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충·김치녀·된장녀.. 여전히 존재하는 불편한 현실, 여성혐오

북스조선 유영훈 기자 2016. 11. 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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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C] 책을 통해 본 '여성 혐오'의 의미 그리고 해결책

싫어할 혐(嫌)에 미워할 오(惡). 싫어하는 데다 미워하는 것을 연이어 강조하는 부정적인 이 단어는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가 혐오라는 단어를 이렇게 쉽게 입에 올리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사회 안에 소수자나 약자, 반대 성(性)을 혐오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지난 2014년 국립국어원이 '극혐오하다(극혐)'를 올해의 신조어로 꼽았을 정도로 이 불편한 감정은 우리 사회 가까운 곳으로 침투했다.

혐오가 대한민국 사회만의 이슈는 아니다. 지난 여름 유럽을 뜨겁게 했던 무슬림 여성용 부르키니(수영복) 논란은 이슬람 문화와 여성을 향한 혐오에서 기인했고, 이민자에 대한 혐오는 유럽 대륙을 테러 1순위 지역으로 만들었으며, 잇따른 미국의 경찰 총기 사고는 흑인 혐오에서 불거졌다.

그중 여성에 대한 멸시, 편견을 뜻하는 '여혐(여성 혐오의 줄임말)'은 이젠 누구나 사용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여성 혐오는 영어단어 misogyny의 번역어로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를 포함한 여러 방식을 뜻하는 말로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적 문화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지난 5월 한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살해된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거리와 온라인에는 한동안 "여성 혐오를 멈추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물론 다수의 남성은 이 외침이 불편하다. 남성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들의 말처럼 정말 여성혐오는 몇몇 나쁜 사람들의 문제일까.

진짜 여성 혐오가 무엇인지 또한, 이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책에는 어떤 게 있을까.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3권의 책을 골라봤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우에노 치즈코 지음|나일등 옮김|은행나무|316쪽|1만4000원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책 속에서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여성 혐오 사상을 들춰낸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흔히 말하는 '자기 여자'라는 말은 여자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려는 여성 혐오에서 비롯된 말이며 이 말을 하는 남자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자들의 마음 또한 여성 혐오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 탓에 찾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문학을 위주로 한 예술 작품 속에 숨겨진 여성 혐오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아들의 유무로 서열이 달라졌던 일본 왕족의 서열 문화 등을 통해 그 속에 숨은 여성 멸시를 찾아낸다. 주로 일본의 사례를 예로 들었지만, 우리나라와 견줘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저자는 단숨에 여성 혐오를 극복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극복하기 위해 실체를 아는 것이 필요하고 모든 사람이 불쾌하게 느낄 만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문제의 인식과 공론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 저자가 기대하는 것이 사람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이런 작은 변화가 아닐까.

진짜 여자가 되는 법|케이틀린 모란 지음|고유라 옮김|돋을새김|456쪽|1만3500원

이 책은 결혼과 사랑 등 일반적인 주제에서부터 제모와 낙태, 성희롱 등 여성이 살면서 겪는 민감한 상황에 대한 내면 이야기를 직설적인 표현으로 풀어낸다. 포르노, 성기를 지칭하는 노골적인 속어가 가득하지만 가볍지 않다. '수위가 너무 세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독자를 설득한다. 영국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1년 동안 TOP10을 차지했고 저자는 영국 언론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칼럼니스트' 상을 받았다.

예상대로 저자의 주장은 파격적이다. 일단 남성 중심적인 하드코어 포르노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남녀 모두 사정할 수 있는 인간적인 포르노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어 어머니가 되면서 배울 수 있는 가치를 다른 일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며 아이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린다.

책 속에서 그동안 세상 모든 여자의 주요 관심사로 알고 있었던 연애, 고양이, 핑크 중독증은 없다. 목차만 봐도 헉 소리가 날 만큼 '진짜 여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까발린다. 뭔가 급진적인 내용처럼 보이지만 사실 저자가 말하는 '진짜 여자'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인간이다. 남자를 제압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자신의 욕망과 기준에 따라 삶을 규정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 말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레베카 솔닛 지음|김명남 옮김|창비|240쪽|1만4000원

미국의 저명한 문화평론가인 저자는 파티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는 중요한 책이 있다며 저자에게 책에 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지만 알고 보니 그 책은 저자가 쓴 책이었다. 곁에 있던 동석자가 "당신이 말한 책은 이 사람이 쓴 책"이라며 서너 번 알려준 뒤에야 일장연설을 멈췄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남자는 그 책을 읽어 본 것도 아니었고, 신문 서평을 통해 접했을 뿐이었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이 책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10년 올해의 단어 '맨스플레인(mansplain : man+explain의 합성어로 남성이 여성에게 잘난 체하는 태도로 설명하는 것)을 탄생시킨 동명의 글을 비롯해 남녀의 불평등을 고찰한 저자의 산문 9편을 엮었다.

저자는 잘난 척하며 가르치기를 일삼는 일부 남성과의 일화와 이를 통해 일그러진 세계의 단면을 그려낸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맨스플레인' 때문에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침묵을 강요당한다. 이로 인해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는 데 반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 확신을 키우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지만, 모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며 살아간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쩌면 한쪽의 입장에서 각을 세운 저자의 글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불편함까지 매끄럽게 펼쳐내는 책 속 메시지는 명료하다. 세상을 바꾸려면 남성과 여성이 진정으로 함께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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