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이 10조원 이상인 대기업은 내년부터 국내 계열사와 해외 계열사 간 거래 내역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 감시가 덜한 국외 법인을 통해 일감이나 수익을 빼돌리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대기업집단 공시제도 실효성 제고 방안’을 14일 발표했다. 지금까지 대기업은 국내 계열사와 해외 계열사 사이 매출 총액만 공시하면 됐다. 앞으로는 해외 계열사별로 국내 계열사와 어떤 거래를 얼마만큼 했는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알려야 한다.
공정위는 관련 고시를 연말까지 개정할 계획이다. 바뀐 규정은 내년 5월 기업집단 현황 공시 때부터 적용된다. 계열사 자산을 모두 합한 액수가 10조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이 대상이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해외 계열사는 관할권 문제, 조사의 어려움 등으로 시장 감시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해외 계열사 관련 공시 제도를 개정해 시장의 자율적인 감시 기능을 강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기업집단(공기업 제외) 소속 국내 계열사가 올린 전체 매출 가운데 22.7%는 해외 계열사를 통해 이뤄졌다. 2014년 21.7%에서 1%포인트 늘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 같은 수출 기업이 현지 판매법인에 넘긴 물량까지 포함한 비율이긴 하지만 이런 방식의 내부 거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공정위가 공시제도를 고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다. 올해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62)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 분쟁 과정에서 광윤사·L투자회사 같은 일본 내 계열사가 국내 주요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구조가 드러났다. 롯데그룹은 일본 계열사를 총수 일가와 관련 없는 ‘기타 주주’가 소유한 회사라고 허위로 보고하며 당국의 감시를 피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위는 기업 총수나 국내 계열사가 지분을 가진 해외 계열사 주주 현황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