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하 칼럼] UFC 거절·추성훈 도발..아오키 신야가 말하는 삶

정윤하 기자 2016. 11. 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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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은 인생(人生)을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라 적고 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참 간단명료하다. 그런데 정작 우린 인생을 어렵다 한다. 우리가 아는 한 인생엔 공식도 정답도 없다. 사전에 따르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 모든 행위 자체가 인생인데, 우린 이것에 대해 쉽사리 정의 내리지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다. 수백만 사람들 앞에 놓인 소주잔에는 수백만 개의 인생이 담겨 있다.

흔히 종합격투기를 '인생의 축소판'이라 부른다. 홀로 맨주먹 하나 믿고 상대와 피 튀기며 싸운다. 동료와 코치가 있어도 결국 링 위에 오르는 건 본인뿐이다. 가끔은 연습했던 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어찌 된 일인지 계획한 전략이 전혀 먹히질 않는다. 승리할 수 없다. 생각했던 것처럼만 진행되지 않는 고독한 싸움이다.

약체로 분류되던 이가 강자를 잡아 내기도 한다. 천재라 불리던 이가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주목 받지 않던 이가 최고의 자리에 설 때도 있다. 비록 정상에 오르진 못했지만 오랜 기간 종합격투기 무대에 머물면서 전설로 추대 받는 파이터도 있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굉장히 냉정한 세계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시대를 지배했던 선수도 패배하기 시작하면 평가의 하락은 물론 팬들의 조롱까지 받는다. 지난 노력들이 승패의 결과 앞에 힘없이 사라진다. UFC 라이트급 챔피언을 지낸 하파엘 도스 안요스는 "벨트가 없어진 이후 주변을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가끔은 이런 현실이 가혹하게 느껴진다.

이 종합격투기라는 작은 인생 속에 평생을 바친 파이터들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여기 링과 케이지에서 자그마치 46전 이상을 치른 베테랑이 있다. 그는 '공기(주변 분위기)를 읽으려 하지 마라.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살기 위해 애써 무리에 속하려 하지 마라'는 작은 메시지를 던진다. 도관십단(跳關十段, TOBIKANJUDAN) 아오키 신야의 이야기다.

그가 발간한 자전적 에세이집이 일본에서 무려 3만 부 이상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출판과 동시에 진행된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도 화제다. 일백 년 인생처럼 15분 동안 싸우는 파이터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빡빡한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대중들은 이 격투가가 말하는 삶에서 무엇을 봤을까.

일등만 살아남는 세상보단 목표가 다양한 세상이 좋다

우리는 타협하며 살아간다. 주변이 위하는 상으로 지내야 마음이 편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했다. 튀기보단 적당히 주변 분위기에 맞춰가는 게 좋다. 다른 색깔을 드러내면 이상한 취급 받을까 두렵다.

아오키는 유도부 시절 지독한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잡고 던지는 것이 중요한 일본 유도계에서 꺾기에 심취한 그를 코치와 선배들이 좋게 봐줄 리 없었다. 하지만 아오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선후배 간의 엄격한 규율이 중시되는 일본 사회에서 이건 죄악과 같았다. 그는 골칫거리였다. 선배들의 압력이 있었다. 사람들 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따돌림이 있었다. 나중엔 유도부에서 퇴출됐다.

그는 자신에 대해 '재능 없는 인간'이라 냉정히 평가한다. 똑같은 것으로 경쟁하는 엘리트 체육의 굴레 속에 재능 없는 인간이 살아남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꺾기의 연구였다. 이것이 현재의 '그라운드 지옥' 아오키 신야를 탄생케 했다. 그는 말한다. "남들과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인식되기 힘들다."

현재 종합격투기 세계는 UFC로 통한다. UFC가 아니면 일류 선수로 분류되기 어렵다. 아오키는 UFC 출전 제안을 거부하고 원챔피언십을 택했다. 그는 이 같은 선택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분위기를 '한쪽으로 치우친 시대'라 명한다.

"세계는 다양화하고 있는데 격투기만 미국에 집착한다. 세계 최고가 된다는 목표 설정도 멋진 꿈이지만, '넘버원'이라는 건 한 명밖에 될 수 없다. 일등이 되지 못했다고 실패했다거나 불행하다는 가치관이 만연하면 안 된다. 목표는 다양해야 한다."

두 아이를 책임지고 있는 아오키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가치'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세계 최고가 아니어도 좋다. 나의 가치를 존중해 주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는 체불이 만연했던 2010년대 일본 격투기 업계에서도 파이트머니를 꼬박꼬박 받아 갔다. 원챔피언십은 UFC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제안했다. 그는 원챔피언십을 선택했다. 그뿐이다.

"일본은 더 이상 가파르게 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좋았던 옛 시대의 기준을 버리지 않은 윗세대가 '우리는 이랬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해냈다'고 강요한다. 격투기는 불안정한 직업이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가치관을 제대로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좋은 바람이 불 때도, 나쁜 바람이 불어올 때도 있다

경찰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종합격투기 무대로 들어섰을 때 일본 격투기 시장은 호황이었다. 하지만 그가 프라이드에 진출한 직후 상황은 급변했다. 버블이 꺼졌다. 격투기 인기는 바닥을 쳤다. 처음 느끼는 실직의 공포, 그는 몇 개월간 가난과 싸워야 했다.

프라이드 시절엔 다 함께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던 사람들이 어느새 곁을 떠나갔다. 아오키는 이때 인생의 일부를 배웠다. "무너지는 와중에 자신의 몸을 바쳐 도움을 주는 이는 거의 없다. 물에 빠진 사람을 자신까지 빠져가며 도와줄 이는 거의 없다."

그는 힘든 시기에 있는 동료 선수에게 거침없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많이 힘들더라도 걱정 마라. 승리하면 주변 상황이 급변한다. 세상이란 건 원래 그런 거다. 쌓아 올린 것들이 한 번에 변하는 스포츠 세계에선 자신의 평가도 급격히 변하기 마련이다. 동시에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냉정한지 되새길 수 있다."

프라이드가 폐업한 이후 그는 드림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드림이 무너진 이후 미국 진출을 노렸지만 실패하며 좌절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다. 싱가포르라는 낯선 땅에서 라이트급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차고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좋은 바람이 불 때도, 안 좋은 바람이 불어올 때도 있다. 기분에 취해 기쁨과 근심을 느끼며, 자기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조건 함정에 빠진다. 승리하여 떠받들어져도, 패배하여 헐뜯어지더라도 해야 할 것을 담담히 이루자."

인생을 걸고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냈다면, 이미 8할은 성공한 인생이다

2010년에 있었던 나가시마 유이치로와 경기는 아직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아오키는 이때 굴욕적인 KO패를 맛봤다. 하지만 그는 패배한 경기조차 고맙다고 말한다. '승리를 파는 직업'이라 불리는 종합격투기계 베테랑이 던진 이 말은 많은 걸 담고 있다.

"지고 나서 더 화제가 됐다. 몇 년이 지나도 타이밍이 왔을 때 꺼낼 수 있는 카드다. 진 것으로 오히려 더 기억될 수도 있다. 약한 것이 오히려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아오키는 승리만이 아닌 '패배도 팔 수 있는 종합격투기'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링과 케이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아오키가 던지는 마지막 말은 이것이다. "해낸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했다면,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했다면 그것으로 좋다.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을 끝까지 해냈다면 그것으로 됐다. 승리하지 못했다고 고개 숙이지 마라. 괜스레 죄송하다 눈물 흘리지 마라. 결과가 아닌 과정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승리보다 고귀한 패배의 땀이 있을 수 있다. 각자의 가치관은 다르다. 최고가 아니더라도 가치 있는 삶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우리에겐 이런 무리가 없는 삶이, 필요할 때도 있다.

■ 필자 소개- 전 엠파이트 칼럼니스트. 국내 유일의 일본 격투기 U계 전문가. 사쿠라바 가즈시 골수 팬. B급 감성의 소유자. "인생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겠지만, 힘내십시오. 저도 힘내겠습니다."

<기획자 주> 스포티비뉴스는 매주 수요일을 '격투기 칼럼 데이'로 정하고 다양한 지식을 지닌 격투기 전문가들의 칼럼을 올립니다. 격투기 커뮤니티 'MMA 아레나(www.mmaarena.co.kr)'도 론칭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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