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와 민주공화국]"진상공화국? 무너지는 공동체가 문제다"

이유진 기자 2016. 11. 8.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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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기획은 불평등, 노동 탄압, 특권 세습, 권력 독점, 법치 실종, 부정부패, 대의제 한계 등 ‘민주공화국’의 부재와 위기를 7회에 걸쳐 진단합니다. 웹·모바일 특집페이지에 지면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취재팀이 지난 8~9월 만난 노동자, 장애인, 활동가, 지식인 등 100여명의 육성을 르포와 인터뷰로 올립니다. 특집 페이지는 시대를 진단하는 아카이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특집페이지 바로가기

“하드웨어는 갖춰져 있는데 소프트웨어가 못 따라간다.”

대기업에 다니는 손정우씨(26·가명)는 민주공화국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맞죠. 완벽하진 않아도 제도적으로는 완전 정착했으니까요. 다만 사람들이 못 따라갈 뿐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독재를 경험 세대가 남아있어서 그런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한 세대 정도 지나야 국민들 수준이 국가적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까지 올라갈 수 있을 듯해요. 예를 들어 파업을 하잖아요. 노동 3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죠. 근데 사람들은 혀를 차는 거예요. 저희 아버지도 본인도 노동자이면서 다른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걸 보면 혀를 끌끌 차세요. 민주공화국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니까 다른 사람들이 헌법에 보장돼 있는 권리를 찾는 것도 못마땅한 거죠.”

2014년 9월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일베 회원 등 청년들은 세월호 유족 농성장 앞에서 ‘피자 투쟁’을 벌였다./백철 기자

■진상공화국 대한민국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유은진씨(32·가명)는 요즘 짜증이 늘었다. “전반적으로 사람들 수준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아요. 지인이 식당을 하는데 사람들이 포크나 식기를 다 훔쳐간대요. 또 마트 행사할 때 보면 다 먹어놓곤 생각했던 맛이 아니라고 바꾸러 오고요. 한 번은 프라이팬을 7년 쓴 걸 가져왔어요. 그래놓곤 벗겨졌다고 불량이라면서 환불 요청하고. 진짜 진상이 너무 많아요.”

백화점 매장 관리부터 보일러 수리까지 각종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는 취업준비생 송주용씨(27)는 일부 ‘진상 손님’들의 갑질에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다고 했다. “반말은 예사고, 마치 알바생을 자기 아랫사람 대하듯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었어요. 최근 갑질 논란 있었잖아요? 주차요원이 사모님 앞에 무릎 꿇고 했던. 사실 저도 비슷한 경우를 많이 겪었어요. 예를 들면 손님이 자기가 산 물건을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 카트나 차까지 들고 오라고 명령을 한다거나, 아니면 고구마를 봉지에 담는데 장갑을 끼지 않은 제 손이 조금 닿았다는 이유로 화를 내며 안 산다고 한다든지. 그럴 때마다 인격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죠. 담당자한테 얘기도 해봤지만 이런 일이 워낙 비일비재하다보니 그분도 그냥 ‘세상 살다 보면 더러운 일 많다’고 다독이고 넘기시더라고요.”

김상민 디자인기자

성주의 한 골프장에서 일하는 이민석씨(31·가명)는 대한민국을 진상공화국이라 말했다. “골프장에서 일하면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봐요. 소리 지르고 욕하는 건 기본이고 여직원들 울리기 일쑤고. 갑질하는 거죠. 막무가내로 돈 줄테니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여직원들 진짜 한 번씩은 다 울었어요. 진상도 얼마나 많다고요. 골프장에 쓰레기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 금연구역에서 담배 피는 사람, 다 말로 못해요.”

이씨는 한국사회에 바라는 점을 묻자 체념한 듯 말을 이었다. “그냥 서로가 서로한테 피해를 안 줬으면 좋겠어요. 좀 일본 같았으면 좋겠다고 해야 하나. 한국은 개인이 개인에게 피해주는 게 많은 것 같아요.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길에서 담배피고, 가다가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고. 이런 거 많잖아요. 돈이 많든 적든 남 피해주는 일은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이에요.”

지난해 11월3일 도시락 브랜드 스노우폭스 매장에 손님에게 직원 존중을 요구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창길 기자

■무너지는 공동체… 팽배하는 이기주의

강남 서초구에서 25년째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허역씨(52)는 점차 배려심이 줄어드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허씨는 개인을 탓하기에 앞서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많이 사라지고 있어요. 다들 개인주의가 팽배하다고 비판하잖아요. 그런데 전 이들을 비판하기 앞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옛날 속담에 이런 게 있거든요.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곳간이 비어있다 보니까 자기 앞가림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다고 봐요. 다시 말해서 우리사회 곳간인 공동체가 텅 비어버린 거죠. 그러니 개인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개인이 공동체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 이 사회를 빨리 바꿔야 될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뭐랄까 살기 어려워졌어요. 살기 어려워지고 사회 구조 자체가 배려에 대한 덕목을 내세우면 뒤쳐지게 만들었어요. 내가 배려를 내세우면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지게 되는 데 어떤 사람이 배려나 공동체 의식을 앞세우겠어요. 1등이 모든 걸 갖는 사회 아닙니까 지금. 하나를 잘 해서 1등하는 사회가 아니라 하나만 잘 해도 1등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거죠. 사람들이 가진 능력이 얼마나 다양해요. 그 중 하나만 잘해도 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안 그렇잖아요. 우란 이미 정해져 있어. 하다못해 청소만 잘해도 사회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경향DB

수원에 사는 직장인 양희준씨(49·가명)는 각박한 세상에선 이기주의가 생존법이 돼 버린 것 같다고 했다. “신문에서 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친한 사람들이 없대요. 그만큼 살기 어려운 거예요. 먹고 살기 어려우니까 세상이 각박해진 거죠. 풍족하면 서로서로 나누고 가족들끼리도 나누고 그러는건데, 자기 살기도 빡빡하니까 나눌 게 없는거라고요. 여유가 없잖아요 여유가. 살기 어려운데 공동체가 다 뭐예요.” 양씨에 뒤이어 취업 준비생 진도빈씨(30·가명)가 말했다. “다들 나한테 피해가 올까 그것만 두려워해요.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할 수는 있어도 나한테 피해가 오는 건 참지 못하는 거죠. 낙오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공동체 교육이 필요

무너지는 공동체를 다시 살릴 수는 없을까. 질문을 듣고 한참 고민에 빠진 양씨가 답했다.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는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함께 사는 법에 대해 가르치지 않잖아요.” 취업준비생인 송명국씨(28·가명) 역시 교육에 답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교육제도부터 민주적이지 않아요. 해방 이후 우리 교육제도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적이 없잖아요. 생각하는 교육이 아닌, 시험용 교육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요. 언어, 역사, 사회 등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는 과목들의 답도 모두 하나만 인정하잖아요.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제도 하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요? 교육이 바뀌어야 공동체가 살아날 것 같아요.” 민주공화국 교육의 결핍, 이것부터 바뀌어야 해요.”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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