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허수아비' 그림..알고 보니 풍자 아닌 예언!

2016. 11. 1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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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터뷰/블랙리스트 작성 촉발한 ‘세월오월’ 작가 홍성담

“세월호 현장 온 박근혜 동선 연출된 느낌에 허수아비 떠올려”
“날 ‘사이비’라 칭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고소할 것”
유신시대 연작과 ‘출산도’ 연작까지 모아 내년 개인전 구상

12일 경기도 안산 작업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홍성담 작가.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풍자해 그린 신작 <똥의 탄생> 앞에서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세상과 시대를 주시하는 리얼리스트로서 박근혜 허수아비 정권의 본질을 간파해 그림으로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도판 홍성담 작가 제공

'> “나라가 인정한 화가인데, 사이비 예술가라니요? 근거 없이 그렇게 말한 김기춘 전 실장을 조만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생각입니다.”

12일 경기도 안산 초지동 작업실에서 만난 홍성담(62) 작가는 너털웃음부터 지었다. 2014년 8월8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홍성담 배제 노력, 제재 조치 강구’란 지시를 하달하며 작가를 ‘사이비 예술가’로 지칭했다는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내용이 최근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고 당장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대뜸 1989년 <민족해방도>를 그려 전시했다가 간첩 혐의로 구속됐을 때의 일화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옥중에서 날 고문한 안기부 직원 2명의 얼굴을 캐리커처로 그려 이들을 가해자로 고소했지요. 그때 변호사 말이 고소가 성립되려면 과거 나라에서 화가로 인정받은 증거를 내놔야 한다는 거예요. 대학 3학년 때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입상한 적이 있었어요. 이름도 모르는 고문 수사관들의 얼굴을 떠올려 정밀한 초상을 그리고 이 수상 기록까지 찾아서 소송했지요. 검찰이 잡아떼서 결국 승소하진 못했지만, 그때 그림 실력이 정말 늘었어요.”

김 전 실장이 ‘홍 작가 배제’를 언급한 8월 초 작가는 ‘표현의 자유’ 논란에 휩싸여 있었다. ‘2014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광주정신’에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대작 <세월오월>의 출품이 광주시와 비엔날레재단 쪽에 의해 보류되면서 동료 작가들이 출품 거부를 선언하는 등 논란이 한창 달아오르던 시점이었다. 김 전 실장의 지시 직후인 그해 8, 9월께부터 청와대 정무수석실 주도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가 본격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하달됐다고 문체부 전·현직 관계자들은 최근 <한겨레>에 폭로한 바 있다. 대작 <세월오월>이 계기가 되어 블랙리스트 작성이 청와대 주도로 시작됐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한겨레> 보도 전에 일부 공개된 시국선언 예술인들의 명단을 모은 블랙리스트엔 희한하게도 제 이름이 없더라고요. 물론 저는 작업하느라 일체 시국선언에 참여하지 않긴 했지만 기분이 나빴어요. 김 전 실장이 분명히 저를 지칭해 블랙리스트 작성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왜 이 명예로운 명단에 저는 없는 건지.”

2층 작업실엔 최근 시국을 풍자한 60호, 120호짜리 신작들로 가득했다. 청와대가 휩쓸려가는 물살 위에서 배를 타고 청와대를 바라보면서 록밴드들이 연주하는 <2016 북악산의 세월>과 청와대 뒷산에 최순실씨가 앉아 박 대통령 얼굴로 형상화된 인분을 배설하는 <똥의 탄생> 등도 보였다. 전시가 좌절된 <세월오월>은 2014년 9월 돌려받아 1층 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했다. 이 작품은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를 촉발한 작품이란 사실과 더불어 박 대통령을 ‘닭 허수아비’로 풍자한 도상들이 지금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딱 부러지게 예언했다는 점 때문에 새삼 관심을 모으는 중이다.

신작들에서도 그의 예지력이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올 5월 그렸다는 <비정상의 혼>은 무당 차림의 박 대통령이 대나무를 꽂고 쌀밥 주발을 든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2014년 1월 광주 특별전에 내걸 걸개그림 제작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뚜렷한 이슈 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못하겠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그해 4월16일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팽목항에 내려갔는데, 제가 아는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가 있는 거예요. 제 화실에서 청소를 하고 그림도 배웠던 여학생이었는데…, 수학여행 간다고 해서 2만원을 주면서 제주에서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했던 기억도 났어요. 그 아이가 바다 밑 배 안에 있다는 겁니다. 이후 늑장구조 등의 현장 상황을 곰곰이 지켜보면서 자본과 무능한 관료, 권력이 야합한 국가 폭력이다, 80년 광주와 다를 바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요.”

2014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출품했으나 전시가 취소돼 논란을 빚은 홍 작가의 대작 <세월오월> 원작. 허수아비 제웅이 되어 울부짖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이 작품은 지금의 국정농단 사태를 단적으로 예언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최근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도판 홍성담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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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허수아비 위에 울부짖는 닭을 붙여넣은 <세월오월> 수정본. 도판 홍성담 작가 제공

'>그는 그해 6월 광주 옛 도청 근처에 후배들과 작업장을 마련했다. 토론을 하면서 그가 확 떠올린 것은 허수아비 이미지였다. 팽목항의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박 대통령의 영상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검은 상복 입고 헌화하고 유족들 모인 곳을 돌아다니는 영상을 봤는데, 카메라 찍히는 지점까지 연출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과거에 연극 연출도 하고 영화 대본도 써봤는데, 한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치밀하게 동선을 조정하는 듯했어요. 배후세력이 그를 내세워 일종의 연극을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걸 그림에 올리자고 마음먹었지요.”

그렇게 한달간 작업을 거쳐 나온 그림이 <세월오월>이다. 그림 왼편 위에 김기춘 전 실장과 박정희에 의해 짚인형 제웅 형상의 허수아비가 되어 울부짖는 박 대통령이 있고, 그림 가운데 광주 시민군과 당시 김밥을 날랐던 아줌마들이 세월호를 들어 올려 아이들을 탈출시키는 장면이 들어갔다. 시민 토론회를 거치고 작가 40여명이 함께 붓질한 작업이라 만족감은 컸다.

그러나 애초 ‘좋다’고만 했던 윤범모 큐레이터와 이용우 당시 재단 대표가 채색이 끝날 무렵 “박근혜와 배후 인물들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다른 동료 작가들과 상의해 박근혜 상 위에 눈물 흘리는 닭그림을 붙여놓고 회견을 열었다. 이런 곡절에도 작품은 끝내 전시되지 못했다. 참여 작가들의 출품 거부 선언과 윤 큐레이터 사퇴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그해 8월24일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출품 포기 선언을 했다. 그때 성명에서 그는 “세월호와 똑같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내뱉었다.

“비엔날레 재단의 절친한 직원한테서 ‘윗선에서 수정 지시를 내려 꽂은 것 같다’ ‘국정원 직원들이 성가시게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 망연자실했어요. 지금도 누가 배후인지 몰라요.”

인터뷰 뒤인 14일 윤장현 광주시장은 “김종 문체부 2차관한테서 국가예산을 쓰는 특별전에 이 전시가 적절한지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며 윗선의 압박을 시인했다. 홍 작가는 이에대해 “윤 시장이 밝힌 건 3분의 1도 안 된다. <세월오월>이 블랙리스트 파문의 단초가 된 만큼 윤 시장은 낱낱이 진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농단 사태로 표면화한 박 정권의 실체를 훨씬 앞서 <세월오월>을 통해 사회적으로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홍 작가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평생 리얼리스트로서 현실을 관찰하며 쌓은 동물적 육감으로 시대의 진실을 통찰하고 알렸다는 것, 지금 와서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광주 5월 동화 연작과 필생의 작업인 유신시대 연작을 그리고 있어요. 시대를 주시하는 작품을 하겠다고 다짐한 이상, 그리고 또 그릴 생각입니다. 눈도 아프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그게 내 삶이고 생명이니까.”

안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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