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병사의 환한 웃음, 화가를 울리다
이번 '슬픔의 벽' 전시에는 북한 병사의 모습을 수묵으로 드로잉한 작품 '너의 얼굴 Your Face', 대북전단을 연으로 형상화한 '연', 분단 현실의 아픔을 다룬 오브제 신작 20여 점이 선보인다.
김혜련 작가는 한 장의 사진에서 '너의 얼굴' 모델을 발견한다. 한 장의 사진에서 그 북한 병사는 남쪽 군인들과 마주 보면서 귀엽게, 사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 분위기로 보아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전으로 추정된다. 그 사진 속 북한 병사는 지금 60세쯤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황금 눈물'이라는 제목의 작가 노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웃고 있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혹시 강제수용소에서 굶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병들어서 죽은 것은 아닐까? 그는 지금, 사진속 그는 지금, 내 작품의 모델이 되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로 하여금 눈물 흘리게 하고 잇다. 타인의 얼굴 그리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나로 하여금, 수도 없이 쳐다보며 그 얼굴을 그리게 하고 있다. 붓을 들고 고개를 숙이고 , 때로는 눈물이 너무 흘러 그리다 말고 소리 죽이고 울었다. 그와 내가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그는 지금 살아 있을까? 그의 어머니가 이렇게 환하게 웃었을까? 남한 군인을 마주 보고 이렇게 환하게 웃는 그는 분명, 평소에도 이렇게 자주 웃었을 것이다. 자상하고 섬세한 여느 젊은이들처럼, 그렇게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그는 웃고 있는데, 그를 그리는 나는 눈물이 난다. 그리고 있노라면 그가 나인지, 내가 그인지,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나온다. 그가 쓴 모자가 광배가 되고, 웃던 그는 울고 있다. 나 대신 울고 있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어, 눈물이 난다. 배 속에서서부터 눈물이 난다. 나는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그 속에서 하나가 되는 황금빛 눈물이 된다. 황금 눈물, 우리의 살인을 용서해 달라고, 그는 아마도 하늘 나라에 있을 것이다. 황금빛 눈물 안에서 웃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북한 병사의 환한 웃음에서 남북간 적대감의 환영을 걷어낸 사랑의 씨앗을 발견한 것이다. 그 씨앗은 남과 북, 분단과 이산, 대립과 갈등, 차별과 배타 의식, 증오와 편견을 일순간에 쓸어내버리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것인가. 그 깨달음은 남과 북의 일반 사람들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 형제라는 것을 일깨웠으리라. 하여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솟구치게 하고, 정화된 감정의 결정체인 눈물은 황금빛 찬란함으로 빛나게 된다. 그 황금빛 눈물이 어린 시선은 북한 병사 군모를 해원상생의 광배로 변모시켰으리라.
나무틀을 이용한 작품 '슬픔의 벽' '왕과 왕비' '새가 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왕골 원형 덮개를 이용한 '확성기- 나는 너이다', 또는 거울, 구슬을 이용한 작품이 등장한다. 나무 틀은 구속을, 거울은 일그러진 삶을, 구슬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눈물을, 색동에 누벼진 수련은 활기와 기쁨을, 왕과 왕비는 시대의 슬픔과 자존감을, 새는 자유를 각기 상징하거나 은유한다.
김혜련 작가는 "이번 전시는 전부 나 자신을 위한 작업이다.공감하면 좋고, 누구를 위한 작업은 없다"고 했다. 작가는 분단이라는 주제를 깊이 파고들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다양한 표현 매체를 통해 작품으로 변주하고 있다. 현실과 작가의 의식 간에 팽팽한 긴장과 대결을 하면서 말이다. 앞의 작업은 뒤의 작업을 예고한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 '삼족오'가 그렇다. 삼족오는 평양 진파리에서 출토된 금동 투각으로 해모양 뚫는 무늬 금동 장식이다. 김 작가는 "왜 나는 통일을 원하는가. 한민족은 혈연, 역사, 문화 공유하는 언어공동체이다. 현재 상황은 10년 전보다 더 분단이 고착화하고, 남쪽은 섬으로 전락하고 있다. 북쪽은 중국에 먹히고 남쪽은 일본에 먹히지 않을가 우려를 한다. 소름 끼치게 그럴 가능성이 많다. 문화, 언어가 없어지는 것 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제까지 김 작가의 작품 여정이 분단의 인식과 넘어섬이었다면, 앞으로 작업 방향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기원이 될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런 주제 의식에서 그 미적 표현이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제주의 아픈 현대사를 그토록 슬프고도 아름다운 회화로 표현해냈듯이.
전시 기간: 12월 2일까지
전시 장소: 주한독일문화원
[CBS노컷뉴스 김영태 기자] grea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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