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을 보았다"

2016. 11. 1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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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05]
박원순 서울시장 100만 촛불집회 뒤 인터뷰
“대통령과 정치권 태도에 따라서는 200만명도 모일 수 있다”
“탄핵은 시간 걸려 국민들이 인내하지 않을 것…하야가 정답”
대선 출마 질문에는 “국민의 요구와 시대적 소명 뒷받침돼야”

박근혜 대통령 국정 사유화 사태, 그로 인한 촛불 집회는 대통령과 유권자의 정면충돌입니다. 싸움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과 국민들의 힘겨루기로 결판이 날 것입니다.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과 행동은 꽤 눈길을 끌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함께 일찌감치 ‘박근혜 대통령 하야(퇴진)’를 요구했습니다. 지방정부 행정을 책임진 단체장이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뭘까요? ‘대선주자로서 낮은 지지율을 이번 기회에 끌어올리려는 정치적 의도’라는 분석이 있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인권 변호사로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입니다. 정의에 대한 감수성이 다른 정치인들보다 예민하다고 봐야 합니다. 이재명 시장이 대통령 하야를 가장 먼저 들고 나온 것도 ‘개혁가’라는 그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쨌든 박원순 시장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대통령 하야 이후에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요?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해도 좋다는 것일까요? 대통령 하야 이후 60일 안에 치르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 그가 출마할 생각이 있는 것일까요?

‘100만 촛불집회’(12일) 바로 다음날 박원순 서울시장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13일 낮 1시 서울시장실에서 만난 박원순 시장은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인터뷰는 1시간 동안 임인택 엄지원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이날 오전 트위터에 “시민과 함께 한 어젯밤 슬프면서도 행복했습니다. 기필코 시민이 이깁니다”라고 글을 띄웠습니다. 새벽 2시가 넘도록 광화문 현장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이번 촛불 집회를 ‘분수령’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에게 사실상 탄핵됐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정치권에는 이 도도한 흐름에 참여해야 한다는 마지막 경고를 보낸 것”이라며 “대통령이나 정치권의 태도에 따라서는 백만 아니라 이백만도 또 모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탄핵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3분의2 이상 결의가 있어야 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장시간 소요되기 때문에 국민이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은 하야만이 답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민의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야당이 하야를 적극 주장하면 대통령의 결단을 훨씬 더 재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60일 안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국은 국민의 요구, 시대적인 소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3일 오후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어제 광화문에서 무엇을 봤나.

“참여한 시민들 스스로 느꼈겠지만, 한편으론 분노가 일렁이는 것을, 또 한편으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이 출렁거리는 모습이 동시에 있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하야하라고 하는 분노가 너무나 명확하고도 결집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이 정치 체제, 이 사회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안된다는, 갈망과 소망이 엄청나게 분출하는, 두 가지 모습이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장식물인 헌법이 아니라 실제 헌법이 광장에서 표출하고 실현되는 것을 봤다.”

-율곡로까지 개방됐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였는데도 큰 충돌이나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지하철 안팎이 워낙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압사사고라든지 여러가지 사고를 우려했다. 그런데 누가 조금만 밀어도 사람들이 ‘기다리자’고 이야기하더라. 광장에서 여러 집회가 1시부터 벌어졌고 공식행사가 끝난 뒤에도 새벽까지 집회가 이어졌는데 그때도 보면 술취한 사람도 있고 좀 튀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으면 그것을 견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집회가 끝난 다음에 2시가 다 돼서 광화문에서부터 내려오는데 세월호 천막 입구에 어떤 친구가 지나가면서 ‘쓰레기 봉투 필요한 사람 말하라’고 하더라. 아무런 직책도 없는 사람인데, 편의점에서 대형 종량제 봉투를 많이 사서 나눠주고 있었다. 그 다음에 조금 더 가니 동아일보사 쪽에 어떤 여성과 남성이 있는데, 여성은 젓가락으로 쓰레기를 줍고 또 한 사람은 그 여학생을 보고 자기도 따라서 하는 중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여학생이 전주에서 왔다는 거다. 언제 집에 가냐고 물어보니 아침까지 하고 간다고 하더라. 그걸 보며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여서 주권을 행사하는 이런 대규모 군중집회를 이렇게 안전하게, 이렇게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고 하는, 유일한 국민이 아닐까. 그걸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지금은 너무나 참혹하고 억울하고 슬프지만 이런 국민들 때문에 희망이 있다는 걸 확연히 깨달았다.”

-희망을 봤다는 것인가.

“행복했다. 사람이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있잖나. 상황 자체는 엄중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이것에 대응하는 국민들의 태도, 철학, 주장, 이런 것을 보면서는 희망과 행복을 느꼈다.”

-1987년 6월항쟁과 비교하면 어떤가.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국민들의 현명함, 성숙함, 지혜로움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도 그렇고 이번 주도 발언하는 것을 지켜보면, 첫째는 과격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혜롭다. 이 판이 어떻게 흘러갈지 걱정과 우려와 빌미를 제공하지 말자는 의지 등이 읽혔다.

무엇보다 이번에 중학생과 고교생 진출이 눈에 띄었다. 제가 앉아 있는데 옆을 보면 중학생, 고등학생이 있었다. 수원에서 온 중학생은 제가 촛불집회 시작한 뒤 계속 뒤에 앉아 있었다. 저는 1시 반부터 새벽 2시까지 계속 돌아다녔는데 고교생들이 와서 이런저런 요구도 하는데 그 수준이라는 게 에스엔에스 영향이 있겠지만 과거 우리 시대의 지적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더라. 우리가 수능에 중고교생들을 잡아 놓고 하루 평균 1.5명의 청소년이 자살하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우리 청소년은 살아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국가적 위기를 잘 꿰뚫어보고 있고 이 위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국민으로 변했다. 물론 과거 4·19, 5·18도 위대했지만 양과 질에서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게 아닌가 싶었다.”

-앞으로 19일에도 이 집회가 계속될 걸로 보나.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할 것 같지 않은데.

“저는 하나의 분수령이었다고 본다. 국민들은 자신의 뜻을 분명히 했고 대통령과 정치권에 통보하고 경고했다. 대통령에게는 사실상 탄핵됐다는 사실을 통보했고 정치권에는 이 도도한 흐름에 참여해야 한다는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당장 다음주 집회는 줄거나 소강 상태로 변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나 정치권의 태도에 따라서는 백만 아니라 이백만도 또 모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어제 제가 집에 돌아가는데 보니까 가회동 쪽에 전세버스가 엄청 나가고 있더라. 집회 참가자인가 했더니 지방경찰이 동원한 관광버스였다. 관광버스가 동아 나서 못 올라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다음에는 하루 전에 와 있기로 결의할 줄 어떻게 아느냐. 100만명 외에 누군가는 올 수 없어서 못 온 측면도 있을 거다.”

-정치인으로서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버티는 상태가 장기화하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이 사실상 국정마비, 국정중단 상태다.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에 처했다. 국민은 이미 탄핵을 통보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국정이 돌아갈 리가 없다.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인사를 했다지만 전화한 사람이나 전화받은 사람이나 국가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자신감과 비전을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일본의 아베는 당장 17일 일정을 잡을 정도인데 이쪽(박 대통령)은 용기와 의지를 상실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이 어느 행사에 참석해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나. 대통령 본인도 견디기 힘든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의 요구는 한순간도 박 대통령의 국민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어제 올라온 사람 중에 대구 사람이 많았다. 이런 국민적 인식이 비등한 가운데 현 상황이 오래 갈까? 물론 권력을 쉽게 내놓겠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연장할 수 있는 만큼 연장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나 야당이 오판하면 더 큰 역풍이 올 수 있다. 민심을 확인하고도 대응하지 못한다면 정치인으로서의 기본 자세가 안돼 있는 것이다. 정치는 국민의 요구를 받아안고 실현하는 직업이 아닌가.”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면 국회는 탄핵소추를 밟아나가야 하는데 어찌 보나.

“법률상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법률 이상의 상황이라고 본다. 탄핵이란 건 그야말로 국회에서 3분의2 이상의 결의가 있어야 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장시간 소요되는 것이다. 그런 아까도 말했지만 이미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에 처해 있고 국민은 즉각 하야를 주장하는데, 그 긴 세월, 불확정 요소가 많이 남은 상황 속에서 국민이 인내하지 않을 거라고 보고 있다.”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이 버틸 경우 현실적인 해법이 뭘까.

“탄핵 가능성을 제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하야만이 답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국민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별히 야당에 주문하고 싶은 것은 이런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야당이 하야를 적극 주장한다면 훨씬 더 쉽게 가능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야당이 하야를 주장하면 대통령이 하야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건가.

“야당은 어쨌든 국정 파트너로서 다양한 권한을 갖고 있잖나. 입법권과 견제할 수 있는 권한과 예산 권한이 있다.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굉장히 달라지고 대통령의 결단을 훨씬 더 재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대통령이 지금 하야하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하게 되고 60일 내에 대선을 치르는데 그게 괜찮을까?

“그래서 일종의 ‘질서있는 하야’라는 대안도 나오는 모양이다. 여야가 합의한 총리에 의한 과도내각을 만들고 그 다음에 대통령이 하야하는, 질서있는, 합리적인, 퇴진 이런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이 있어야 하는데 기대할 수 있겠나 생각한다. 할 수만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어찌됐건 이 모든 것은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것이다. 거국내각이나 외치-내치 분리론은 헌법에 없는 내용이다. 헌법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민들 입장에서 볼 땐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철학을 가진 사람이지만 어쨌든 그 총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짧은 시간 내에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우리 선거제도가 개선을 요하지만 관권선거라든지 그런 것으로부터 나름 합리적인 선거는 정착돼왔다고 생각한다. 국정원 댓글사건이나 개표 과정 논란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부분은 여야가 합의하면 얼마든지 황교안 총리 하에서도 할 수 있는 조처가 있다고 본다.”

-‘질서있는 하야’가 최선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하야’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질서있는 하야’지만, 안된다면 즉각 하야가 낫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다른 가능성, 거국내각으로 식물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면 닥치게 되는 위기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더 큰 혼란으로 갈 수 있다.”

-야당의 오판은 문재인의 오판을 말하는 것인가.

“문재인 대표는 분명히 오판하고 있다. 좌고우면해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생각한다. 대주주인 문재인 대표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더불어민주당도 입장을 정확히 갖지 못하는, 굉장히 어정쩡한 상황, 머뭇거리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저는 어제 집회를 보면 물론 박근혜 대통령 하야와 새누리당 해체가 중요한 목표지만 그에 못잖게 야당의 책임을 묻는 발언들이 분명히 지속적으로 나왔던,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 와있다고 본다. 민주당이 국민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 책임 추궁이라 보고 민주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문재인 대표에 대한 화살이라고 생각한다. 하야가 혼란이고, 2선후퇴, 거국내각이 질서있는 정국수습이라고 하는 민주당의 태도가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저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헌법이 정하고 있는 절차에 따르는 것이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인데 헌법이 예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말하니 꼬이는 것이다. 문재인 대표가 “국군통수권, 계엄발동권을 내놔라”라고 했다. 그것도 헌법에 있지도 않은 얘기다. 즉각 반발을 불러왔잖나. (그런 식으로) 계속 꼬이는 거다. 청와대에 조건을 붙이면 혼란과 반발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고 있는, 이런 혼란을 자초하는 상황이다. 2선후퇴라는 게 무슨 의미냐. 대통령은 무슨 권한을 가지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위기를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째, 경제위기, 둘째, 민생파탄, 셋째, 남북관계와 외교 위기다. 세 가지는 정말 내치와 외치가 함께 가지 않으면 (해법이 없다). 내치권 전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외교를 하며 ‘지(G)20’ 회의에 가서 무슨 발언을 할 건가. 굉장히 모호한 개념이고 모호한 상황을 연출한다고 본다.

그래서 결국 대한민국 최고 주권자인 국민이 100만명 모여서 확실하게 표출하고 있는 요구를 받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안에도 40명 넘는 국회의원들이 하야 요구하고 있다. 어제 집회를 계기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본다. 당원들도 마찬가지다. 제가 어제 민주당 보고대회에서 박수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당원들도 다수는 분명한 입장을 바라고 있다. 국민의 요구니까. 추미애 대표나 문재인 대표도 제가 이야기해서 빨리 입장을 확실히 정하라고 요청을 할 생각이다. 제가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亦可覆舟)’라는 말을 종종 한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엎을 수도 있다는 말인데, 정치인이 명심해야 할 덕목이고 사명이 아닐까 한다. 민주당이 왜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여당도 아니고 야당이잖나. 이 정국에서 입장을 분명히 정해 줘야 국민들과 대통령 하야를 이뤄내고 새 질서를 만들 수 있다. 이 스텝이 꼬이면 다음 대선에서도 이게 큰 판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야당 지도부가 앞장서서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는 것 아닌가. 하야 요구가 법률적 권한도 아닌데.

“오히려 서울시장인 저는 행정이 주무인 사람이다. 여의도 정치, 국회의원, 정당은 사실 훨씬 저보다 정치적이어야 한다. 합법성이라는 것이 있지만 정당성이 더 상위에 있는 것다. 리걸리티(legality)라는 합법성이라는 것이 법 실증주의에 따라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레지티머시(legitimacy)라는 정통성이 분명히 있는데 정치는 그 영역을 다뤄야 하는 거 아닌가. 법률이 맞냐 틀렸냐 적용하는 것은 행정과 사법의 역할이지만 정치의 영역은 이것을 뛰어넘는, 국가적 위기를 돌파하고 혼란을 방지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헌법 1조에 놓은 것이다. 이 국가적 위기에 법률과 헌법을 지켜야 하지만 그 이상의 방법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불가피하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도 정치의 영역이라고 본다. 대통령 하야는, 대통령의 궐위는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주장하는 것이 하나도 모순된 것이 아니라고 보는 거다.”

-국민들은 박원순 시장을 서울시장으로도 보지만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도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퇴하면 60일내에 다음 대선을 치르는데 그 선거에 나설 생각인가.

“(웃음) 기본적으로 서울시장으로서의 직무, 서울시를 관리하고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업무가 있지만, 정치인으로서 국가 전체의 위기에 대응을 하는 것도 중요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그런 요구를 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제가 대선에 나가야 하느냐는 것은 서울시장 선거때도 그랬거니와 결국은 국민의 요구, 시대적인 소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장으로서 중앙정부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제 나름의 비전이나 이런 걸 갖출 수 있는 시기가 됐다고는 생각하지만 적어도 대선 출마는 아까 말씀드린 두 가지, 국민의 요구와 시대의 소명, 이런 것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국민으로부터 듣기도 하고 제 스스로도 성찰하고 있다.”

-일주일 전에 야당 대표와 주요 정치인, 사회 원로가 참석하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야당, 정치 지도자, 시민사회 대표 원탁회의'를 제안했다. 지금도 유효한 건가?

“저는 그 노력을 해왔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를 만났고 같은 내용의 합의를 했다. ‘하야 주장에 함께 한다.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끼리 당파적 이해나 정략적 고려를 넘어 함께 한다’는 취지다. 지난번 추미애 대표와의 모임에서도 제가 이야기했다. 그렇게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12일 집회를 지나면서 당이 그렇게 가기를 바라고 계속 당에 요청할 작정인데 만약 그렇게 되면 적어도 야3당 대표가 함께 하고 시국회의를 이끄는 재야·시민사회·노동 이런 쪽이 합쳐지면 과거 6월항쟁 당시 국민운동본부 같은 게 최소한 꾸려지고 그러면 하야 주장에 훨씬 더 큰 힘이 실리고 국민적 흐름을 주도하는 주체가 확립된다고 본다.”

-야당 대표나 국회의원들은 선출된 권력이지만 사회원로나 시민사회 대표의 대표성에 일반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을까.

“나중에 정리해서 합의하고 법제적으로 정리하는 일, 말 그대로 완결은 제도권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은 국민적 합의를 모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원로·노동 등 국민적 정당성을 갖는 분들과 조직들이 함께 하면 그만큼 심도가 있고 하야 운동과 제도적 완결로 연결될 수가 있다. 그래서 온전히 국민의 뜻이 관철되는 데에 (시민사회 등의 참여가) 굉장히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죽쒀서 개주냐는 말들이 과거에 있었잖나. 이런 과정과 이런 주체들을 통해 상당히 간극을 줄일 수 있고 상생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서울시장으로서는 이런 것을 주도하기에는 입장이나 실제 파워가 약해서 이런 제안을 했고 함께 가자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권력구조 개편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개헌 얘긴데 과거 87체제에서 2017체제로 바꾸자는 원칙에는 동의한다. 헌정의 운영과 시대적 변화를 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것을 단기간에 하기 어렵다. 권력구조에 이견이 많다. 당파적 입장이 반영되는 경우도 많다. 안그래도 위기에 처한 헌정중단 상황에서 개헌논의까지 가면 어렵지 않겠나. 일단은 위기 수습에 집중해야 한다. 단기간에 끝내기보다 헌법개정위원회를 만들어 토론할 필요가 있다. 미국 의회에서 저작권법과 대통령기록보존법 기록을 찾아본 일이 있는데, 에이브러험 링컨 때부터 사람 키만한 기록이 쌓여 있더라. 어마어마한 토론을 하는 것이다. 몇몇 정당의 타협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많은 논의가 축적되는 것 필요하다.”

-권력구조는 의원내각제와 대통령 중임제 중에서 무엇을 좋다고 생각하나.

“장단점이 다 있다. 급격한 구조 변화보다는 현행 대통령제 하에서도 할 수 있는 변화가 많다. 예를 들어 프랑스 이원집정부제는 지금 헌법에서도 가능하다. 책임총리를 임명하면 된다. 대통령이 포괄적 권한을 갖더라도 총리에게 내치 권한을 줄 수 있는데 안 준 것이다. 권력분산은 국민이 동의하는 바이다. 지방정부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얼마든지 권한을 줄 수 있다. 재정 권한도 8:2, 7:3으로 갈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이럴까.

“다음 대통령 후보에 대해선 언론도 국민도 좀 제대로 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정책이 뭐냐고 묻기 전에 그 사람의 과거를 봐야 한다. 사람의 미래는 그 사람의 과거를 보면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시절, 국회의원 활동 시절, 비어있던 시절, 그 시절을 알면 오늘날의 박근혜 대통령을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땅만 판 사람이다. 시장이든 구청장이든 그의 과거를 파악하고 해부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언론은 너무나 센세이셔널하다. 현재의 주장만을 보도한다. 그것을 실행할 경험과 지혜와 능력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많은 난제를 해결할 솜씨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국민과 촛불집회에 나온 국민은 같은 사람들이다. 유권자의 수준이 대통령의 수준 아닐까.

“결국은 위대한 국민이 위대한 국가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토론과 논쟁의 문화인데 우리 한국 사회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작동되는 게 많다. 저도 이념적으로 공격하는 이들이 많다. 제가 명색이 검사를 지냈고, 통합방위협의회 의장도 하는데 여전히 종북이니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일이 나치를 경험하고 난 이후 정치의식 교육을 어마어마하게 강조했다. 프리드리히재단, 아데나워재단 등 엄청난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깨어있는 국민들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서울시는 평생학습 뿐 아니라 24개 시민대학을 만들었다. 민주시민교육센터도 따로 만들고 있다. 영국에 가면 시티즌십 파운데이션 등 많이 있다. 시민의식은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대선 과정을 보면 선진국이라고 100% 잘 돼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제도가 헌법 개정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편견이나 극단적 사고를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센터는 시장이 새누리당으로 넘어가면 취지가 퇴색될 소지도 있다.

“저더러 백년 하라구요?(웃음) 중요한 정책은 기나긴 협치의 과정을 거쳐서 한다. 과정을 거치면 거기에 관계된 수많은 이해 관계자와 시민들이 많아진다. 아마 다음 시장이 누가 되더라도 바꾸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바꿀 것이다. 선출직 공무원이 정부를 책임지는 제도 하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근 ‘박근혜 사태’의 본질이 뭘까.

“검찰이 수사를 하고 어떤 죄목을 붙이고, 헌정 농단과 이런 말들이 나오겠지만, 이것은 헌법 제1조 위반이라고 본다. 헌법 제1조는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엄중한 죄다.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농단을 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이번 위기는 또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 없었다면 기나긴 세월동안 문제가 온존했을 것이다. 이번에 그 진면목과 몰골을 가감없이 보여줘 국민들이 확연히 깨닫게 됐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지 않나. 재벌도 관계가 돼 있고, 언론도 관계가 있다. 언론의 자성도 크다.

최순실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 이전에 있었던 여러 정책들, 국정교과서, 세월호, 한일 위안부 합의라든지 수많은, 심지어 그 이전,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이어지는 이런 것, 99대1의 사회, 총체적인 분노가 쏟아져 나오더라. 어제 김제동씨가 사회를 볼 때 나온 아주머니 한분이 ‘내 아들이 이런 사회에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절망과 기대섞인 말을 했다. 그런 목소리 속에서 국민들이 엄청나게 우리 상황에 대해 토론하고 학습하고 새로운 꿈을 꾸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런 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시기다. 광장민주주의를 과거의 혼란의 잣대로 보는 사람과, 국가적 기회로, 우리 사회를 한 단계 확고히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생각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검찰 개혁에 대한 의견은?

“시장 실패, 자본주의 실패를 바꾸는 것이 바로 정치다. 정치의 변화를 통해 ‘1%가 장악한 기관들’을 바꿔야 한다. 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검찰총장과 검사장을 미국처럼 직선으로 바꾸는 것은 어떤가. 배심제도 참여연대가 주장해서 도입했다.”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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