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의 '붉은 심장' 제라드, 그는 영원한 캡틴

오승종 2016. 11. 2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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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오승종 기자]

지난 16일, 미국 MLS의 LA갤럭시는 스티븐 제라드와의 결별을 공식 발표했다. 어느덧 30대 후반의 나이가 된 제라드에겐 현역 은퇴란 단어도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 뛴 1년 6개월 동안 34경기 5골 14도움을 기록할 정도로 그의 기량은 여전하다. 제라드는 개인 SNS를 통해 "내 커리어의 다음 단계가 어떻게 될지 나 또한 기대된다. 당분간 가족과 시간을 보내겠다"는 말을 전했다.

현재 다양한 언론들이 제라드의 향후 행보를 예측하고 있다. 영국 축구전문매체< 90Mi n >은 리버풀 전 감독 브랜든 로저스가 이끌고 있는 셀틱FC가 제라드의 유력한 차기 행선지라 보도했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인터 밀란과의 단기 계약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BBC는 제라드가 잉글랜드 3부 클럽인 MK돈스의 감독직에 접촉 중이라 전하기도 했다.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리버풀 복귀설이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제라드가 리버풀로 돌아와 유스팀 감독을 맡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았다.

리버풀과 제라드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다. 유소년 시절을 포함해 리버풀에서 무려 27년을 함께 한 제라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리버풀의 최고 레전드다. 길었던 리버풀에서의 커리어만큼이나 그가 붉은 유니폼을 입고 보여준 모습은 다양했다. 여러 포지션을 경험했고 수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현 바이에른 뮌헨 감독 안첼로티는 제라드의 다재다능함을 칭찬하며 그를 '완벽한 미드필더'라 부르기도 했다. 변화무쌍했던 리버풀 속 제라드의 대표적인 순간들을 추려봤다.

기적을 일군 멀티 플레이어
 기적의 발판을 마련한 제라드의 헤딩골.
ⓒ 리버풀
04-05 시즌은 리버풀과 제라드 모두에게 잊지 못할 시즌이었다. 리버풀은 물론이고 축구 역사상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명승부를 치렀기 때문이다. 리버풀은 당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AC밀란을 상대로 3-0 상황을 뒤집는 극장을 연출했다. 첫 번째 만회골이 바로 제라드의 헤딩골이었다. 제라드는 특별한 셀레브레이션 없이 팀원들을 독려하며 하프라인으로 돌아왔다. 이 골이 기점이 되어 리버풀은 끝내 3-3 동점을 만들었고, 승부차기 끝에 대회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을 가져갔다.

당시 제라드는 터프한 중앙 미드필더의 교과서였다. 넘치는 활동량을 바탕으로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는 박스 투 박스 역할을 수행했다. 투지 넘치는 태클로 수비를 보좌했으며 최정상급 중거리 슈팅 능력으로 상대편 골문을 위협했다. 뛰어난 기동력 또한 그의 무기였다. 다만 창조성이 뛰어난 미드필더는 아니었는데, 리버풀이 이 부분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제라드의 뒤엔 '대지를 가르는 패스'의 소유자 사비 알론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아직 젊은 선수였던 제라드의 멀티 플레이어적 기질을 엿볼 수 있기도 했다. 데뷔 초 여러 포지션을 경험했던 그는 팀을 위한 즉각적인 포지션 변화에도 능숙했다. AC밀란과의 결승전에서 역시 제라드는 경기 중간 오른쪽 풀백 자리로 이동했다. 3골을 실점한 밀란이 세르지뉴를 투입해 리버풀의 측면을 공략했기 때문이다. 제라드는 부상으로 빠진 측면 수비수 스티브 피넌의 역할을 대신하며 연장전까지 3-3 스코어를 지켜냈다.

공격력 폭발, 제-토 라인을 이끈 가짜 10번
 절정의 공격력을 자랑한 제-토 라인.
ⓒ 리버풀
제라드의 공격력이 정점을 찍었던 시즌은 08-09시즌이었다. 당시 리버풀 감독이었던 라파엘 베니테즈는 제라드의 공격적 재능을 최대치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했다.

팀의 빌드업을 맡은 알론소의 짝으로 임대 중이던 수비형 미드필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완전 영입했다. 최전방 공격수 토레스는 본인의 침투와 더불어 뒤에서 따라 들어오는 2선의 움직임을 포착할 시야를 갖춘 선수였다. 후방에 플레이메이킹과 중원 수비의 전문가를 두게 된 제라드는 토레스와 함께 상대팀 골문을 노리는 것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었다.

당시 제라드는 4-2-3-1 포메이션의 공격형 미드필더(10번)자리에 위치했지만 경기를 조율하는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라드는 미드필더라기보다는 토레스의 공격 파트너였다. 뛰어난 주력과 중거리 슈팅으로 상대 수비수들의 전진 방어를 유인해냈고, 이렇게 공간이 생기면 토레스가 파고들었다. 그 반대도 가능했다. 토레스의 테크닉에 상대편이 휘청거리면 제라드가 2선 침투로 골을 노렸다. 기동력과 연계를 두루 갖춘 두 선수의 멋진 '패스 & 무브'였다.

이 시즌 제라드는 16골로 본인의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리그 득점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으며 팀 내 최다 득점이었다. 또한 자신의 리버풀 100번째 골을 기록했고 최초로 헤트트릭을 달성한 시즌이기도 했다. 이때 리버풀은 뛰어난 화력을 바탕으로 숱한 명경기를 제조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리버풀 팬들은 이 당시 제라드와 토레스의 공격 조합을 '제-토 라인'이라 부르며 리버풀의 가장 뜨거웠던 시즌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비운의 레지스타로 리버풀을 떠나다
 쉽지 않았던 제라드의 마지막 시즌.
ⓒ 리버풀
세월이 지나며 신체 노쇠화와 잇따른 부상으로 제라드는 기동력이란 무기를 잃어갔다. 이에 12-13시즌 리버풀에 부임한 브랜든 로저스는 제라드를 후방 플레이메이커(레지스타)로 기용했다. 제라드는 볼 키핑을 위한 세밀한 발재간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다. 때문에 수준급의 롱패스 능력을 갖췄음에도, 압박이 심한 중앙과 2선 자리에 있을 땐 창조적인 면모를 보여주진 못했다. 하지만 비교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후방에 오자 그의 롱패스가 빛을 발했다. 제라드는 로저스의 주 전술인 짧은 패스 위주의 점유율 축구 안에서 변칙적인 한 방 패스를 뿌려주기 시작했다.

제라드의 레지스타 기용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이에 더불어 13-14시즌 공격진 루이스 수아레즈와 다니엘 스터리지의 콤비 플레이가 폭발하자 리버풀은 다시금 무시무시한 팀이 되었다. 수아레즈와 스터리지는 나란히 리그 득점 1, 2위를 차지했고, 제라드는 13개의 어시스트로 도움왕에 선정됐다. 리버풀은 리그에서만 101골을 기록하며 붉은 유니폼과 어울리는 화력 넘치는 팀이 되었다. 하지만 수비 불안을 이겨내지 못하며 50실점을 기록, 승점 2점차로 2위에 그치고 말았다.

이렇게 제라드는 또 한 번 멋지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가장 뼈아픈 기억을 남기기도 했다. 13-14시즌 36라운드 첼시전에서 제라드는 후방에서 공을 놓치며 뎀바 바에게 역습 실점을 허용했다. 기동력이 떨어진 제라드가 후방에 홀로 남겨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참사였다. 리버풀의 우승 가능성이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경기였기에 충격이 더했다. 이후 제라드는 자서전에서 이 순간을 회고하며 '경기를 마치고 차를 타고 가던 중 자살하고 싶었다'라는 고백까지 했다.

이후 리버풀을 상대하는 팀들은 전방에서부터 제라드를 압박하며 리버풀의 공격 물꼬를 차단했다. 결국 14-15시즌 제라드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어느덧 리버풀의 베스트 라인업에 속하지 못하게 되었다. 제라드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시즌이 끝난 이적시장에서 미국 LA갤럭시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제라드는 항상 리버풀과 함께였다.
ⓒ 리버풀
비록 씁쓸한 마무리로 이별을 맞이했지만 리버풀과 제라드의 관계는 계속됐다. 제라드는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리버풀을 응원했으며 MLS의 시즌이 끝나면 리버풀 훈련장을 방문했다. 지난 시즌 차기 주장이 된 조던 헨더슨이 부진할 때도 가장 열렬히 지지해준 이가 제라드였다. 헨더슨은 올 시즌 완벽히 부활에 성공하며 리버풀의 상승세에 일조하고 있다. 리버풀 감독 위르겐 클롭은 인터뷰에서 "제라드의 복귀는 언제든 환영한다"고 말하며 리버풀의 여전한 애정을 대변했다.

축구가 단순히 상대편 골문을 가르는 것이 전부인 운동이라면 지구 반대편 나라의 누군가가 영국 구단의 팬이라 자처할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축구는 하나의 이야기며 감동이다. 팀의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른 역할을 충실히 해주며, 떠난 후에도 진심어린 관심을 이어간 제라드에게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이제 제라드가 다시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려 하고 있다. 감독이 될 수도, 리버풀 코치가 될 수도, 어쩌면 리버풀이 아닌 또 한 번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제라드가 리버풀에서 어떤 포지션, 어떤 역할을 수행할 때건 여전했던 한 가지만은 변하지 않을 것임을. 그의 가슴 안에는 고향과 팬들을 위한 붉은 심장이 언제든 함께 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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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청춘스포츠 오승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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