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홍성담 배제 노력..예술계 좌파 책동에 대응" 지시

정제혁 기자 2016. 11. 1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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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김영한 전 수석 비망록
ㆍ‘만만회’ 의혹 제기한 박지원엔 “시민단체 이용해 고발”
ㆍ“5·16은 구국의 일념”…쿠데타에 시대착오적 인식 강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왕실장’으로 불린 김기춘 전 비서실장(77·사진)의 사법부 개입 정황 등이 담긴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됨에 따라 김 전 실장도 권력남용 의혹 사건의 자장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됐다. 사법부에 대한 개입,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친정부 시민단체의 고발을 활용한 야당 지도자 탄압 등 제기된 의혹 하나하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만만치 않은 파장을 예고하는 것들이다.

■“견제수단으로 법원 길들여야”

TV조선이 10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 전 수석이 2014년 작성한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이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정황이 담겨 있다. 비망록에는 “법원이 지나치게 강대하다”며 “견제수단이 생길 때마다 길을 들이도록”이라고 적혀 있다. 수석비서관회의 때 김 전 실장이 지시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은 법원을 길들이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상고법원’을 제시했다. TV조선은 “법원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상고법원으로 협상을 하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을 주문했다”면서 “‘검찰 입장이 갑일 시에만’이라는 단서까지 붙었다”고 보도했다. 김 전 실장이 “판사의 성향에 트집 잡히지 않도록 치밀하게 준비하라”며 “국가적 행사 때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 있다는 멘트가 필요하다”고 지시한 내용도 비망록에 적혀 있다.

김 전 실장 지시사항 중에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서 애국단체의 관여가 요구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김 전 실장이 보수단체를 동원해 변협 회장 선거에 개입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시민단체 통해 박지원 고발”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이 친정부 단체의 고발을 활용해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을 옥죄려 한 정황도 담겨 있다. 당시는 박 위원장이 이재만 총무비서관, 박 대통령 동생 박지만씨, 최순실씨 남편 정윤회씨로 구성된 ‘만만회’가 비선조직으로 활동하며 청와대 인사에 개입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직후였다.

박 위원장이 ‘만만회’ 의혹을 제기한 지 열흘 뒤인 2014년 7월5일에는 ‘박지원 항소심 공소유지 대책 수립’ ‘박사모 등 시민단체 통해 고발’이라고 적혀 있다. 7월17일 메모에는 ‘만만회 고발’이라고 기록됐다. 그로부터 나흘 뒤 새마음포럼 등 시민단체는 박 위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한 달여 만인 8월29일 박 위원장을 기소했다.

■“예술계 좌파 책동 투쟁적 대응”

비망록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TV조선은 보도했다. 해당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계 인사의 이념 성향을 분류한 것으로, 정부가 진보적인 문화예술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데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8월8일자 메모에는 “홍성담 배제노력, 제재조치 강구”라는 김 전 실장의 지시가 적혀 있다. 김 전 실장은 “사이비 예술가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다. 홍성담씨는 박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그림 ‘세월오월’의 작가다.

김 전 실장은 10월2일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할 것”도 주문한 것으로 적혀 있다.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시점은 2014년 중반으로, 김 전 실장 지시사항이 적힌 시기와 일치한다고 TV조선은 설명했다.

비망록에는 김 전 실장이 “애국심 가진 군인의 구국의 일념”이라며 5·16 쿠데타에 대한 시대착오적 인식을 주문한 내용도 적혀 있다. 김 전 수석은 월별 일정과 날짜별로 해야 할 일,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을 비망록에 적었다.

김 전 수석은 지난해 1월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여야가 합의한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 출석을 거부하고 청와대를 떠났다. 김 전 수석은 지난 8월21일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했다.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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