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문고리·공천학살..그동안 쌓였던 국민 분노 폭발

이충형 2016. 11. 8.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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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경고 무시한 불통·독선 5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서울 도심의 촛불집회에는 20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하나 때문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 임기 중 누적된 불만 탓이란 지적이 많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어려운 경제 형편에 박근혜 정부의 실책들이 더해져 사람들의 분노가 쌓여 왔는데, 최순실 게이트가 불을 붙였다”고 분석했다. 지난 3년8개월간 논란이 컸던 장면을 꼽아봤다. 다섯 장면을 관통하는 단어는 ‘불통’이었다.


취임 한 달 만에 장차관급 7명 낙마
◆수첩인사=인사는 만사다. 박근혜 정부에선 인사 논란이 유달리 많았다.

2014년 4월 27일 정홍원 총리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한 뒤 사퇴를 발표했다.
그러나 두 달 동안 안대희 후보자 등 후임 총리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결국 두 달 뒤 청와대가 정 총리 유임을 발표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한 달 만에 장차관급 7명이 낙마했다. 특히 첫 총리지명자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부터 아들 병역비리 의혹으로 자진 사퇴했다. 국토교통부 장관을 사임한 유일호 의원을 장관에서 물러난 지 2개월 만에 부총리에 발탁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잦다 보니 박 대통령의 수첩에 적힌 사람들이 정부 인사 ‘풀(pool)’의 전부라는 의미의 ‘수첩인사’ 논란이 계속됐다. 정부 출범을 앞둔 2012년 12월 27일에는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이 밀봉한 봉투를 뜯어 인수위 1차 인선을 발표하면서 ‘밀봉인사’ 논란까지 불렀다.


‘박 대통령의 행적’ 아직도 추측 무성
◆꼬인 세월호 해법=2014년 7월 7일 국회 운영위 업무보고에 참석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박 대통령에게 서면보고를 했고 당시 대통령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이후 무수한 억측이 흘러나왔지만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명확히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은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5월 19일에야 대국민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사건 초기 ‘국가 대개조’를 약속했으나 당시 내놓은 주요 해결책은 국민안전처 신설, 해양경찰청 해체 등이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유족들의 면담 요구가 거세졌지만 “특별법 제정은 국회 소관”이라며 뿌리쳤다.


정윤회 국정 농단 의혹 한마디로 일축
◆청와대 측근 3인방=2014년 12월 7일 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박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들에 나라가 흔들린다는 건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낸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 비서관)이 국정을 농단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문건 파문으로 시끄럽던 때였다. 박 대통령은 이듬해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문고리 3인방’과 관련, “묵묵히 고생하면서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두둔했다.
하지만 정 전 비서관은 국정 농단의 주요 인물로 지목돼 구속된 상태다. 정 전 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비선(秘線)’ 최순실씨와 국정을 논의한 정황이 담긴 통화 파일까지 발견된 상태다.

국회법 통과시킨 유승민 사퇴시켜
◆여당 원내대표 퇴진=2015년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배신의 정치를 국민들께서 반드시 심판해 주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부 시행령에 국회가 관여할 폭을 넓힌 법안을 야권과 합의해 통과시킨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대통령이 집권당 원내대표를 콕 찍어 비난하면서 여권은 요동쳤다. 유 의원은 결국 사퇴했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면서 “헌법 제1조 1항(‘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가치를 지키려 했다”는 말을 남겼다.

진박 후보 지지 호소 4·13 총선 참패
◆총선 개입 논란=4·13 총선 6개월 전인 2015년 11월 10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국회가 민생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진실한 사람들’을 선택해 달라”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새누리당에선 TK(대구·경북)를 중심으로 ‘진박’(진실한 친박)이라 불리는 정부 각료와 청와대 비서관 출신들이 잇따라 도전장을 내밀었다.
친박 조원진 의원은 ‘진박 감별사’를 자처하며 당내 경선에서 이들을 지지해 달라고 선전했다. 당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 의원들을 무더기로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이른바 ‘학살공천’까지 실행에 옮겼다. 이를 본 민심은 싸늘해졌고 새누리당은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122석을 얻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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