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김진태도 궁금해하는 '중고생연대' 어떤 단체?
[한겨레] 청소년 인권운동단체 설립한 1998년생 최준호씨 인터뷰
김진태 “중고생 배후에 종북주의 교사 있지 않겠나” 발언에
“혁명이란 단어 쓴 건 4·19혁명 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
지난 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길에 펼침막을 든 중·고교생 수백명이 나타났습니다.
-사는 곳이 강원도 춘천이라고 들었어요. 지역구 국회의원이 김진태 의원인데, 혹시 만난 적이 있나요?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
“만난 적은 없죠.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하지? (잠시 생각하다) 거리로 나온 중·고등학생들 한 명이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활동 이력 때문에 대놓고 ‘종북’이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네. 엄청 일상이었죠. 괴로운 일상이었죠. 지금도 듣고 있고, 국회에서도 듣고 있고. 친구들이 그런 질문을 할 땐 ‘내가 하는 활동을 살펴봐 달라’고 했어요. 북한의 ‘북’자 꺼낸 활동을 한 적도 없고 교육체제, 학생인권에 대한…니네들 잘 살라고 활동하는 거라고. 김진태 의원이 중고생연대에 대해 이적성 조사하라고 하니, 어떤 단체인지 문의가 종종 와요. 우리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할 생각이 없고, 현 시국에 대한 문제를 학생들 입장에서 이야기하려는 거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정말, 북한을 어떻게 생각해요?
“북에 대해서요? 하하하하하. 잘못 이야기하면 이건…. 그런데 북한에 대해서 어떤 시민이 깊은 성찰을 하고 있겠습니까. 저도 별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요. 독재나 군비 확충, 호전성, 이런 부분들 당연히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어요. 통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혁명’을 내세운 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던 상황에서 중고생들이 많이 나섰던 4·19혁명 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를 담은 거에요. 교과서에도 나오는 단어잖아요. 중고생혁명과 북한을 연결시키는 의견엔 ‘절대’ 동의할 수 없지만,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있어 (12일 집회) 펼침막 구호를 바꿨어요.”
-중고생연대 조직도나 표현 방식이 오래된 기성세대 운동단체랑 닮았어요. ‘미러링’처럼 기성 단체들의 표현에 대해 나름의 비판적 시선을 담은 건 아닐까, 그런 상상도 했습니다.
“하하하하. 그런 건 아니고요. 우리는 통통 튀는 표현보다 기성 단체들이 쓰는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데요. 중고생들도 성인과 동일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
-중고생연대는 어떤 단체인가요. 무엇을 요구해왔죠?
“중학생 때부터 청소년단체를 만드는 시도를 해 왔어요. 중고생연대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졌어요. 당사자(중학생, 고등학생, 학교를 다니지 않는 13~19살 미성년자) 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성인 활동가들은 참여시키지 않아요. 후원은 감사하게 받지만.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매 맞지 않을 권리, 내 머리를 자유롭게 기를 권리,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수 있는 권리. 여유가 있을 권리…. 입시 경쟁이 축소되고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살아낼 수 있는 사회, 굳이 나를 위해 어마어마한 압력을 견뎌내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 정책을 만들 때 청소년들 의견이 들어가지 않아 사회가 더 악화된 거 아닌가 싶어 청소년 투표권, 참정권을 요구하고 있어요.”
-학교를 졸업했는데도 중고생연대 활동을 하는 까닭이 궁금해요.
“제가 어쨌든 단체를 만들어 끌고 오다보니 제 비중이 커서 갑자기 빠지는 게 힘들었어요. 제 과오라고 생각해요. (만 19살이 되기 전) 후배들에게 단체를 물려 줄 유예 기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일이 터져 나서게 된 거에요. 안 그래도 뉴스가 저한테 집중돼 최대한 인수인계를 빨리 하려고 해요. ”
옛 민노당은 당원 활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당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민노당은 2011년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 등과 합당해 통합진보당이 출범합니다. 2012년 통진당은 민노당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청소년 당원들의 당원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결정했고, 준호씨는 이에 반발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지금은 통진당을 포함해 정당 활동은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우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요. 그때 학생들이 집회에 많이 나왔잖아요. 초등학생 입장에서 학교나 학원에서 싫고 짜증나는 게 많았는데 그런 걸 이야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학생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런 걸 알게 됐어요. 중학교 입학(2010년) 하면서 입시나 두발 규제 같은 문제가 와 닿더라고요. ‘니가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성인이 되서 굶어죽을 거다’라는 말이나 체벌·두발규제 같은 거, 중1이 감당하기 어렵잖아요. 이런 문제가 입법을 통해서 결정되는 거라고 생각해 민노당에 가입하게 된 거에요.”
-학생 당사자들 중에는 중고생연대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요? 정치에 관심 없는 학생들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성인들 이야기는 잘 모르겠고요. 학생인권조례나 9시 등교제, 야자 폐지 같은 정책이 학생들의 지지를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쨌든 수능으로 귀결되는 입시체제가 있잖아요. 학생들은 경쟁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내가 공부 안 하면 뒤처지는 건데. 핵심 문제는 남아 있는데 겉으로만 바뀌는 개혁을 하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 같아요. 정치에 관심없는 건, 개인이 문제라기보다 ‘중고생은 관심 가질 나이가 아니다’라는 환경, 사회적으로 권리·권한도 주어지지 않고 정당 가입도 안 되는 상황이니까.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중고생들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뭘까요?
“애들끼리 모이면 게임, 이성친구, 연예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요즘엔 최순실 이야기만 해요. 집회에 나가든 나가지 않든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정유라 특혜입학 부분은 특히 당사자 문제잖아요. 입시로 힘든데, 누구는 특례를 누리고 살았다는 것. 우리 사회에 부조리함이나 검은 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실제로 드러났고 그 실체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친구가 많나요? 친구들은 준호씨 활동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무난무난하게 있죠. 제 활동에 참여하는 친구들은 적고, 대신 ‘왜 하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번 사건 계기로 ‘너 왜 그렇게 하는지 알겠다’라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아요.”
“네. 그런 일이 적지 않고 현재진행형입니다. 많은 단체 활동가들이 “학생들이 왜 나왔어. 너희들은 아직 공부할 때야. 이런 건 우리가 할게” 이렇게 이야기 하세요. 저희는 ‘학부모로서 마음을 이해못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기까지 많은 고민을 한 것이니, 걱정되더라도 좀 더 지켜봐주시면 어떻겠냐’ 라고 설명해요.”
-부모님이나 선생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요.
“전혀요. 아버지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세요.”
최준호씨는 ‘불순세력으로부터 선동당했다’는 비난이 당황스럽지만, 집회에 온 중고생들을 치켜세우는 시선도 낯설다고 합니다. “저희를 단순히 객체가 아닌, 스스로 생각해 거리에 나왔고 스스로의 권리를 외치고 있다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최준호씨가 집회에 참여한 다수의 10대를 대표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튀는’ 경우이겠지요. 한편으론, 누군가가 잊고 있던 수십년 전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인 1988년 11월8일치 <한겨레>는 이런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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