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민심에 결국 굴복.. 버티면 상처 커진다

전수민 기자 2016. 11. 23.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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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와 탄핵 사이.. 닉슨과 호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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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의 중심에 선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피의자가 됐다. 한 달째 전국에서 하야 요구가 들끓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차라리 탄핵하라”고 버티며 수사 결과까지 부인하고 있다.

죄를 짓고 직위를 사수하려 한 외국 정상들도 있었다. 하지만 민심과의 줄다리기 끝에는 늘 처참한 말로가 있었다. ‘워터게이트’를 일으킨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국민에게 거짓 해명을 하고 혐의 덮기에 급급하다 1974년 하야했다. ‘브라질 최초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68)는 지지자들을 모아 탄핵 반대 시위까지 벌이며 국민에 저항하다 결국 의회에 의해 지난 8월 탄핵됐다. 닉슨과 호세프가 물러날 당시 지지율은 각각 24%, 8%였다. 3주 연속 지지율이 5%에 그친 박 대통령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특검까지 해임하다 하야

닉슨은 ‘워터게이트’로 탄핵이 확정되기 직전 하야를 택했다. 그는 거짓말을 반복하며 신뢰를 잃었고, 미 역사상 유일하게 하야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1972년 6월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입주한 워싱턴DC 워터게이트 호텔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던 5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된 게 시작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가 범인에게서 백악관 보좌관의 연락처와 수표가 나왔다고 보도했으나 파장이 없었다. 사건은 단순 침입 사건으로 무마되고 닉슨은 그해 11월 재선에 성공했다.

상황은 1973년 5월 상원 워터게이트 위원회가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를 열면서 달라졌다. 백악관 보좌관 알렉산더 버터필드가 수사 방해를 지시하는 닉슨의 육성이 녹음된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그해 10월 닉슨은 ‘국가 안보’를 내세워 특검의 테이프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오히려 특검을 해임하라며 검찰 길들이기에 나섰다. 법무장관과 차관은 지시에 불복해 사임했다. 언론은 이 일을 ‘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기록했다.

국민은 도청 자체보다 닉슨의 태도에 분노했다. 하원이 탄핵안을 통과시켰는데도 닉슨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해 11월에는 “나는 사기꾼(crook)이 아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1974년 4월에는 테이프 대신 편집된 녹취록을 제출하는 꼼수까지 부렸다.

그해 7월 24일 연방대법원은 닉슨에게 테이프 원본 제출을 명령했다. 이어 상원이 27일부터 사법방해, 권력남용, 의사모독에 대한 탄핵안을 모두 가결했다. 결국 닉슨은 탄핵 확정 직전인 1974년 8월 9일 하야했다. 이마저도 제럴드 포드 부통령에게서 사면을 약속받은 ‘조건부 하야’였다. 그는 전날 연설에서 “개인적인 변호를 위해 몇 달을 더 싸우면 대통령과 의회의 시간과 관심만 빼앗을 것”이라면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재임 직후 70%에 육박하던 지지율은 하야 당일 24%로 주저앉은 상태였다.

측근 부패 눈감았다 탄핵

2011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호세프는 선심성 복지 정책을 통해 2014년 10월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12월 검찰이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에서 수년간 3조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호세프의 측근을 포함한 집권 노동자당 정치인 등 36명을 기소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최악의 경제난에 시달리던 국민들은 호세프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호세프가 혐의를 부인하며 꿈쩍도 하지 않자 야당은 지난해 9월 탄핵안을 제출했다. 이어 그해 10월 연방회계법원이 호세프 정부가 재정회계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2014년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영은행에서 불법 대출한 돈을 제때 상환하지 않은 혐의였다. 국영은행 돈이 모두 복지에 쓰였으므로 호세프 본인의 잘못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측근 비리에 성난 민심을 돌릴 길이 없었다.

이 판결로 탄핵에 속도가 붙었지만 호세프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탄핵 시도를 ‘쿠데타’라고도 주장했다. 지지자들은 탄핵 반대 시위를 벌이며 호세프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호세프가 저항할수록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 시위는 더욱 확산됐고, 결국 지난 8월 탄핵이 최종 확정됐다. 탄핵 찬성파가 압도적이어서 탄핵은 사실상 기정사실화돼 있었다.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었는데도 무리하게 몇 개월을 끌었다. 호세프는 탄핵 과정을 통해 브라질 정세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글=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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