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미스터리' 숨은 키워드 정유라

2016. 11. 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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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대통령이 사라진 그날의 7시간에 대한 정윤회의 수상한 알리바이, ‘공주 승마’ 파문, ‘체육 개혁’ 등 또 다른 퍼즐들

1부_비밀의 시간 또다시 ‘세월호 7시간’의 미스터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초점이 그날 대통령 행적에 모아지고 있다. 그날 청와대 관저에서 도대체 누구와 뭘 했는지. 감출수록 더욱 커지는 의혹들. 미궁의 행적 속에 사라진 진실의 퍼즐을 맞춰간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사라졌던 ‘7시간’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이미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다. 최태민 사망 20주기를 맞아 추모굿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선 대통령이 직접 “굿은 안 했다”고 해명했을 정도다. 모든 언론이 그날 대통령이 모종의 의료 ‘시술’을 받은 것이 아닌지 혐의를 두고 추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그날과의 결정적 연결점은 아직 없다. 대통령이 불법적 방법을 통해, 이상한 방식으로 시술을 받았단 점은 확인됐지만 바로 그날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현재 대통령의 그 ‘7시간’을 설명하는 공식 문건은 딱 2개뿐이다. 2015년 12월17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가 쓴 기사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판결문(이하 가토 판결문)과, 2016년 10월26일 녹색당 등이 제기한 정보공개청구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결정문(이하 정보공개청구 결정문)이다.

두 건의 공식 판결은 대통령의 그날 7시간에 대해, 완벽하진 않지만 일부를 설명한다. 이를 중심으로, 당시 대통령이 어떤 문제에 관심 있었는지를 여러 관계자에게서 확인했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지금까지 언론이 좇는 경로와는 한참 다른 일들이 그날 청와대에서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① 2014년의 ‘비선 실세’는 누구였는가

2014년 당시 비선 실세가 누구였는지 되짚어보면, 정윤회씨는 최순실씨와 이혼(2014년 5월)한 뒤 권력에서 멀어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비선이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우선, 2014년 당시 누가 진짜 실세였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 모든 비선 관련 의혹이 최순실씨로 모아진 상황이지만, 2014년에도 그러했는지 되짚어야 한다.

지금까지 보도된 다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적어도 2014년까지는 최순실씨 본인보다 정윤회씨를 늘 앞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청담고등학교와 승마장에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최순실씨는 수차례 “유라 아버지가 누군인 줄 아느냐”고 말하고 다녔다. 정유라가 2014년 국제승마연맹에 올린 프로필 역시 “아버지 정윤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했다”고 적었다.

정윤회씨 진술도 마찬가지다. 정씨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이 “이혼 뒤”에 시작됐다고 말했다. 정윤회·최순실 부부의 이혼은 2014년 5월 확정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일이다.

2014년 11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정윤회 문건’ 파동을 보더라도 당시 비선 실세는 정윤회씨라고 보는 게 무난하다. 당시 작성된 보고서와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씨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교체 시점을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초까지 정윤회씨는 이른바 ‘십상시’들과 2주에 한 번 정기모임도 유지해왔다.

최순실씨와 이혼한 뒤 권력에서 멀어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적어도 2014년 4월까지는 정윤회씨가 ‘살아 있는 비선’이었던 것이다.

② 정윤회씨 ‘알리바이’는 확실한가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가 쓴 기사도 당시 ‘비선 실세’가 정윤회씨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가토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와 함께 있었다’는 세간의 소문을 소개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두 가지 소문이 허위임을 규명하려 했다. 첫째는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 사람은 긴밀한 남녀관계다’라는 것이었다. 법원은 ‘긴밀한 남녀관계’라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독립적 근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법원은 통화기록을 근거로 정윤회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정씨 통화기록을 보면 오전 11시3분경 서울 강남구 개포2동 168-× 인근, 오후 2시20분경 서울 종로구 평창동 158-× 글로리아 타운 인근, 오후 3시30분과 5시36분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637-×× 인근, 저녁 8시32분에는 강남구 신사동 성도빌딩 인근에서 발신됐다. 네 차례 발신 시각을 근거로 법원은 정윤회씨가 청와대에 찾아가 대통령을 만났다는 추측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판결문은 비어 있다. 판결문에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정윤회씨를 만나지 않았다고 특정한 시각은 ‘오후 2시20분경부터 3시30분경까지’, 그리고 ‘5시36분경부터 8시32분경까지’ 오후와 저녁 시각이다. 판결문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과 낮 시간에 정씨가 무얼 했는지에 대해선 무속인 이세민씨와 밥을 먹었다는 정씨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 대목은 석연치 않다. 애초 정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특별한 일이 없이 집에 있었다”고 진술했다가, 통화기록이 나오자 “이세민과 점심을 먹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에 대해 정씨는 “당시 행적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고 했고, 검찰은 넉 달이 지나 그럴 수도 있다며 그대로 인정했다. 그 증거로 정씨가 스스로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제출했단 점을 꼽았다.

십수년간 음지에서 일하며 ‘치밀하고 꼼꼼한 일처리’를 보였다는 정윤회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과 함께 있었다는 의혹을 샀는데, 누군가와 점심을 먹었는지 잊었다고 진술한 것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정윤회씨의 수상한 알리바이는 또 있다. 정씨는 재판 과정에서 “집에서 머물다가 평창동에 가서 이세민과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정씨가 평창동에서 돌아와 쉬었다는 강남의 ‘집’은 최순실씨 거주지였다. 그의 전화 발신이 포착된 서울 강남구 신사동 637-×× 인근은 최순실씨 자택에서 직선거리로 100m도 안 되는 곳이다. 최순실씨 자택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까지 사무실로 사용했다는 바로 그 건물(미승빌딩, 신사동 640-1)이기도 하다. 휴대전화 통화기록상 발신지를 확인한 것이어서 지번이 다를 뿐, 같은 기지국을 사용하는 장소다.

2014년 4월 당시 정윤회씨는 최순실씨와 이혼소송 중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혼소송은 3월27일 개시했는데 별거는 그 이전에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씨가 최씨 집에 가서 쉬었다는 것이다. 물론 부부 사이 일이니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오랜 별거 끝에 이혼소송 중임에도 굳이 최씨를 만나러 갈 일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결국 세월호 참사 당일 정씨는 청와대 인근 2km 지역에 갔다가, 최씨 인근 100m 지역으로 돌아와 최소 2시간 이상 머물렀다.

③ 박근혜 대통령은 그 시간에 무얼 했나

세월호 참사는 정유라를 둘러싼 대한승마협회 문제, 체육 개혁 이슈의 한복판에 있었다. 2014년까지 최순실씨의 최대 관심은 정유라의 대학 진학과 아시안게임 대표팀 승선 여부였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정윤회씨의 오전과 낮 시간을 주목해 녹색당 등이 제기한 정보공개청구 결정문을 보면, 묘한 시간대가 발견된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시간대별 지시 사항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오전 10시에 첫 보고를 받았고, 10시30분에 해경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한다. 그러곤 이후 10차례의 서면보고가 이뤄지는 동안 단 한 번도 반응하지 않는다. 10여 차례 서면보고 이후 대통령이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한 시각은 오후 2시11분이다. 청와대의 해명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최소한 3시간41분 동안 대통령은 청와대 내 그 누구와도 대면 접촉을 하지 않았다. 정씨가 청와대 인근으로 갔다가 최순실씨 인근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과 일치한다.

법원과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당일 ‘정윤회씨가 청와대를 출입한 기록이 없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최순실씨는 물론 비선 자문 의사들까지 기록 없이 청와대를 드나들었음이 확인되는 상황에서 공식 출입기록이 없다고 정씨가 청와대를 출입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내부 관계자들은 사납게 제기되는 ‘7시간 의료시술 의혹’에 대해 “시술은 확실히 아니다”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은 다시 질문해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무실은 아니지만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 청와대는 무능했지만, 그래도 작동은 했다. 완전히 상식을 벗어나는 충격적인 음모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경계해야 한다. 다만 대통령이 보고받고도 상황을 판단하지 못했거나 안 했을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대단한 ‘무슨 일’이 있었다면, 당시에도 지금도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인물을 만났다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그리고 그날의 7시간이 정말 ‘비선’과 관련된 것이라면, 그 비선의 당시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추적해야 한다.

④ 세월호 참사 당시, 정윤회·최순실의 관심사

2014년 4월16일, 정윤회·최순실의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그해 4월은 정윤회·최순실 부부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공주 승마’ 파문이 바로 이때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8일 전인 4월8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은 이번 게이트의 시작점으로 기록돼야 할 기념비적 질의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이라 불리는 정윤회씨 딸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있으며, 마사회 훈련장 마방을 사용하는 특혜를 받았다”는 폭로다. 정씨가 연관돼 작성된 대한승마협회 ‘살생부’가 청와대까지 전달돼 특별감사가 이뤄지고 해당 인사들의 사퇴가 종용됐다는 주장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표적 감사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곧바로 반박했다. 하지만 4월9일 오전, 안민석 의원은 사퇴 종용을 받았던 강원, 전북, 전남 승마협회장 등과 함께 국회에서 다시 기자회견을 연다. 이때 처음으로 ‘정윤회씨가 개입된, 사적 채널에 의한 비정상적인 통치 행위’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야당 의원의 일방적인 주장 정도로 취급됐는데, 당일 오후 열린 대한승마협회 정기 이사회에서 신은철 당시 회장이 전격 사퇴해버리고, 대의원들의 요구로 승마협회 핵심 집행부 5명(김효진 실무부회장, 전유헌 이사, 손영신 이사, 안중호 부회장)이 동반 사퇴하는 상황으로 번진다. 2010년부터 한화가 꾸려왔던 승마협회 집행부가 안민석 의원 대정부 질의 하루 만에 와해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틀 뒤인 4월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새누리당 의원 7명은 사전에 각본을 짠 것처럼 합을 맞춰 안 의원을 맹공한다. 정유라를 두고 “유망하고 전적이 뛰어”난데, 이렇게 사기를 꺾어놓으면 “장래를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힐난을 던졌다. ‘공주 승마’ 특혜 의혹 제기 자체를 사과하라는 요구였다.

3일 뒤인 4월14일에는 당시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이 기자회견을 자처한다. “대한승마협회의 일부 관계자가 정치권 등을 통해 제기한 시·도 승마협회장 사퇴 압력과 특정 선수 특혜 논란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며 정유라는 “정정당당한 실력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고 두둔한다.

이날 김종 차관은 기자회견 직후 YTN 기자를 따로 호텔 비즈니스룸으로 불러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에 접수된 모 대학 승마 교수의 향응 접대 제보’ 문건을 전달한다. 그 교수는 승마계에서 ‘정유라 사건 제보자’라는 의심을 받고 있었고, 정유라가 2등을 차지한 경북 상주 대회에서 1등 선수를 지도한 경력이 있었다.

이때 김종 차관은 기자에게 “우리는 언론 보도가 되면 수사에 탄력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너는 특종을 써서 좋지 않느냐”고 노골적으로 보도를 청탁하고 회유한다. 다음날에는 승마협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측근으로 지목된 인사로부터 어떤 압력도 받은 적 없으며, 그 인사의 딸이 국가대표로 선발된 과정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문체부의 입장을 그대로 인용한다.

⑤ 세월호 참사일을 기점으로 일어난 반전

안민석 의원은 2014년 4월8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정유라 ’공주 승마’ 관련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공주 승마’ 의혹은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기념비적인 출발점이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4월16일은 대한승마협회를 둘러싼 파문과 의혹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4월20일, 승마인 228명의로 ‘한화 복귀 청원’ 건의서가 발표됐다. 승마협회 집행부는 “한화그룹이 회장직을 내려놓고 협회 운영을 그만둔 일은 승마계에 엄청난 손실이자 충격적인 일”이라며 “특히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화그룹의 역할과 지원이 한국 승마계에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호소한다.

건의서는 대한체육회, 문체부, 한화그룹에 전달됐다. 건의서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화는 4월23일 승마협회 회장사를 계속 맡겠다고 발표했다. 한화의 명분은 아시안게임이 코앞이니 그때까지 회장사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전인 안민석 의원 질의 이후 회장사 사퇴를 결정했던 한화는 세월호 참사 이후인 4월23일 회장사 유지를 결정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화 회장단을 ‘탄핵’했던 승마협회 대의원들은 왜 열흘 만에 한화의 복귀를 읍소하게 되었을까.

이와 관련해 한화 이후에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은 삼성 쪽 관계자는 “한화와 방산 빅딜 협상을 할 때, 승마협회를 (삼성이) 가져가달라고 이야기했다”며 “우리한테 넘기기까지 한화가 무척 골치 아파했다”고 말했다. 회장사를 맡는 것 자체를 한화가 꺼렸다는 것이고,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만한 압력이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실을 알고 있을 복수의 승마협회 임원들을 취재했지만, 대체로 말을 아꼈다. 다만 그 작업을 “청와대의 오더를 받은 김종 전 차관과 박원오 전 전무가 주도했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한 승마협회 임원은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경기인들의 이름을 모아 건의서를 올렸다”며 “박원오 전 전무가 김종 차관 이름을 들먹였고, 한화가 계속 맡는 것이 청와대 뜻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회고했다.

또 다른 승마협회 임원은 비교적 소상히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공주 승마’ 논란이 나고, 2013년 상주 대회 때부터 (정유라 관련)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렇게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결국 회장도 ‘공주 승마’를 책임지고 사퇴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기류가 바뀌었다. (기류를 바꾼) 승마협회 쪽 창구는 박원오 전 전무였는데, 박 전 전무가 그 일을 어떻게 했겠나. 그 위에 유라 아버지(정윤회)가 있다고들 했다.”

그 기류의 변화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묻자 이 임원은 이렇게 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4월16일)이었다. 그다음 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민석 의원 질의 이후) 한화 집행부를 내보내자고 했던 대의원들이 갑자기 ‘한화가 남아야 한다’는 건의서를 내는 게 그 하루이틀 사이에 이뤄졌다. 청와대에서 눌렀다는 얘기도 있었다.”

⑥ 갑자기 ‘체육 개혁’ 오더 내린 까닭은

물론 승마협회 임원들이 한결같이 4월16일을 지목한 것은 아니고, 날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한계는 있다. 문제의 키를 쥔 박원오 전 전무와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와 십수년을 어울려온 승마인들조차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검찰은 어쩐 일인지 그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모든 문제의 키를 쥐고 있을 김종 전 차관 역시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돼서 더 이상 취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세월호 7시간을 둘러싼 미스터리에서 대통령이 집무실은 아니지만 청와대 경내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그 시간에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청와대의 해명대로 역시 공무 성격의 일을 보고 있었다면, 그 일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 단서 역시 김종 전 차관이 쥐고 있다. 김종 전 차관은 YTN 기자에게 “대통령으로부터 세월호 이튿날도 체육 개혁 오더가 내려왔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하루 전에 열린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체육 개혁’과 관련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대통령이, 갑자기 4월17일에 정유라 이슈인 ‘체육 개혁’ 오더를 내린 까닭은 무엇일까. 4월15일 국무회의 때까지 인지되지 않았던 사건이 17일 ‘대통령 오더’로 떨어진 사이에 4월16일이 놓여 있다.

정윤회씨는 승마 논란을 최초 보도한 <시사저널> 기자를 고소하며 “승마협회 관련 보도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 딸과 부인이 최소한의 명예와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삶을 지키지 못하게 돼, 결국 지난 5월 이혼했다”고 적었다. 시기적으로 부합하지 않는 주장이지만, 그 문제가 얼마나 뼈아팠는지 그 심정만큼은 읽을 수 있다.

그해 봄, 정윤회·최순실 부부의 관심은 오로지 정유라의 대학 진학과 아시안게임 금메달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승마협회가 풍비박산돼서는 절대로 안 됐고, 초읽기 수준에서 그걸 막아줄 공적 주체가 필요했던 때였다.

세월호  참사  전후  대한승마협회  관련  사건  일지
2014년

4월8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대정부 질의 ‘공주 승마’ 의혹 제기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이라 불리는 정윤회씨 딸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있다.” “승마계에선 특정 선수를 비호하고, 지속적으로 특혜를 줘 국가대표를 만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개입했다.”
4월9일-대한승마협회 정기 이사회

‘신은철 회장, 김효진 실무부회장, 전유헌 이사, 손영신 이사, 안중호 부회장’ 핵심 집행부 5명 사퇴
4월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새누리당 의원 7명 안민석 의원 집중 공격

이에리사 의원 “이 선수의 경기 실적을 들여다봤더니 유망하고 전적이 뛰어나다. 이런 문제가 왜 불거졌는지, 이 선수의 장래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4월14일 -김종 문화체육광부부 제2차관 기자회견 “대한승마협회의 일부 관계자가 정치권 등을 통해 제기한 시도 승마협회장 사퇴 압력, 특정 선수 특혜 논란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

-YTN 기자에게 보도 청탁
4월15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관련 발언 없음

-대한승마협회 기자회견 “대통령 측근으로 지목된 인사로부터 어떤 압력도 받은 적 없으며, 그 인사의 딸이 국가대표로 선발된 과정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4월17일 -김종 차관 “박근혜 체육 개혁 오더 내려왔다” 발언

“세월호에 빠지지 말고, 승마 빨리빨리 하란 말이야.” “대통령께서 세월호 난 그다음 날, 체육 개혁 확실히 하라고 오더 내려왔다. 24시간 그 얘기(세월호)만 하나? 정책도 챙겨야지!”
4월20일 -대한승마협회 승마인 228명 서명 한화 복귀 촉구 청원 건의서 제출

“한화그룹이 회장직을 내려놓고 협회 운영을 그만둔 일은 승마계에 엄청난 손실이자 충격적인 일.” “특히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화그룹의 역할과 지원이 한국 승마계에 꼭 필요한 상황.”
4월23일 -한화 대한승마협회 회장사 복귀 결정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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