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러려고 MBC 기자 된 거 아닙니다"

이진우 기자 2016. 11. 10. 19: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 묵인 MBC, 내부 기자들 비상총회 개최

“이러려고 기자된 거 아닙니다.” 10일 저녁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앞에는 500여명의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2일부터 행해진 ‘청와대방송 저지’ 피케팅과 천막 농성에 이은 전 조합원들의 ‘보도 정상화’ 비상총회이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비정상적인 현 보도 행태를 지적하며 안광한 사장과 김장겸 보도본부장, 최기화 보도국장 등 보도책임자에 대한 사퇴를 촉구했다.

MBC본부는 이날 결의문을 통해 “지금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최순실’이란 이름 석 자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MBC에서는 금기어였다. 뉴스데스크에서 최순실은 언급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그 어떤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결의문은 이어 “MBC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 황우석 논문조작을 폭로하고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안전성을 공박했던 MBC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며 “지난 10월 29일 시민촛불 현장에서 시민들은 JTBC 기자들에게는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내줬지만, MBC 기자들에겐 길을 내주지 않았다. MBC 기자들은 시민들이 운집한 현장에서 욕설을 듣고 내쫓김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5년 전 MBC 구성원들은 수치심과 분노에 제작거부와 파업에 들어갔다. 170일간 싸웠지만 이기지 못했다”며 “이후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200명에 달하는 MBC 구성원들이 해고되고 정직되고 부당전보 돼 자기 자리에서 모두 쫓겨났다”고 지적했다.

MBC본부는 “뉴스데스크가 살아있었다면 PD수첩이 살아있었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같은 국정농단은 결코 없을 것이다. 언론이 두 눈 시퍼렇게 권력을 감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우리 탓이다.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서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알고도 모른 척 침묵하고, 권력에 대한 눈치 보기로 집약된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MBC 내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몰락한 뉴스룸을 되살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2일 김희웅 MBC 기자협회장이 “뉴스에 사가 끼어서 그랬습니다”라는 제목의 자성의 목소리가 담긴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린 이후 후배 기자들의 반성문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 사회1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주만 기자는 “뉴스 개선은 보도국장의 퇴진으로 시작해야 한다”며 “보도국장조차 어디부터 취재할지를 몰라 남의 뉴스를 지켜봤다 받으라고 지시를 하고, 부국장은 ‘오늘은 어느 신문을 베껴 써야하냐’고 묻는 현실이 이게 과연 MBC가 맞나”고 성토했다.

김정인 주간뉴스부 기자도 “우리 뉴스를 바탕으로 10분짜리 이슈를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연이어 터지는 각종 의혹들이 당연히 있겠지하고 찾아보면, 우리 뉴스에선 정작 찾을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호소했다.

“이러려고 기자된 게 아닙니다. 뉴스가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다는 지금, MBC뉴스에 대해 사람들은 시청률 3%로 대답했습니다. 집회 현장에서는 취재진들이 맞거나 쫓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MBC 기자라는 사실이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강연섭 시사제작1부 기자)

“타사에 물먹었단 낭패감엔 이미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기자란 ‘기사는 안 써도 취재는 해야하는 직업’이라 배웠는데 이제 솔직히 ‘취재는 안 해도 되니 기사만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 기록하는 업을 빼앗아간 사람은 누구입니까.” (조효정 주간뉴스부 기자)

“JTBC에서 ‘최순실 태블릿’ 보도로 나라가 떠들썩했던 밤 이후 며칠 간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친분 있는 사람들마저 면전에서 우리 MBC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들도 메신저를 통해 우리 뉴스에 대한 실망을 표현했습니다.” (손령 정치부 기자)

“할 수 있는 사람이 보도국에 없어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도 하지 못하도록 막아서, 하지 않는 사람들만 보도국에 남아서, 할 수 없는 것들은 포기한 지 오래여서...” (조재영 정치부 기자)

내부에서는 보도국 내 기자가, 그것도 익명도 아닌 실명으로 자사 보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에 나선데 대해 “징계를 감수하고 올린 것 아니겠느냐. 그만큼 곪을 대로 곪았다”는 반응이다. 그간 MBC는 조금이라도 자사 보도에 대해 비판하는 기자들이 있으면 해고나 징계, 전보 발령을 통해 입을 막아버린 만큼, 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건 금기사항이었다.

올해로 19년째 MBC에서 몸담고 있는 조승원 스포츠취재부 기자는 “입사 이후 처음 보는 일을 겪고 나서도 누구 하나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런 조직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문소현 월드리포팀 기자는 “짐작은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타사의 기사를 보고 쓰고 베껴 쓰며 뉴스데스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글로 직접 보고 나서 참담했다”며 “침묵의 카르텔이 오래될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시키는 대로 한 것이 바로 죄가 된다는 걸 이번 사태를 보고 매일 보고 있다. 한탄만 할 게 아니라 구성원 모두 제 목소리를 내고 제 몫을 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MBC본부는 “공영방송 MBC를 다시 살리기 위해 새로운 투쟁의 깃발을 올리며 이 자리에 다시 모였다”며 “꼭두각시 경영진이 하는 짓을 두고 보지 않겠다. MBC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 쫓아내겠다”고 밝혔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Copyright © 기자협회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