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민 기만 '사용후핵연료 법률안'

장정욱 | 일본 마쓰야마대학 교수 2016. 11. 22.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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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가적 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뒷전에서 국민을 우롱하면서 기득권 유지 및 확대를 꾀하려는 무리들, 즉 ‘핵마피아’가 설치고 있다. 정부가 국무회의를 거쳐 지난 2일 국회에 제출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절차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법률안)에 관한 이야기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작성한 이 법률안은 국민들의 안전과 이익을 완전 외면한 규정으로 가득 차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근본적 해결책이 없어 수십만년 동안 미래세대의 안전을 위협할 물질인데도, 정부는 그동안 무관심 및 무책임으로 일관해 왔다. 법률안은 이와 같이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를 무시하고 핵발전소 추진에만 몰두해 온 정부가 최종처분장 선정을 둘러싸고 최초로 ‘제도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물로 추측된다. 그러나 법률안을 보면 핵발전소에 대해 ‘값싸고 절대 안전하다’는 신화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해 온 핵마피아가 사용후핵연료 처분이라는 불량채권을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꼴이다.

법률안의 주요 문제점을 들어본다. 첫번째, 국민과의 합의형성 절차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핵마피아의 자의적인 결정으로 핵발전소보다 방사능 피해가 더 심각한 ‘재처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법률안은 ‘처분’을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인간의 생활권으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킨다’라고만 정의하고 있다. 재처리의 의미를 분명히 규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백해무익한 재처리를 하지 않으려는 산업부와 재처리로 기득권을 확대하려는 미래창조과학부 사이의 타협의 산물이 아닌가 의심된다.

사용후핵연료주기(사이클)는 핵발전소→임시수조→중간저장→최종처분장의 ‘직접처분’ 방식, 핵발전소→임시수조→중간저장→재처리→최종처분장의 ‘재처리’ 방식으로 나뉜다. 직접처분 방식에서는 그냥 ‘사용후핵연료’라고 부르는데, 재처리 방식은 재처리 공정 후의 고준위방사성폐액을 유리고화(固化)하여 폐기하는 것으로 사용후핵연료가 아니라 ‘고준위방사성(핵)폐기물’이라 부른다. 즉 법률안은 마치 재처리를 하지 않을 것처럼 ‘처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재처리를 의식한 고준위핵폐기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최종처분장을 논의하는 경우에도 폐기하는 대상이 사용후핵연료인지, 유리고화체의 고준위핵폐기물인지에 따라 처분방법 및 처분장 면적 등의 조건들이 바뀐다. 따라서 이런 기본적인 문제점도 고려하지 않은 법률안을 제출한 정부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한편 만약 정부가 법률안에 나온 처분의 정의를 지키려면,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진행 중인 파이로프로세싱법의 건식재처리는 물론 한·미 연료주기공동연구(JFCS)를 즉각 중지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여당 주도로 내년도 재처리연구예산으로 약 500억원이 책정되었다.

두번째, 법률안은 ‘외국의 관리시설에 저장 또는 처분, 그리고 설치 및 운영, 그리고 이외의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호주와 몽골 등에서 국제공동처분장의 건설 논의가 있었지만 해당 국가 내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대만이 북한으로 저준위핵폐기물의 이송·처분을 논의할 때 정부도 반대하지 않았던가? 설사 국제공동처분장이 건설되더라도 윤리적인 문제 및 국제적 비판 등에 관한 비용·편익 분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관료의 판단에만 기초한 안일한 법률내용으로 되어 있다.

세번째, 최종처분장의 부지선정 위원회의 위원선정(제5조)도 여전히 핵발전소 추진파인 산업부 입장을 우선하고 있어 정책에 비판적이거나 객관적인 제3자의 선정을 기대할 수 없다. 위원선정에서 공정성 및 공평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회가 3분의 2 이상의 위원 및 전문위원의 추천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종처분장 입지지역의 최종결정권도 국회가 가져야 한다. 정부 역할은 검토 결과의 제출까지로 한정하고 최종적으로는 국회가 심의·결정하여야 한다. 과거 최종처분장의 확보과정에서 일어난 입지지역의 갈등사례를 보더라도, 핵발전소 추진만 앞세워 온 장본인인 정부가 과연 지역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무책임한 법률안을 취소하고 신중한 검토를 통해 후행주기에 관한 명확하고 실행가능한 내용으로 수정한 법률안을 다시 제출해야 국민들이 납득할 것이다.

<장정욱 | 일본 마쓰야마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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