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사건 1년, "이대로 잊혀지면.." 광장에 선 두 딸

강버들 입력 2016. 11. 14. 21:34 수정 2016. 11. 15.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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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에선 100만 명이 촛불을 밝혔죠. 그런데 1년 전엔, 바로 오늘 11월 14일이 시민단체들이 정한 이른바 '민중 총궐기'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올해와는 달리 작년엔 경찰 살수차가 등장했고, 결국 이 살수차 물대포에 맞아 농부 한명이 쓰러졌습니다. 바로 백남기 씨입니다. 백 씨를 기리기 위해 오늘(14일) 서울 도심 곳곳에선 추모 공연과 플래시몹이 이어졌습니다. 물대포 사용을 금지해달라는 집회·시위법 개정안도 국회에 입법 청원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당시 물대포 직사를 지시했을 경찰 지도부에 대한 처벌은 아직 없었습니다. 수사를 맡은 검찰은 그저 "부검을 못해 수사에 진척이 없다"고만 합니다. 이 때문에 백씨의 두 딸은 "아버지만 떠나고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답답해 합니다.

강버들 기자가 백 씨의 두 딸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기자]

백남기 씨가 쓰러졌던 서울 종로에 두 딸이 섰습니다.

[백민주화 : 광화문 지나다니는 것도 울컥 해서…'(이런)날씨에 물포라는 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도 들고…]

일흔 아버지가 집회에 나갈 때면, 복잡한 서울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이었다는 두 딸.

[백민주화 : '걱정 말라'고. '머릿수 채워주는 개념으로 바람 쐬고 오겠다'고. '잘 다녀올게' 웃으면서 가셨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1년 전 오늘 물대포에 쓰러졌습니다.

[백도라지 : 7시 30분 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데, (도로가 통제돼) 경복궁역부터는 더 이상 차가 안 가는 거예요. 병원까지 걸어왔죠. 도착하니 9시쯤. 서울대병원이 보이는데 다리가 힘이 쭉 풀리는 거예요.]

도착 당시 의사들은 수술도 소용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나타난 신경외과 백선하 과장이 수술을 제안했습니다.

[백도라지 : (가족들이) 여기는 한국에서 제일 좋은 병원이고, 제일 뛰어난 의사 선생님이 있는 곳이니까. 여기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하자.]

하지만 그 뒤로 317일. 여전히 의식 없이 칠순을 맞은 바로 다음 날, 백씨는 가족들 곁을 영영 떠났습니다.

사망 직후 가족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백도라지 : 결국 가족 탓을 하잖아요.]

주치의 백선하 과장이 사인을 '병사'라고 진단하고, 가족 반대로 치료를 못해 숨졌다고 한 겁니다.

[백도라지 : (사망)직전에는 인공호흡기 산소 농도를 100%로 해놨어요. 그래도 검사를 하면 산소가 없죠. (그런데도)'사실 수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이 주장을 근거로 부검을 요구하는 경찰과 한달 간 신경전 끝에 가족은 지난 5일에야 장례를 치렀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 하지만 두 딸은 지난 12일 다시 광장으로 나섰습니다.

[백도라지 : (책임자 처벌이) 진행 안되는 상태에서 잊혀지면 안되니까.]

[백민주화 : 사과 받고, 경찰들은 처벌 받는 날이 올 거라고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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