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41) 상식과 진실

입력 2016. 11. 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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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박사의 '그것이 알고 싶지?' 자동차가 마차보다 깨끗한 도시 만들어, 농업은 자연친화적이지 않다는 사실

우리가 아는 ‘상식’이 ‘진실’과 다르다면? 우리 판단의 상당 부분은 ‘당대’가 기준이다. 그래서 현대의 기준으로 과거 인물이나 사건을 평가한다. 문제는 과거의 관습이나 실상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과거에 대한 지식은 모두 간접적인 것이다. 직접 ‘체험’할 기회는 없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적 사건의 결과를 알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보면서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전지적(全知的) 관점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적 관점’은 상황의 전모를 살피는 커다란 틀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역사적 진실의 많은 부분을 놓치고, 보고 싶은 것만 선별해서 보는 ‘제한된 시각’일 가능성도 있다. 간단한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자동차가 마차보다 많아진 시기는 1913년.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주유소나 정비소 같은 자동차를 위한 시설도 늘어났고, 자동차 이용의 효율성 편리성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 자동차는 매연을 일으킨다

자동차가 교통수단으로 일반화된 시점은 1900년대 초반이다. 1908년 출시한 포드자동차의 모델T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미국에서는 1920년대에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유럽도 비슷한 시기에 ‘자동차 시대’가 시작됐다. 당시 유럽인과 미국인들은 자동차를 친환경적이며 위생적인 발병품이라고 생각했다. 말(馬)의 배설물을 도시에서 몰아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한 것이지만.

자동차가 나오기 전 인류가 가장 널리 활용한 교통수단이 마차다. 1890년 기준 미국 뉴욕에만 6만여마리의 말이 있었다고 한다. 말들이 도심에 방사하는 배설물은 하루 1250t, 소변은 6만갤런이었다고 한다. 사고사이든 과로사이든 하루평균 수백 마리의 말이 거리에서 사망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도시의 거리는 배설물과 사체로 가득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말들은 달리면서 배설하는 경우가 많아 사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치워야 했다.

당대 기록 중에는 도심에서 풍기는 악취를 체념적인 어조로 서술한 글이 많이 보인다. 자동차가 마차보다 많아진 시기는 1913년이다.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주유소나 정비소 같은 자동차를 위한 시설도 늘어났고, 자동차 이용의 효율성 편리성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기술 발전을 통해 자동차의 속도, 운송력 등 성능이 마차의 그것을 능가했고, 이 점이 대중의 선택을 마차에서 자동차로 돌려놓은 것도 사실이지만, 마차에 비해 자동차가 도시의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었기에 대중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는 점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1973년 7월 포항제철 준공기념사에 보이는 한 대목도 지금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포항의 하늘이 제철 공장의 매연으로 새카맣게 뒤덮이는 날까지 열심히 노력하자는 의미의 연설 문장이다. 환경문제가 대중적 관심사인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별다른 산업시설이 없던 1970년대 초반에는 공장 매연조차 한국인의 로망이었다.

2. 농업은 자연친화적이다.

아니다. 농업은 자연친화적이지 않다. 화학 비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농업은 그 자체가 매우 인위적이다. 벼농사를 생각해 보자. 벼는 밀과 더불어 인류의 농경 문화를 대표하는 곡물이다. 벼와 밀은

위 열량이 매우 높아 인류의 선택을 받았다. 문제는 벼와 밀은 자연 상태에서는 생존 경쟁력이 매우 떨어지는 식물이라는 점이다. ‘논’처럼 벼의 생장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다른 식물을 정기적으로 꾸준히 제거해 주어야만 가까스로 생존이 가능하다. 벼와 밀뿐 아니라 인류가 식량으로 활용하는 모든 곡물과 과일은 ‘인간이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인위적으로 조성한 환경’에서만 의미있고 활용 가능한 정도의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농토’와 ‘과수원’은 자연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매혹적인 기계’다. 물론 인류가 밀과 벼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벼와 밀이 인간을 선택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최근의 베스트셀러 《사이언스》에 나온 이야기다. 인간이 아니라 식물이나 동물도 선택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멋진 관점이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어떤 경우든 농업이 농토가 생각만큼 자연친화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농업은, 농토는 인공적인 기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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