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무뇌아도 꼭 낳아야 하나" "낙태 여성들 후유증 심해"

서영지 2016. 11. 2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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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수술 찬반 공방
찬성 쪽 "수술 막으면 비용만 치솟아"
반대 쪽 "저출산 심한데 낙태 하다니"

다시 불거진 낙태 논란
최근 정부가 불법 낙태수술(인공 임신중절수술)을 집도한 의사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가 의사와 여성단체의 반발에 밀려 약 50일 만에 철회했다. 상처를 서둘러 봉합했지만 염증은 그대로 남았다. 이번 기회에 낙태를 어떻게 할 것인지, 43년 전에 만든 낙태 허용 범위를 유지할지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23일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1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린다는 게 골자. 그동안 정부가 유권해석으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불법 낙태를 넣어 1개월 자격정지를 해 왔다. 이번에 분명히 하면서 처벌을 대폭 강화하려 했다. 당시 규칙 개정의 목표는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 성범죄 의사가 타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불법 낙태수술 의사를 끼워 넣었다. 당시 언론에 공개한 보도자료에도 이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고 첨부자료에 한 줄 걸쳤다.
그동안 잠잠했던 낙태 논의에 불이 붙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선 “합법적인 낙태수술 외에 일절 낙태수술을 안 하겠다”는 일종의 ‘협박 카드’까지 내놨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자기결정권 존중을 내세워 낙태 관련 법 개정을 요구했다. 일부 여성들은 폴란드의 ‘검은 시위’를 본떠 검은 옷을 입고 서울 도심에서 시위를 하며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주장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블랙 웨이브(Black Wave)’로 부른다. 인공 임신중절을 임신중단이라고 표현한다. 이들은 “피임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낙태수술을 막으면 해외나 시골 등 열악한 환경에서 수술받게 되고 비용이 치솟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발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정부가 지난 11일 없던 일로 했다. 하지만 여진은 계속된다. 블랙 웨이브가 20일 서울 명동에서 시위를 벌인다. 앞으로도 이런 시위를 계속할 예정이다.
낙태 문제는 시한폭탄이다. 가장 최근의 논란은 2009년이다.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가 낙태 근절을 외치며 불법 사례 신고 창구를 개설했고, 일부 병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산부인과 의사 700여 명이 불법 낙태수술 금지를 결의했다. 정부가 이에 떠밀려 단속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실제 단속은 거의 안 했다. 실태 점검도 제대로 안 한다. 2005년 고려대 의대 팀이 연간 낙태 건수를 34만여 건, 2010년 정부의 온라인 조사(17만여 건)로 추정한 게 가장 최근 자료다.
진오비 대변인이었던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난임센터장은 “2009년 10월 동료 산부인과 의사들을 고발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누구도 낙태 시술을 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려 했는데 제대로 안 됐다”고 말했다. 최 센터장은 “낙태를 안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아이 중심으로 정부가 지원하고 남자에게 양육권을 강제해 여자한테만 책임을 묻는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 1항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 ▶모체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에 한해 24주 이내에 인공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이 조항은 1973년 제정돼 2009년 한 차례만 개정됐다. 2009년에 28주를 24주로 강화하고 우생학적·유전학적 질환 중 치료가 가능한 질환(혈우병 등)은 낙태를 금지했다.
이렇다 보니 43년 동안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혼외임신·무뇌아, 중학생 임신도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 하느냐. 외국은 사회·경제적 여건을 감안해 낙태를 허용한다”고 말한다. 무뇌아의 대부분은 태어나자마자 숨진다고 한다. 성관계 연령이 낮아지면서 중학생이 임신하는데, 이런 경우는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혼외임신 해서 애를 낳으려면 제대로 키울 여건이 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낳으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고 한다. 한국에서 비혼모 아이한테 나오는 정부 지원금은 월 10만원 정도다.
전문가도 달라진 환경을 반영해 합법적 낙태 허용 범위를 넓히자는 주장에 동의한다. 김소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낙태를 하는 이유를 들어보고 그 이유들 중 범위를 좁혀 어쩔 수 없는 사유에 대해서는 인정해 주고 감시를 철저하게 하면 된다. 낙태가 안 되는 사유에 대해서는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도록 구체적인 복지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지속되는 저출산 사태가 낙태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년 신생아가 줄어들어 지난해 43만 명대로 떨어졌고, 올해는 40만 명대도 지키기 힘들다는 추정이 나올 정도로 신생아 급감에 우리 사회가 충격을 받고 있다. 이런 마당에 한 해 20만 건 이상에 달하는 낙태의 일부라도 살려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회 저출산·고령화특위 자문위원회 위원인 이영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은 최근 국회 회의에서 “저출산이 이렇게 심한데도 한편에서는 낙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낙태 금지를 강조했다.

낙태 찬반 양쪽 주장에는 교집합이 있다. 남성 양육 책임 강화와 낙태 논의 공론화다. 김현철 낙태반대운동연합회장은 “낙태 경험 여성은 10년, 20년 후에도 후유증에 시달린다. 낙태 논의 이전에 남성한테 양육의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의 서지영 활동가는 “형법 269조에서 낙태하는 여성만을 처벌하도록 한 것은 남성의 책임을 면해주는 것”이라며 “모자보건법에서 우생학적 사유를 일부 허용해 장애 여성 등이 주변에 의해 낙태를 강요받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기회에 과거처럼 낙태 문제를 덮어두지 말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차희제 프로라이프의사회장은 “국가·사회·기업·국민 등 모두가 나와서 낙태 문제 찬반 논쟁을 할 게 아니라 임신·출산의 사회 분위기 조성 같은 공통된 주제를 공론화해 고민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대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정부는 낙태 처벌 강화가 논란이 됐을 때 사회적 논의 기구를 만들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뒤 아직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일 낙태 합법화…폴란드는 전면 금지하려다 철회

「낙태는 세계적 이슈다. 종교나 역사에 따라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1821년 코네티컷주에서 처음 낙태를 금지한 후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주에서 중죄로 다스렸다. 1960년 풍진이 유행해 기형아 발생이 속출하자 낙태 허용 주장에 힘이 실렸다. 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이 나왔다. 연방대법원이 낙태 권리를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하면서 미국 전역에서 낙태가 합법화됐다. 그후 주별로 달라졌다. 미국 31개 주에서 낙태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는 낙태금지법이 시행 중이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생명을 중시하는 프로라이프(Pro-life)인지, 선택을 중시하는 프로초이스(Pro-choice)인지 질문을 받는다.

영국은 낙태에 관대했다가 1803년 낙태 여성을 종신형에 처하며 엄격주의로 돌아섰다. 1937년 최고법원의 낙태실태조사위원회가 필요하다면 합법화하자고 제안하고, 14세 소녀가 2명의 군인에게 성폭행·강간을 당한 사건을 계기로 낙태에 관대해졌다. 67년엔 합법적 낙태 범위에 임신부의 정신적 건강까지 포함했다.

지난달 폴란드에서는 전면 낙태금지법을 시행하려다 없던 일이 됐다. 가톨릭이 강한 폴란드는 성폭행·근친상간, 임신부의 생명 위협 등을 제외하고 낙태를 금지한다. 몰타와 바티칸은 전면 금지다. 일본은 58년 우생보호법이란 미명 아래 낙태를 실질적으로 자유화했다.」

서영지 기자 viv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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