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과 엮이느니 '무능한 바보' 되겠다는 김기춘

이유진 2016. 11. 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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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일 언론 5곳과 동시다발 인터뷰
"최순실 전혀 모른다" 부정으로 일관
"대통령 측근 비서들이 귀뜸 안해줘
무능하다 하면 할 수 없지만, 몰랐다"

[한겨레]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18~22일 <연합뉴스티브이(TV)> <중앙일보> <한겨레21> 등 5개 매체와 동시다발적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지난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기자들을 만나 “최순실을 만난 적도 없고 통화한 적도 없다”고 말한 뒤 침묵하던 그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자기 변호에 나선 모양새입니다.

김 전 실장이 누구입니까.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며’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리던 ‘왕실장’ 입니다. 최순실씨가 청와대를 멋대로 들락날락하며 국정을 농단하던 바로 그때, 김 전 실장은 청와대에 있었습니다. ‘세월호 7시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사람으로도 김 전 실장이 가장 먼저 꼽힙니다.

최근 공개된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과 구속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등의 진술 등이 ‘최순실-김기춘’ 연결고리에 대한 의심을 더 키우고 있기도 합니다. 그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푸는 핵심 퍼즐로 지목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그는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까맣게 몰랐다”고 주장합니다. 연합뉴스TV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공식적인 일만 했고 관저나 대통령 측근 비서들이 내게 귀뜸을 안 해줬다. 모르는 것이 무능하다고 하면 할 수 없지만, 실제로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의혹들에 대해서도 대부분 부인으로 일관했습니다. 최순실씨와 엮이느니 ‘무능한 바보’가 되겠다는 그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소개합니다.

■ “우병우·정호성이 최순실 국정농단 보고 안 해 몰랐다”

김 전 실장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연설문 연설 유출을 알았느냐는 질문에 “정호성이 했지. 만일 나에게 그런 보고 하면 내가 허락했겠나. 어찌 보면 내가 무능해 바보 취급 받았는지 몰라도 나는 몰랐다”고 답했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과 정호성 제1부속실장 등이 최순실씨에 대해 비서실장인 그에게 아무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연합뉴스TV 인터뷰에선 “최씨의 국정 개입을 까맣게 몰랐고, 그런 점에서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최씨와 정유라씨를 알게 됐다는 입장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동아일보>는 2012년 박근혜 후보 대선캠프에 참여한 한 인사의 말을 빌려 “김 전 실장이 최씨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오히려 가장 깊숙이 개입한 인물로 봐야 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김 전 실장과 함께 박 대통령의 핵심 자문그룹이었던 ‘7인회’의 한 인사는 “우리도 최씨를 알고는 있는데, 김 전 실장이 최씨의 존재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 “김종 전 차관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

김종 전 차관은 검찰에서 “2013년 취임 초 김 전 실장이 ‘만나보라’고 해서 약속 자리에 나갔더니 최순실씨가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김 전 실장은 18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그런 진술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필요하면) 대면해서 확인할 수도 있다”고 하더니, 22일 한겨레21 인터뷰에선 “내가 최순실을 모르는데 어찌 소개하겠나. 그사람 (정신적으로) 돈 것 아닌가 싶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22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는 “제 정신인가 싶다.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더를 받았다면 몰라도”라며 의혹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습니다.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도 검찰에서 “송성각 전 콘텐츠진흥원장이 선임되기 전 그를 김 전 실장에게 소개, 청와대에서 만나게 해줬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전 실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그런 적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는 “청와대에서 만났다면 출입기록이 다 남아 있을 것이다. 조사해보면 밝혀질 일”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2015년 2월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앞서 티타임을 가지며 박근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최태민 만난 적도, 최순실 만난 적도 없다”

1970년대 중앙정보부 재직 당시 최태민을 직접 조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김 전 실장은 한겨레21에 “나는 간첩수사를 담당하는 대공 수사국장이었고, 국내보안국인 6국이 최씨를 조사했다는 소문은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최태민을 접촉하거나 불러 조사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1987년 육영재단 분규 당시 최태민을 여러차례 만나 도와줬다는 의혹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최태민과 달리, 최순실씨와의 연결 의혹은 보다 구체적입니다. 2006년 9월 당시 박근혜 의원을 수행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최씨와 전 남편 정윤회씨가 동행했고, 최씨 소유 빌딩을 자신의 사무실로 사용했으며, 2013년 8월 초 박 대통령의 ‘저도 휴가’에 최씨와 같이 갔다는 의혹입니다.

먼저 김 전 실장은 독일 동행 의혹에 대해 “전혀 기억이 없다. 왔는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저도 휴가’ 동행설에 대해선 한겨레21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그해) 7월16일 노인 전립성비대증 수술을 받았다. 50일간 출혈이 있었고 통증이 심해 집에서 요양을 했다”며 ‘허구’라고 주장했습니다. 동아일보에는 “헛소리, 픽션”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실 사용 의혹과 관련해선 “예전부터 청와대 들어가는 날까지 내수동 대우빌딩 사무실을 썼다. 근 20년 가까이 있었다. 처음 의혹을 제기한 사람을 이미 형사고소했다”(한겨레21)고 말했습니다.

‘일본 차움의원 줄기세포 치료’와 최씨와의 관련성을 묻자 “합법적인 치료에다 돈은 병원에서 내라는 대로 냈다. 최순실 소개 없으면 병원도 못 가는가”라며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2014년 6월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앞서 수석비서관들과 티타임을 갖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 “김영한 내 말 잘 안 들어…비망록 내용 내 지시 아냐”

우병우 민정수석과 정호성 비서관은 보고를 안 했다고 하더니, 김 전 실장은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 근무 시절 비서실장인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중앙일보)고 주장했습니다.

<티브이조선>(TV조선) 등은 숨진 김 전 수석 가족으로부터 ‘김영한 비망록’을 입수해 김 전 실장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산케이신문> 지국장 수사 등을 지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에게 “대통령 위치 알려고 하지 마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비망록만 보자면 김 전 실장은 청와대 안에서 ‘큰그림’을 그리는 ‘설계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고인에게 뭐한 얘기”라면서도 “내가 지시를 했어야 나의 행위이지, 그건 나의 행위가 아니었다”며 비망록 내용을 부인했습니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해서도 “그런 걸 만들어라 말라 한 적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세월호 당일 비서동에…대통령 한참 떨어져 있어 대면보고 못해”

한겨레21은 김 전 실장에게 세월호 당일 청와대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했습니다. 김 전 실장은 그날 비서동에 계속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박 대통령을 만난 것은 대통령을 수행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간 오후 5시께입니다. 그 전까지는 모두가 알다시피 서면보고만 계속했는데요, “관저에 가서 대면보고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질문에 “보고서는 계속 올라갔다. 그 때는 김장수 안보실장이 계속 보고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래도 반드시 급히 대면보고를 했어야 하지 않냐”고 거듭 묻자 그제서야 “그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지 않았겠는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면보고를 하려면 대통령이 한참 떨어져 있어 차 타고 한참 가야 했다”고 나름의 이유를 밝히는데요, 차로 관저까지 2분밖에 안 걸리지 않냐고 되묻자 “우리로선 보고 철저히 하느라 계속 (서면보고) 했으니까”라고 말하며 답변을 끝냈습니다.

최근 불거진 세월호 당일 박 대통령의 시술 의혹에 대해선 “여성 대통령이라, 그런 걸 묻는 건 결례라고 생각했다”(중앙일보)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묘한 답변을 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8월8일 청와대에서 김기춘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박근혜 대통령 나한테 연락 없다”

청와대가 ‘100만 촛불’의 요구를 외면하고 계속 ‘마이웨이’를 걷는 것을 두고 ‘막후 지휘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습니다. 박 대통령에게 지금까지 계속 자문하는 것 아니냐는 중앙일보 질문에 김 전 실장은 “10월29일 새누리당 상임고문단 자격으로 대통령 초청을 받아 한 마디 한 게 전부다. 안 믿겠지만 박 대통령이 연락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김 전 실장과 박 대통령의 인연을 생각해보면 그의 말마따나 믿기 힘든데요, 그는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이 포함된 ‘친박 원로 그룹’ 7인회에 속해 있고,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는 박근혜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뒤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요. 더 거슬러 올라가 1974년 육영수씨가 피살됐을 당시, 공안검사로 육영수씨를 쏜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내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유신헌법’ 제정 과정에 참여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5번의 인터뷰에서 그는 의혹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것을 촘촘하게 막으려 애쓰는 모습입니다. 이를 위해 부하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합니다. “50여년 공직 생활이 하루 아침에 온갖 조롱의 대상이 됐다”(중앙일보)는 심정을 토로하지만 스스로 ‘무능’이라는 말을 여러 번 꺼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과 3선 의원을 지낸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의 말입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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