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동양의 패배는 유학 탓이 아니다
|
유학은 로마 가톨릭 선교사 마테오리치에 의해 서양에 전파됐다. 그는 1582년에 마카오에 도착해 중국어를 익힌 후 광둥성에서 선교활동을 시작, 1599년 난징을 거쳐 1601년 베이징에 진출했다. 당시 명 황제 신종에게 자명종·대서양금(피아노 전신) 등을 선물해 환심을 사고 수도에 자리 잡아 선교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공자의 유학사상을 최초로 서양에 소개한 인물이다. 영국의 계몽주의 사상가와 중농주의 철학자들이 이를 받아들여 영국의 권리장전을, 그리고 미국의 독립선언, 프랑스 혁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후 공자의 경험론은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 정신) 발생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줬다.
동양은 확실히 서양보다 인문학교육에 앞서 있었고 과학 분야 수준도 높았다. 하지만 인문학을 수학·과학·경제·기술 등에 결합하는 융합교육에서 서양에 뒤졌고, 결국 서양은 현대문명의 주역으로 떠올라 동양을 앞질렀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제국이 망한 것은 유학 때문이라고 알지만 사실은 정치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이 원인이다.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은 전국의 중추교육기관인 서원을 폐지해 680여개 중 47개만 남기고 모두 문을 닫게 해 인문학을 죽였고, 또 천주교를 박해해 9명의 프랑스 신부와 9,000여명의 신도를 참수했다. 당시의 천주교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창구였는데 대원군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쇄국정책을 고집했다.
고종도 황제로 취임했으나 대한제국의 정치체제로 ‘전제군주체제’만 고집했다. 당시의 국제정세는 절대왕권의 ‘전제군주체제’ 대신에 헌법을 제정해 왕권으로부터 백성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입헌군주체제’로 변환되는 시기였다. 고종은 군대를 동원해 ‘입헌군주체제’를 주장하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개혁지도자를 모두 잡아들였다. 이로 인해 민심은 고종으로부터 이반되고 얼마 못 가 대한제국은 일제의 야욕으로 망하고 만다.
19·20세기 우리는 유학 때문에 패배한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정치지도자와 지배계층이 오히려 유학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사리사욕에 발목 잡혀 빚어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진리다. 우리나라는 입법·행정·사법의 3권이 확실히 분리된 민주국가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 국회에서 사회변화에 따라 새로운 입법을 제때 해주지 못하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구법을 답습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없다. 급변하는 산업사회와 국제정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법 제정과 법의 개정이 신속하고 적절해야 한다. 사법부의 법 해석과 판단도 국민과 국익을 위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화합과 소통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입법·행정·사법부 요원의 도덕성 회복이 절실하다. ‘도덕’이란 하늘의 뜻을 자신의 것으로 인격화해 땅 위에 쌓는 인간의 본분이다. 간단하고 쉽게 표현하면 ‘양심’을 지키고 ‘양심’을 세상에 펴는 일이다. 선비가 양심을 인간행동의 최후의 보루라고 얘기하는 이유다. 선비는 하늘이 부여한 인간의 위대한 본성을 체현하고 실현하기 위해 허공에 사상누각을 짓지 않는다. 선비는 철저하게 일상의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며 관계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것을 존재의 본질로 생각한다.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입법·행정·사법부의 지도자는 이런 ‘선비정신’의 체현을 일상의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진수 선비리더십아카데미회장·전 현대차 일본법인 대표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식사하셨어요?' '서울대 성악과' 출신답게 즉석에서 오페라 아리아 부른 유경미 아나운서는 누구?
- 송해 유지나, '아버지와 딸'로 감동의 듀엣 무대..'뭉클'
- '스포트라이트' 고 김영한 민정수석 폴더폰 복원..세월호 7시간의 숨겨진 진실 드러날까?
- 트와이스 미나, 두손 모으고 귀여운 미소(멜론뮤직어워드)
- 박태환 협박한 김종 전 차관 "대한체육회 인정 않으면..광고주 안 붙어"
- '불소추' 특권은 있어도 '불체포' 특권은 없다
- 급기야 터진 '계엄령 준비설' 혹시 그렇게 된다면
- '미운털' 김연아, '대상' 손연재..늘품체조 때문에?
- '특별대담' 김진 논설위원 "모든 정권이 다 엄청난 잘못 저지른다"
- 장동민-나비 결별, 신중치 못했던 연인관계 일화에 우려↑ '어떡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