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거세됐던 코미디 '최순실'을 갖고 놀다

박상현 기자 2016. 11. 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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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최순실 사태' 풍자·패러디 열풍
방송가 풍자 기지개.. '최순실 복장'하고 現정권 꼬집어
대중도 인터넷·SNS로 놀이하듯 직접 패러디 제작·공유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의 한 장면. 남사당패 광대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은 한양의 저잣거리에서 폭군 연산과 그의 애첩 녹수를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인다. 이내 권력자를 희롱한 죄목으로 의금부에 잡혀가지만, 공길의 재치로 여죄를 탕감받고 왕의 연희를 담당하는 궁중 광대로 신분이 격상된다. 이들이 첫 연희에서 선보인 경극은 비(妃) 자리를 둘러싼 여인들의 암투. 왕이 후궁에게 사약 내리는 장면을 본 연산은 이 풍자로부터 촉발된 생모(生母) 폐비 윤씨에 대한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하다 선왕의 여자들을 칼로 내리친다.

남사당패가 보여준 풍자와 해학은 이제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 무대를 기반으로 '누구나' 만들고 '어디서나' 존재한다. 대중은 패러디를 손수 제작하고 유통하며 부패한 정권을 조롱하고 비난한다. 언론이 연일 '최순실 국정 농단'과 관련된 경성(硬性) 뉴스를 쏟아낼 때, 반대편에선 최순실·정유라를 희화화한 연성(軟性) 패러디를 제작한다. 풍자의 핵심은 '비웃음'. 소설 '상실의 시대'를 빗댄 '순실의 시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빗댄 '순실은 프라다를 신는다' 등이 제작되고, 유튜브 채널에선 핼러윈을 맞아 최 모녀 분장으로 이태원을 찾은 BJ들 모습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비판 거세됐던 개그, 최순실 사태로 폭발

방송가도 모처럼 풍자 기지개를 켰다. 비리 국회의원을 빗댄 단어 '여의도 텔레토비'를 코너명으로 사용한 SNL코리아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가 폐지된 후 실종됐던 '시사 코미디'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지난 5일 방송된 SNL코리아 시즌 8은 전체 코너 중 절반을 최 모녀의 직·간접 비판에 할애했다. 아파트 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갑을 관계를 다룬 '이웃 2016 vs 1980'에선 배우 김민교가 최순실 복장으로 등장했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선 개그맨 유세윤이 승마 복장으로 등장해 "엄마 빽도 능력인 것 모르냐"고 소리치며 신들의 따귀를 때렸다. KBS 개그콘서트 '세젤예' 코너는 "이대로 드리면 되느냐"는 종업원 말에 "왜 내 앞에서 이대(梨大) 이야기 꺼내느냐"는 식으로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을 풍자해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방송 직후 공개된 클립(Clip·방송 하이라이트) 영상 조회 수에서 타 코너 평균인 7400건보다 35배 높은 26만 건을 기록했다. 4대강 ·자원 외교·무상 급식 등 정치 이슈를 다루다 폐지된 코너 '민상토론'도 부활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명명(命名)을 두고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게이트' 사이에서 논쟁을 벌여 시청자의 호응을 샀다.

말·글 대신 '이미지'로 이슈를 소비하다

패러디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스마트폰'은 이러한 2차 창작물을 더 손쉽게 만들어주는 '무기'다. 합성 앱(App)이나 사진 편집 앱을 사용하면 짧은 시간에 전문가 못지않은 제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주류 권력을 해체하고, 갖고 논다는 데서 오는 저항의 쾌감이 크다. 패러디 제작자가 주인공으로 직접 등장한다는 것도 '최순실 패러디'를 전후해 달라진 점. 인스타그램 해시태그(Hashtag·게시물 분류와 검색이 용이하도록 단어 앞에 #을 붙이는 방식)로 '#이러려고'를 검색하면 게시물 1000여 개가 검색된다. 목줄에 끌려다니는 개 사진엔 '이러려고 산책 나왔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란 문구가, 야식 먹는 사진엔 '이러려고 다이어트 시작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란 문구가 달려 있다. 이슈에 참여했다는 '인증'과 좋아요(페이스북), 하트(인스타그램) 개수를 늘려가며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최순실 사태'와 맞물려 하나의 놀이로 소비되는 것이다.

패러디 소비가 비단 젊은 세대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직장인 신민하(43)씨는 카카오톡 프로필을 '최순실 짤방 생성기'라는 인터넷 합성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원하는 사진과 문구를 입력하면 뉴스의 한 장면처럼 편집해준다. 신씨는 "회사 단체 카톡방에서 사원이 공유한 사이트를 타고 들어가 '짤방'(잘림 방지·패러디 사진)을 손수 만들었다. 만취한 채로 귀가한 남편을 찍은 사진에 '이러려고 결혼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란 문구를 넣어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했더니 남편이 식겁하며 내려달라고 아우성이더라. 나도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연습용 짤방'을 수십 개 만들어봤다"고 말했다.

패러디: 건전한 무기 혹은 잔혹한 흉기

패러디가 언제나 건전한 방식으로 제작·유통되는 것은 아니다. 패러디의 건전성을 진단하는 척도는 팩트에 기반을 둔 '비판 의식'. 이것의 유무에 따라 권력을 향해 날리는 조소(嘲笑)가 되기도 하고, 알맹이 없는 능욕이 되기도 한다. 극우 성향의 사이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패러디가 한 예. 이들은 고인과 부엉이·코알라 등의 동물을 합성해 망자 명예훼손으로 사법처리되기도 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유통되는 '최순실 패러디물'도 국정 농단의 폐해를 꼬집는 풍자물과 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맥락 없는 조롱이 뒤섞여 있다. 한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구독자에게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보단, 광고 단가를 높이려고 자극적으로만 콘텐츠를 생산하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패러디 양산과 소비는 대중을 적극적인 '이슈 참여자'로 만든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바일을 통해 패러디 제작과 공유가 쉬워지면서 '놀이'의 형태로 이슈를 소비하는 건 정치적 무관심을 타개할 수 유용한 방법 중 하나"라면서 "시민 누구나 개성을 살려 사회에 일갈하는 '1인 저항'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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