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본때를 보여야"..'청와대는 언론을 어떻게 길들였나?'

정홍규 2016. 11. 1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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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지적, 비판 그대로 두면 안 됨"
"언론중재위 제소, 고소고발 및 손해청구 등 상응하는 불이익이 가도록 철저히 대응할 것"

지난 2014년 6월부터 7개월간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故 김영한 씨의 비망록에 적힌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수석회의 발언 내용이다.

■ TV조선,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 인용 보도

발언이 나온 때는 2014년 7월로 안대희,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큰 상처를 입었을 때다.

'TV조선' 은 14일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을 바탕으로 청와대가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와 언론에 대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언론통제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 靑, 대통령 측근 의혹 보도 잇따라 소송

김기춘 전 실장의 말대로 청와대는 정권에 불리한 보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특히 대통령의 측근과 비선실세에 대해서는 더욱 강하게 나왔다.

김 전 실장의 위 발언이 나오기 전인 2014년 4월, 청와대는 김기춘 실장과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장, 안봉근 제2부속실장 명의로 시사저널을 상대로 8000만 원의 손해배상과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시사저널 기사의 요지는 "청와대 비서진 3인방과 박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 EG회장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같은 해 5월에는 비슷한 내용을 보도한 일요신문을 상대로도 소송을 걸었다.

그해 8월에는 검찰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실세로 알려진 정윤회 씨를 만났다는 의혹을 제기한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나고 있었나?'라는 칼럼을 쓴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라면 해외 언론에까지 재갈을 물리려는 이 같은 행태는 큰 논란을 불러왔고, 법원은 그해 11월 해당 기사는 "박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으로 기사를 게재한 것이 아닌 만큼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적힌 대통령 지시사항, TV조선 보도 캡쳐


■ "끝까지 밝혀 본때를 보여야"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는 비판 언론에 대한 대응과 관련한 지시사항으로 김기춘 실장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발언도 등장한다.

2014년 7월 15일 비망록에는 "시사저널 일요신문-끝까지 밝혀내야. 피할 수 없다는 본때를 보여야. 선제적으로 열성과 근성으로 발본 색원"이라는 지시사항이 적혀 있다.

기록 옆에는 領(령)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어 해당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을 의미한다고 TV조선은 전했다.

2014년 11월 28일 정윤회 문건을 최초 보도한 세계일보 1면


■ '靑, "정윤회 문건 보도" 세계일보 전방위 압박'

대통령 측근 문제에 대한 비판적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의 대응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정윤회 게이트를 최초 보도한 세계일보 보도와 관련해서다.

세계일보는 2014년 11월 28일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속칭 증권가 '지라시'로 떠돌던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은 정윤회 씨가 자신의 비선라인을 통해 퍼뜨린 루머라는 사실을 청와대 내부 문건을 바탕으로 보도한 것으로, 이 보도는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검찰 수사와 탄핵 위기를 불러온 '최순실 게이트'의 시발점이 됐다.

당시 해당 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당연히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청와대 비서관 등 8명의 명의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세계일보 회장과 편집국장 등 6명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법적 대응뿐만 아니라 청와대는 권력 기관을 동원한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해당 보도가 그만큼 정권에 치명적일 수 있다라고 청와대가 인식했던 것이다.

TV조선이 보도한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을 보면 보도 당일 민정수석실은 '세계일보 공격 방안'을 논의하고, 사흘 뒤 김기춘 비서실장은 압수수색 장소로 세계일보를 거론한 것으로 드러났다.

압수수색 외에 세계일보에 대한 세무조사 방안도 논의됐지만 두 가지 방안 모두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세계일보에 대한 세무조사 대신 보도가 나간 지 2달 뒤 서울지방국세청은 통일교 관련 회사에 대해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통일교는 세계일보를 소유한 재단으로, 통일교 관련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2013년 10월 통일그룹의 일부 계열사에 대한 조사 이후 불과 1년 3개월 만이었다.

세계일보와 통일교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이뤄진 가운데 세계일보는 2014년 12월 1일 기존 회장이었던 문국진 전 통일그룹 회장의 후임으로 손대오 선문대 부총장을 새 회장으로 선임했다. 해당 보도가 나간 지 불과 사흘 만이었다.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을 보면 청와대가 세계일보 보도 6개월 전부터 '정윤회 문건'을 취재한 세계일보 기자를 주시하고, 세계일보 회장 교체 움직임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윤회 문건에 등장한 최순실, 우측 빨간색 네모 안에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이라고적혀 있다. 2016년 11월 24일 세계일보 보도 캡쳐


■ 세계일보, '정윤회 문건에 이미 최순실 거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100만 명의 광화문 촛불집회 직후 세계일보는 14일 '정윤회 문건에 이미 최순실 거론됐다'고 보도했다.

공식 문건 작성을 위한 '초안' 성격의 '시중여론'에 정 씨 관련 첩보와 함께 최 씨의 국정개입이나 그 영향력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특히 문건에는 정윤회 씨와 '문고리 3인방'을 포함한 이른바 '십상시'들과의 모임에서 "이 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라는 말이 오갔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이 말은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이 검찰 조사에서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이 보고된 2014년 1월에 이미 최순실 씨의 존재와 국정농단 가능성을 알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로부터 압박을 받지 않았더라면 최초 보도 이후 무려 2년 만에 알려진 이 같은 사실은 더 이른 시기에 보도됐을 수 있을 것이고,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의 존재 또한 더욱 빨리 세상에 알려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여론 조작, 회유, 공영방송 이사 선임 개입도'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는 이밖에도 언론 대응과 관련한 청와대의 어두운 모습이 곳곳에 나타난다.

세계일보 '정윤회 문건' 파문 직후 김기춘 비서실장은 "문건 사건 보도가 빈발할 것이 우려된다"며 "기사거리를 풍부히 제공하라"고 말하며 사실상 여론 조작을 지시하기도 했다.

또한 시사저널과 일요신문에 대한 소송 당시 비망록에는 "VIP 관련 보도 - 각종 금전적 지원도 포상적 개념으로. 제재는 민정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법적 대응과 세무조사 등 민정수석실 주도의 채찍뿐만 아니라 금전 지원 등 각종 당근책을 마련해 청와대가 언론을 회유하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비망록에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 때는 성향을 확인하라는 지시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홍규기자 (dwarf@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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