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성추문 시인 출판 관계 정리하겠다"
[경향신문] ㆍ가해자 지목된 다수 ‘문지’서 출간
ㆍ불매운동 등 불똥 튀자 긴급 수습…절판·향후 계약 중단 등 입장 밝혀
성폭력으로 논란이 된 작가들 다수가 소속돼 있는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문지)가 ‘절판’을 포함해 “성추문 시인의 출판 관계를 정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부 작가와 독자들 사이에서 문지에 대한 책임이 불거지고 출판사 및 문지문화원의 ‘불매’ 운동이 일자 긴급히 사태를 수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간 성추문의 가해 지목자 다수가 유독 문지에서 시집을 많이 냈다. 박진성, 배용제, 황병승, 이이체 시인은 문지 시인선에서 각각 <식물의 밤>, <다정>, <육체쇼와 전집>, <인간이 버린 사랑> 등을 출간했다. 1978년부터 나온 문지 시인선은 창작과비평사의 창비시선과 함께 한국 현대시의 양 축으로 평가돼왔다.
그동안 문지는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출판사 창비나 실천문학사 등과 달리 ‘문학은 문학으로서 평가되고, 작가에 대한 평가는 작품 자체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3일 송승언 시인이 문지에 책임을 묻는 공개 서한을 보내면서 독자들이 출판사에 입장을 요구했다. 이에 더해 ‘불매’ 운동까지 번질 기미가 보이자 6일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게시했다. 문지는 “최근 일어난 ‘문단 내 성폭행·성추행 논란’과 관련한 문지의 입장과 조치를 밝힌다”면서 “문제가 드러난 시인들의 경우 사안을 가려 출판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할 것이다. 그 조치에는 향후 출판 계약 체결 중단, 계간지 ‘문학과사회’ 원고 청탁 중단에서 기 출간 도서 절판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언론에 성폭력이 보도돼 사과문을 내고 활동을 중지한 박진성, 배용제 시인의 경우 “법적 논란이 있어서 기 출간 시집의 절판에 앞서 출고 정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송승언 시인은 트위터에 게시한 ‘문학과지성사에 고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가해 지목자 다수가 문지에서 시집을 낸 시인들이라는 점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최근 폭로된 성추문이 문지의 문학권력을 등에 업고 일어났음을 지적했다. 그는 “그들이 시창작 강의, 과외를 운영하는 데 있어 ‘문지에서 시집을 낸 시인’이라는 점이 간과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지가 주로 출신 문인들을 앞세워 강좌를 운영했던 ‘문지문화원 사이’ 또한 권위에 기댄 성폭력의 현장이 되었음은 덧붙일 것도 없다”고 밝혔다. 송 시인은 인맥 출판의 통로로 작용하는 출판경영 내규가 있다면 재정비하고, 문지문화원 강의 계약서와 출판 표준계약서에 성폭력 관련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창비와 문학동네 등 대형 출판사들도 예방책 만들기에 부심하고 있다. 성폭력 작가가 언급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이제 남성 작가들과 계약을 할 땐 성폭력 전력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정도”라며 “재계약을 고심 중인 작가들이 몇 있다”고 밝혔다.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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