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정치로 버려진 국민"..시민의식은 일류였다

2016. 11. 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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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으로 확산된 촛불집회 / 세대별 목소리 들어보니 ◆

"미안하다. 힘없고 '빽' 없어 우리 딸 고생만 하게 만들고." "엄마 울지마. 평생 정직하게 일한 우리 엄마가 제일 자랑스러운 걸요."

19일 저녁 이슬비가 촉촉히 적신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행사장. 가수 전인권의 애잔한 목소리로 '걱정말아요 그대' 노래가 울려 퍼지자 꼭 끌어안은 모녀는 서로 눈물을 닦아줬다. 아들딸에게 기성세대로서 부끄러운 어른들은 '사과'의 손길을 내밀었고 자식들은 "엄마, 아빠 탓이 아니다"며 노랫말처럼 서로 '상처'를 어루만졌다.

4차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 이날 서울 도심에는 60만명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촉구했다. 부산과 대구, 광주 등 전국 주요 도시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95만개의 촛불이 켜졌다. 매일경제는 서울시청 앞, 광화문광장 등에서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참여자를 만났다.

다양한 연령의 참여자들을 만나면서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툭하면 참여자와 비참여자 간,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 벌어졌던 갈등은 목격하기 힘들었다. 세대별·지역별로 저마다 거리로 나온 이유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모두 '삼류정치로 인해 길가에 버려진 국민'이라는 공감대가 커지면서 시간이 갈수록 촛불은 화해와 위로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을 홀로 찾은 노신사 김종길 씨(75)는 집회에 나온 젊은 학생들 고사리손을 붙잡고 연신 "미안하다"며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기특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스스로를 '꼰대세대'라고 부르며 젊은 세대에게 '사과'하기 위해 광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그의 동네 친구들은 서울역에서 진행 중인 보수단체집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만난 한재원 연세대 교수(58)도 기성세대로서 책임을 통감했다. 그는 이 땅의 민주화를 이뤄낸 386세대다. 한 교수는 "지금 광장으로 이 젊은 청춘들을 내몰고 있는 것은 386이 민주주의를 일궈냈다는 승리감에 도취된 채 어느새 '기득권'으로 안주하면서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를 뽑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국민 모두가 뭉치면 이번 기회가 한국 사회를 도약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모차부대와 넥타이부대가 거리로 나온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줄 수 없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10·20대 젊은 층들은 최순실 씨와 권력의 부패보다 최씨 딸 정유라 씨의 학사 농단에 더욱 분노를 느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직접 제작한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촛불을 들고 나온 공대생 정지우 씨(22·성균관대 전자전기 3학년)는 "무한 경쟁 속에서 간신히 취업을 해도 먹고살기 힘든데 돈이 실력이라는 정유라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참담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정씨는 "이곳에서 많은 어른이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다시 태어나도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우리 아빠, 엄마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도 다수 집회에 참가했다. 일부 고3 학생들은 이날 집회행사를 돕는 자원봉사단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이제 동서 지역차도 넘어선 지 오래다. 대구 광주 대전 부산 등 지방 주요 도시는 물론 상당수 중소 도시까지 100여 곳의 시민들이 촛불 대오에 동참했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텃밭인 대구에서는 7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대구비상시국회의가 1만5000여 명(경찰 추산 5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촛불을 들었다.

광주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3만명 이상, 경찰 추산 1만7000여 명이 참가했다. 부산에서도 2만여 명(경찰 추산 7000여 명)이, 대전에서는 3만여 명(경찰 추산 6000여 명)이 참가했다.

[기동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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