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때도 팩스 보고" 용인된 '불통'이 비선 키웠다

진상현 기자 입력 2016. 11. 2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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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런치리포트-무너진 국정시스템 해법은(상)]②'비선 놀이터' 제공한 박 대통령 국정운영 스타일

[머니투데이 진상현 기자] [[the300][런치리포트-무너진 국정시스템 해법은(상)]②'비선 놀이터' 제공한 박 대통령 국정운영 스타일]

“대면보고 보다 그냥 전화 한 통으로 빨리 하는 것이 더 편리할 때가 있어요. 대면보고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면 그걸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하겠지만… (장관들을 뒤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지난 2015년 1월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대면보고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장관들에게 ‘대면 보고가 필요하냐’고 묻는 이 장면은 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소통 스타일을 적나라하게 각인시켰다.

이날 이후에도 박 대통령의 소통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이 정부들어 승승장구해 ‘박의 여자’로까지 불린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1개월의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재임 기간 중 대통령을 한 번도 독대한 적이 없다고 최근 고백했다. 정무수석은 정치권, 국민과의 소통 최일선에 있는 자리다. 실세 정무수석이 이 정도라면 웬만한 장관, 수석비서관들은 대통령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봐야한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불투명하고 일방적인 소통 방식은 청와대가 ‘비선들의 놀이터’가 되는 공간을 제공했고, 피의자 신분 현직 대통령이라는 초유의 비극을 낳는 배경이 됐다.

◇“정말 조직도가 없나요?” 베일에 가려진 청와대 =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가 가동에 들어가자 이전 정부들이 제공하던 청와대 조직도를 구하려는 민원이 빗발쳤다. 이 조직도에는 청와대 조직과 각 수석비서관실, 비서관실 근무자들의 명단과 유선전화 연락처가 기재돼 있다. 업무 연락이나 취재에 필요한 담당자를 찾기 위해서는 이 조직도가 필수다. 박근혜 정부에선 아직도 이 조직도가 없다. 청와대 안에 누가 근무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구조가 정부 출범 4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당에 있을 때부터 핵심 보좌진들에 의존하는 소통을 해왔다. 그런 폐쇄적인 시스템은 청와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장관 등 국무위원들은 물론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들도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통하지 않고선 대통령과 소통할 수가 없었다. 주로 이들을 통해 서면 보고를 하고 대통령의 ‘피드백’도 이들을 통해 전달받다 보니 '문고리'의 영향력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세월호와 관련해 받은 15건의 보고 가운데도 6건은 전화통화, 나머지 9건은 팩스 등 서면 보고였다. 대통령의 업무 동선도 베일에 가려질 수밖에 없었고, 그 속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이라는 독버섯이 자라났다.

전화통화를 적극 활용한다지만 이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심으로 소통이 이뤄질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이 놓치는 부분이나 보고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정작 간과될 수 있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는 수석비서관의 보좌관이 부속실에 연락을해 일정을 잡고 대통령에게 수시로 대면 보고가 이뤄졌다”면서 “현 정부는 3인방에게 보고서를 보내고 별도 연락이 없으면 중간 경과도 이들을 통해 확인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반복된 문제 제기에도 용인된 '불통' = 박 대통령의 ‘불통’ 스타일은 끊임없이 문제를 낳았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관저에서 업무를 봤다는 설명이지만 그토록 위급한 상황에서 관저에 계속 머물렀다는 것에 수긍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2015년 5월 메르스 사태 때도 당시 주무장관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무회의와 영상회의를 제외하곤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한 번도 하지 않아 늑장 대처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같은 해 8월4일 발생한 북한의 목함지뢰 폭발 사고 때도 사건 발표 때까지 1주일간 박 대통령이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통화 한번 하지 않은 것을 확인돼 논란이 됐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4차례 보고를 했지만 서면·전화보고였다.
문제가 반복해서 노출됐지만 박 대통령은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다. 특히 지난 2014년 11월 ‘비선실세 정윤회 문건 파동’ 이 불거졌을 때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당시 최순실의 남편으로 박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했던 정 씨가 ‘문고리 3인방’ 등을 통해 비선에서 국정에 개입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박 대통령은 문건의 내용을 부인했고,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신뢰를 확인함으로서 오히려 이들에게 더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5.1.1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청와대 정보도 더 공개돼야"= 전문가들은 청와대의 독주, 불투명성을 용인하는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형식상으로는 국회가 청와대를 견제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청와대를 대상으로 현안질의도 하고, 국정감사도 진행하지만 국가안보 상의 이유 등을 들어 자료 제공이 극도로 제한된다. 정확한 정보가 없다보니 청와대에 대한 견제는 의혹 제기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정치컨설팅사인 아젠다센터 이상일 대표는 "권력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투명하게 운영되도록만 하면 결국은 문제가 드러나게 돼 있다“면서 “청와대가 국가 최고 기밀을 다루는 곳이라고는 해도 예산사용 내역, 출입기록 등 통상적인 정보들은 제공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개선 필요성도 거론된다.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독주하는 것에 대해 다른 기관에서 견제하거나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가 미약하다”면서 “국회에 상시청문회를 도입한다든가 증인 출석이나 자료를 요구하면 반드시 응하게 권한 등을 더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상현 기자 jis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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