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선 후퇴' 말 아낀 朴..'내각 통할'에 혼란 가중
[머니투데이 지영호 이상배 김성휘 심재현 배소진 박소연 기자] [[the300]모호한 표현에 '오락가락'…김병준 카드도 유효상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장실 방문해 국회가 추천한 국무총리 임명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신임 총리의 권한과 역할에 대해 "내각 통할권을 주겠다"는 언급 뿐이 어서 해석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야당은 '내각 통할'의 의미가 불분명하다며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표명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이 8일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회동에서 총리의 권한에 대해 언급한 '내각 통할'은 헌법에 명시된 평상시 총리의 권한과 다르지 않다. 헌법 86조 2항에 따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들어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내각 구성에 대한 총리의 권한도 헌법 제87조는 국무위원 임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국무위원 해임을 '건의'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현행 헌법상 총리는 대통령의 재가 없이는 장관에 대한 인사권도 행사할 수 없는 셈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책임총리에게 권한을 적극적으로 넘기겠다고 선언하더라도 박 대통령의 '강력한 권력이양' 의지 없이는 총리가 내각을 주도적으로 끌고가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각 통할'이 기존 헌법에서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일례로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동시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한 바 있다.
◇책임총리 권한 어디까지…野 "2선후퇴 선언해야"=이 같은 문제는 회동에서도 거론됐지만 박 대통령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정 의장은 "적임자를 (국회가) 추천하면 권한 주시겠다는 취지의 말씀을 주셨는데 나중에 그 문제를 가지고 이런저런 논란 없이 국민들이 보기에 깔끔하게 정리돼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신임 총리가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을 보장해주는 취지를 잘 살려나가겠다"며 확답을 피했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고 총리에 권한 위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야당은 국회가 추천한 총리 수용과 더불어 박 대통령의 권력이양과 함께 2선후퇴를 요구하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장이 거듭 물어봤지만 내각지명권을 국회에 주겠다는 것인지, 청와대가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라며 "조각을 할 때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야 한다. 지금처럼 똑같이 하면 총리는 바보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내정문제를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나"며 "본인 말 세문장만 읽고 갔다"고 꼬집었다.
반면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국회 방문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회 추천 총리의 권한 이양에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대통령은) 야당이 일관되게 요구하는 중립내각 취지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야당의 요구에 존중하고 부응한 것으로 안다"며 "초헌법적 초법률적으로는 안되겠지만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총리가 많은 권한을 갖고 실질적인 국정을 펼쳐나갈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대통령이 밝힌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살아있는 김병준 카드, 朴 모호한 표현에 '오락가락'=청와대가 이미 내정한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지명 철회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논란의 불씨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지명) 철회라고는 얘기하지 않았다"며 김병준 총리 내정자의 신분이 유지되고 있음을 분명히했다. 국회에서의 총리 추천이 여의치 않을 경우 김병준 카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의미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김병준 총리 지명자는 사실상 정리됐다고 하지만 아직 (대통령이) 명확히 얘기하지 않았다"며 "지금 (국회의 총리 추천을 야당이) 안받아들이면 김병준 총리는 살아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대통령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선 아무말도 없다"며 "(총리 추천을) 국회에 던져놓고 합의하라는 것은 '시간 벌기용'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야당은 대통령이 시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내세워 영수회담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先) 권력이양 선언, 후(後) 영수회담'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박 대통령의 모호한 표현은 여당 의원들 내부에서도 혼란을 가져왔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책임론을 강조해온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지명을 철회했다"며 이례적으로 호평했다.
유 의원은 "일방적 총리 지명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태 수습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한다"며 "대통령께서 야당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 만큼 여야 정치권이 사태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할 때"라고 전했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대통령의 발언 수습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내각 구성권한을 묻는 질문에 "왜 안넘기겠나"라며 "신임 총리가 임명되면 그것까지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후보자의 신분과 관련해선 "국회에서 추천해 (새) 후보자가 나오면 그것으로 정리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야·탄핵·2선후퇴' 등의 민심을 반영한 대통령의 직접적인 선언이 없는 만큼 야당은 총리 추천을 거부하기로 했다. 국회의장과 야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이같이 결정하고 9일 당대표회담을 통해 추가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지영호 이상배 김성휘 심재현 배소진 박소연 기자 tell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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