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 헛돈다]⑬ 장애인 고용률 올린다더니 되려 역주행..'마이더스' 아닌 '마이너스' 손 가진 정부

세종=이윤정 기자 2016. 11. 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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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성 근육병을 앓고 있는 지체 2급 중증장애인 A씨는 B회사의 하반기 정기공채에 응시했다. ‘사회 형평적 채용’이라는 전형에 맞게 채용 공고엔 ‘자격제한 없음’이 명시돼 있었다. A씨는 ‘보험심사(장애인) 금융행정직’에 지원했다. B회사는 ‘자격요건을 충족한 모든 지원자에게 면접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만, A씨는 결국 면접을 볼 수 없었다. B회사가 A씨의 장애를 이유로 서류심사에서 탈락시켰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DB

정부가 ‘더 많은 장애인이 일터에서 마음껏 일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관련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장애인 고용률은 오르기는 커녕 오히려 하락하는 ‘역주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은 장애인을 자발적으로 고용하기보단 정부에 등 떠밀려 고용하고 있고, 정부는 채워지지도 않는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기 바쁘다. 일할 수 있는 장애인 인구가 240만명에 달하는 현재, 장애인 고용을 위한 정책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장애인 고용률 ‘역주행’…자발적 장애인 고용 위한 ‘당근’ 태부족

정부는 지난 1998년부터 5년마다 장애인 고용률 제고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 왔다. 지난 2012년 12월에는 ‘제4차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기본계획(2013~2017)’, 지난해 1월 ‘장애인 고용 종합대책’ 등이 발표됐다.

그러나 장애인 고용률은 대책이 시행된 지 수 년이 지난 지금 오르기는 커녕 하락했다. 지난해 15세 이상 장애인 고용률은 34.8%로, 제4차 대책이 시작된 2013년(36.0%)보다 오히려 2.2%포인트 낮아졌다. 같은 기간 전체 고용률은 60.0%에서 60.9%로 소폭이나마 상승했는데, 장애인 고용률은 오히려 역주행한 것이다.

장애인 고용률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뒷걸음 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유도하는 ‘당근’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의무 고용률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받는 불이익이 크지 않은 것도 이유로 꼽힌다.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장애인 1인당 사업주에게 지급되는 고용장려금과 장애인 직업편의시설 투자액 지원, 표준사업장으로 지정될 경우 받을 수 있는 세제 혜택 등이 있다.

그러나 고용장려금을 제외하면 나머지 혜택은 기업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 정책이다. 장애인 직업편의시설 투자액 지원의 경우 정부가 낮은 수준의 이자로 융자를 지원해주는 것으로, 결국 기업의 돈이 들어가야 한다.

세제 혜택이 뒤따르는 표준사업장으로 지정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장애인 근로자가 10명 이상이어야 하고, 상시근로자 수 대비 장애인 근로자 수의 비율은 30% 이상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50명의 상시근로자를 보유하고 있는 A기업이 표준사업장으로 지정되기 위해선 45명 이상의 장애인 근로자가 필요하다.

이중에서도 중증 장애인 근로자는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하며 장애인 편의시설과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 등이 모두 갖춰져 있어야 한다. A 기업의 경우 상시근로자 100~300명 기업에 해당돼 중증장애인이 상시근로자의 10%+5명이어야 한다. 결국 장애인 근로자 45명 중 20명 이상은 중증장애인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 장애인 의무고용 목표치만 계속 올리는 정부…기업들 “장애인 고용하느니 부담금 낸다”

이진희 디자이너

자발적 고용을 유도하는 당근이 부족하다면 ‘채찍’이라도 강력해야 하지만, 이 역시 장애인 고용률 제고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모양새다. 정부가 제시하는 장애인 고용 목표치는 터무니없이 높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내야 하는 부담금은 기업들에게 ‘종이 호랑이’에 불과한 것이다.

정부가 각 공공·민간부문의 장애인 고용률을 할당해 둔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살펴보면, 공공기관은 전체 직원 중 3.0%를, 민간기관은 2.7%를 장애인으로 채용해야 한다. 이는 앞으로 점차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는 민간부문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2017년 3.2%, 2019년 3.4%로 올리기로 확정했고, 공공부문 역시 각각 3.2%, 3.4%로 상향 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장애인 고용률은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7년간 단 한번도 3%를 넘어선 적이 없다. 민간부분 역시 같은 기간 최고치가 2.51%에 불과하다. 정부의 목표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뒤따르는 이유다.

반면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점차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장애인 고용부담금이란 상시근로자가 100명 이상 있는 공공·민간기업 중 의무고용률 미만으로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주가 내야 하는 부담금을 말한다.

기업들이 낸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2434억6600만원 걷혔던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2013년 3187억7700만원, 2014년 3419억5800만원 등으로 늘어나 지난해엔 4180억8700만원을 기록했다. 장애인 고용보다 부담금 납부를 택하는 기업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부담금이 제재 수단이 되지 못하는 방증이다.

2015년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사업주는 의무고용률에 미달할 경우 1명당 최소 월 75만7000원을 내야 한다. 부담금의 최대치는 장애인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을 경우 내야하는 월 126만270원이다. 그러나 이는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 149만4000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 “능력있는 장애인 부족하다” 기업 아우성치지만…장애인 교육 인프라는 ‘부족’

기업들은 ‘능력있는 장애인’이 부족하다고 항변한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 직업훈련 인프라를 확충한다고 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장애인 훈련 수요를 충족하고, 업무능력을 갖춘 장애인력 양성을 위해 장애인 능력개발원 신축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3년 당시 직업훈련을 희망한 장애인은 약 8200명이었지만, 실제로 장애인고용공단의 훈련 등 실업자 훈련에 참여한 장애인은 4950명에 불과했다. 능력개발원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애인 능력개발원은 이후 단 한 곳도 새로 지어지지 않았다. 일산(1991년 건립), 대전, 부산(2000년 건립), 전남, 대구(2001년 건립) 등 여전히 5곳에 불과하다. 2020년까지 발달장애인 직업능력개발센터를 16개 시·도 단위로 확대 추진한다고 했지만, 확정된 곳은 단 4곳에 불과하다.

장애인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참석해 상담을 받고 있는 구직자의 모습./연합뉴스

또 장애인 능력개발원 내에 여성, 고령 장애인 맞춤형 훈련과정을 신설한다고 했지만, 홈페이지에서 관련 과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직업능력원 관계자는 “훈련과정은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데, 사업을 안할 수도 없고 필요하기도 하니 그때그때 맞춤형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여성, 고령 장애인 관련 정규 훈련과정은 없다”고 말했다.

◆ “의무고용, 고용부담금 한계 달했다…장애인 배타적 분위기 해결해야”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정책만으로는 기업의 자발적 장애인 고용을 이끌어내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장애인을 배척하는 문화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변용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의무고용 할당제, 고용부담금 등 현재 제도로는 장애인 고용률 제고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근본적으로 (정책을)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변 연구위원은 “고용할당제의 경우 규제적 측면이 강한데, 무조건 올리라는 것은 기업에게 큰 부담”이라며 “목표만 올려놓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부담금을 걷는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용장려금 제도 역시 부실기업들이 형식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한 뒤 받아가는, 기업 명맥 유지용으로 오용되는 경우도 있다”며 “기업들이 고용부담금을 무서워할 수 있도록 더욱 큰 폭으로 인상하고, 고용장려금은 좋은 기업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재준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육체노동만 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장애인의 생산성이 비장애인보다 현격히 떨어진다고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장애인에게 배타적인 사회”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장애인을 고용해도 사회적 공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기업에 이익도 되지 않는다면 장애인 고용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법적으로 장애인 고용을 강제하기보다는,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진 사회로 바뀔 수 있도록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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