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들끓는 문화계와 시국선언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1.10 17:15

수정 2016.11.10 17:15

[기자수첩] 들끓는 문화계와 시국선언


"저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감독입니다." "창작자가 불이익을 당할 것을 떠올리는 사회는 정말 못돼먹은 사회입니다."

지난 9일 영화 '판도라' 제작보고회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들의 입에서 쏟아진 말들이다.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영화에 대한 얘기가 오가는 것이 일반적인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터져나온 발언들은 최근 최순실 논란에 따른 문화계의 분노가 얼마나 깊은가를 여실히 드러냈다.

문화예술 사업 전반에 걸친 최씨 비리가 드러나면서 문화계는 말 그대로 격앙된 분위기다. 수많은 설로만 떠돌던 '블랙리스트'의 실체와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은택의 전횡이 수면으로 떠오르자 시국선언이 이어지는 등 반발이 거세다.


문화계는 '문화융성'을 내세운 박근혜정부에 대한 배신감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문화 융성이라더니 문화 농단이었다"고 비판하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어지간해선 잘 뭉치지 않는 문화계 288개 문화예술단체가 참여하고, 7449명의 예술가가 서명한 역대 최대 규모의 시국선언문을 냈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또 보수적 성향의 문화예술단체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도 '국기 문란 사태에 대한 100만 예술문화인 성명서'를 내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연극협회도 '권력의 뒤편에서 기생한 하수인들은 모두 물러나길 강력히 요구한다'는 선언문을 내고 최순실과 차은택의 기획대행사로 전락한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출판계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서명을 받는 등 행동에 들어갔다.

사실 문화예술계에서 정치적 '검열'은 오랜 이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으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해 벌어지는 재난 사태를 그린 영화 '판도라' 역시 투자유치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안그래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원전사고를 다룬 데다 '변호인' 이후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으며 '정부에 찍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돈 영화제작사 NEW가 투자·배급을 맡아 정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민주주의 국가'라는 문화예술계의 비판은 타당하다. 미래 신산업으로 문화의 가치를 강조하며 창의성을 외치는 것보다 '창의의 자유 보장'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이 먼저 아닐까.

yjjoe@fnnews.com 문화스포츠부 조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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