. 그리고 윤민석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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