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호성,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보고 꺼려했다

2016. 11. 2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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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세월호 참사 당일 집무실 아닌 사적 공간 관저에서 두문불출…
‘뭘 하지 않았다’는 것만 찔끔찔끔 내놓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불거진 박근혜 게이트의 초점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 행적에 모아지고 있다. 쏟아지는 의혹과 추측 속에서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 청와대의 태도는 불신을 자초한다. <한겨레21>은 박근혜 정부 시기 청와대 관계자 7명을 비롯한 다수의 전 정권 청와대 인사들을 상대로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취재했다. _편집자
그는 왜 7시간의 행적을 숨기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5일 청와대에서 ‘연설문 유출’ 의혹에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심지어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는,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11월4일 박근혜 대통령 2차 대국민 담화)

이게 전부다. 295명(미수습 9명)의 목숨을 삼킨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관해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것은 이게 전부다. 그날, 그의 행적은 여전히 미궁이다.

당일 오전 10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첫 보고를 받고 10시15분과 10시30분 두 차례 구조 지시를 내린 뒤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날 때까지 7시간은 여전히 미스터리의 영역이다.

① 박 대통령은 집무실 아닌 관저에 머물렀다

박 대통령은 그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2014년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나와 “대통령의 위치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 발언이 의혹을 증폭시켰다는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비해 11월11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당일 청와대에서 정상 집무를 봤다. 낮 12시50분께 최원영 당시 고용복지수석이 기초연금법 관계로 박 대통령에게 10분 동안 전화로 보고했다”며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밖에 있지 않았고, 참모진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한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외부에 나가면 다수의 경호 인력이 수행한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고 외출 가능성은 낮게 봤다.

그러나 정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었는지, 사실상 살림집에 해당하는 관저에 있었는지 답하지 않았다. <한겨레21>이 취재한 다수의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관저에 있었다고 말했다.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핵심인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구속)도 최근 검찰 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관저에 계셨다. 사태가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가 나중에 상황이 급변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공식 일정이 없으면 대부분 관저에 머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박 대통령은 비상사태가 벌어진 평일 낮 시간에 청와대 본관 2층 집무실이 아닌 사적 공간인 관저에 있었을까.

이날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을 시작으로 15차례나 박 대통령에게 보고가 올라갔다. 그러나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고 있는 바람에 각 보고 내용을 제때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상황의 급박함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들은 오전까지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한다. 전 청와대 관계자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오후 1시30분 전까지는 상황이 급박한 줄 아무도 몰랐다. 대부분 구조됐다는 보도와 보고가 있어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청와대 보고라고 별다른 것이 없다. 언론 보도를 기초로 보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에 앞서 청와대 보좌진조차 오후 1시30분께까지는 상황의 긴박성과 중대성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뒤 상황이 급변했고, 이후 대통령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흘렀다. 대통령의 외부 방문에는 경호팀의 사전 답사와 비상시 동선 확보 등을 점검해야 해 기본적으로 1시간 이상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② ‘문고리 권력’이 보고를 머뭇거렸다

그러나 문제는 오후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고 대규모 사망, 실종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단 한 차례도 지시를 내리거나 긴급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 전 청와대 관계자의 증언으로 보면, 청와대는 오후 들어서도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1시30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해경 쪽에서 구조자를 중복해 카운터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심상찮다고 판단해 정호성 제1부속실장에게 ‘박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가야 한다’고 연락했다. 그런데 정 부속실장은 ‘갑작스런 외부 방문 일정을 잡는 걸 꺼리는 대통령의 스타일을 알지 않느냐. 대통령의 방문이 외려 구조 작업에 방해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정 부속실장이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에게 연락했고, 이후 이 수석이 김기춘 비서실장과 연락을 취했다. 그렇게 해서 박 대통령의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를 총괄하는 정 전 부속실장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알고 난 다음에도 대통령에게 보고하길 주저했던 셈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그다음 행보 역시 문제다. 세월호 참사의 중대성을 뒤늦게 파악한 청와대는 오후 4시10분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주재했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 시각까지도 대통령은 집무실에 복귀하지 않고 대책을 함께 논의할 참모도 없는 관저에 머물러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김 전 비서실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갈 때 대통령을 수행했고, 청와대에서 그날 뵌 일이 없다”(2014년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고 증언한 바 있다. 청와대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핵심 참모인 비서실장과도 제대로 의논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③ 비상 상황인데도 대통령은 반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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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저는 본관이나 비서동과는 차로 2~3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대통령의 숙소다. 간이 회의실이 있고 보고 또는 결제를 할 수 있는 기본 사무 시설은 갖춰져 있지만 비상시 종합 상황 대처는 어려운 곳이다. 관저에 상주하는 인원도 수행 비서를 제외하면 대통령의 식사를 챙기는 정도의 기능직 직원이 전부다. 사실상 혼자 지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관저에 있을 때는 집무실에 있을 때보다 상황 대처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다수의 전직 청와대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사적 공간인 탓에 참모진의 접근성도 현저히 차단된다. 한 전직 수석비서관은 “재직하는 동안 관저 보고는 딱 한 번 했다”고 말했다. 일단 관저에 들어가면 고위직 참모라 할지라도 대통령에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고의 효율성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월호 당일 대통령은 11차례 서면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서면보고’가 참모진의 대면 접촉과 병행된 것인지 서류만 전달된 것인지 분명치 않다. 전 청와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모든 문건은 제1부속실을 통해 보고하도록 돼 있다.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에 있다면 부속실에서 바로 이를 전달하고 보고할 수 있다. 그러나 관저에 있으면 본관에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생긴다. 지금 청와대 체계로는 관저에 대통령이 머물면 제1부속실에서도 대면보고가 어렵게 되는 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11차례에 이르는 서면보고를 박 대통령이 직접 확인했는지에도 물음표가 달린다. 실제 박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보고에 지시를 내리지 않은 채 사실상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대면보고를 통해 상황 설명을 직접 들었다면 뭔가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11차례 서면보고의 ‘실제 상황’이 어땠는지가 의혹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관저에 머물고 있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과거 정권의 청와대 관계자들도 알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한 청와대 행정관은 “본관 집무실은 사무공간이다. 참모들이 쉽게 접근해 대면보고를 할 수 있고, 부속실 직원도 있어 연락이 쉽다. 그러나 관저는 대통령의 사생활 공간이다. 가려면 철문을 통과해야 하고 경호도 심해 보고하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관저 보고는 일반 회사에 견주자면 퇴근한 사장 집으로 찾아가 보고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같은 비상 상황에 관저에서 업무를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휘에 굉장한 제약이 있다. ‘지하 벙커’로 불리는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상황실’이라도 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또 다른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은 주중엔 아침 8시 전에 집무실에 나왔다. 퇴근 뒤에는 수행비서가 저녁 7~8시께까지 관저에 함께 있으면서 각종 보고를 전달했다”며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관저에서 누가 그런 구실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④ 관저에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했나

청와대는 지금껏 박 대통령이 ‘뭘 하지 않았다’는 것만 찔끔찔끔 내놓고 있다. 굿을 하지 않았다는 것, 성형시술 의혹 제기가 유언비어라는 것(정연국 대변인)만 언급했을 뿐, 명쾌하게 ‘뭘 했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왜 박 대통령은 비상 상황에서 집무실을 놔두고 굳이 외부와 차단된 관저에 머물렀을까. 관저에서 세월호 참사 수습보다 먼저 챙겨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과연 그는 홀로 관저에 있었을까. 그가 끝내 감추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무능일까, 부적절한 처신일까. 아니면, 그 시간 함께 있었던 그 누구일까.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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