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 “우리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입력 2016.11.07 (15:32) 수정 2016.11.0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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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의 주 무대는 문화예술체육계다. 그래서 '최순실 국정농단'을 지켜보는 문화예술체육인들의 분노와 참담함은 일반 국민들보다 더 강하고 처절하다. 이들에게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기 전에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이미 가슴이 새카맣게 멍이든 상태여서 더욱 그렇다.

나아가 '문화융성'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기조가 실상은 '최순실과 차은택'이라는 박 대통령 비선 실세들의 사익 채우기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문화예술계에선 박근혜 정부가 자신들을 유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커지고 있다.

대학가에서 촉발된 '최순실 국정농단' 규탄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시위로 수위가 높아진 가운데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최순실 국정 농단'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질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예술행동위원회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이른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예술행동위원회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이른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모두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 소속 예술인들은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앞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해명과 진상규명을 요구한 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이 주축이 됐다.

이들은 288개 문화 예술 단체가 참여한 시국선언문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의 많은 부분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벌어졌다는 사실과 문화융성 운운했던 박근혜 정부 문화정책이 실상은 최순실·차은택을 위해 기획됐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연극협회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권력의 뒤편에서 기생한 하수인들은 모두 물러나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출판종사자들은 SNS 등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출판인 선언' 서명을 받고 있다.

만화가들의 모임인 '우리만화연대' 역시 "더 큰 불행을 자초하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춤비평가협회는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무용계를 비롯해 문화예술계의 현장은 싸늘하게 식어왔다"며 "대통령 권력 뒤에서 문화예술계를 농단한 이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문화예술인들은 평소 단체 행동을 잘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해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자신들의 창작과 삶의 무대가 대통령을 등에 업은 얼치기 문외한들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유린당했다는 억하심정 때문일 것이다.

2014년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 출전해 경기를 펼치는 정유라2014년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 출전해 경기를 펼치는 정유라

언론 보도를 보면 '최순실-차은택' 비선 라인의 문화계 유린은 2013년 4월 상주 승마대회에 출전한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대한승마협회의 감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정 씨는 이 대회에서 준우승한 뒤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민원을 제기했으며, 이와 관련해 특별감사를 했던 문체부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이 '승마협회 내부의 최순실 씨와 관련된 파벌 싸움을 정리해야 한다'고 보고했고, 이 보고가 대통령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김종 차관이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2016년 9월 27일)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김종 차관이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2016년 9월 27일)

이를 계기로 2013년 10월 김종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가 문체부 제2차관에 임명되면서 최순실 씨 측근들의 문체부 유린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김종 전 차관은 박근혜 정부의 2기 내각이 발표되기에 앞서 문체부 장관 후보자와 한국콘텐츠진흥원장 후보자를 최순실 씨에게 추천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후 2014년 7월 유진룡 문체부 장관이 경질되고, 차은택 씨의 대학원 스승인 김종덕 씨가 문체부 장관에, 차 씨의 외삼촌 김상률 씨가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에 임명됐다. 그리고 같은 해 8월에는 차은택 씨가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최순실-차은택 비선 라인'의 문체부 유린과 국정 농단은 본격화된 것으로 언론은 보고 있다.

압구정동 CGV에서 열린 SBS 2부작 금요 단막드라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제작발표회 겸 기자시사회장에서 연출을 맡은 차은택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2007년 3월 22일)압구정동 CGV에서 열린 SBS 2부작 금요 단막드라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제작발표회 겸 기자시사회장에서 연출을 맡은 차은택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2007년 3월 22일)

차 씨가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이 된 두 달 뒤에는 문체부 내 '유진룡 라인'으로 분류되는 1급 공무원 6명이 사표를 내고 이 중 3명이 문체부를 떠났다. 한 방송사는 바로 이 시기에 최순실 씨 및 그의 측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4대 국정 지표 중 하나인 '문화 융성' 관련 세부 사업을 짜고 사업별 예산까지 책정했다고 보도했다.

최 씨와 측근들이 만든 것으로 보도된 '문화 융성' 관련 문건에 따르면 2014년에서 15년 사이에 1,796억 원의 예산으로 12개 사업과 28개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사업과 예산을 보면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통합 작업' 50억 원, '관광 콘텐츠 개발 및 보급' 130억 원, '명품 브랜드와 한복의 콜라보 패션쇼' 30억 원, '대형 융합공연' 140억 원, '드라마 영화 뮤지컬 제작지원' 300억 원 등이다.

서울 마포구 문화창조융합센터에서 열린 오픈 하우스 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시설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2015년 5월 20일서울 마포구 문화창조융합센터에서 열린 오픈 하우스 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시설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2015년 5월 20일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은 '문화창조센터 건립'이다. 문건에서 여기에 배정한 예산은 당초 400억 원이었으나, 현재 5년간 총예산 7,000억 원이 넘는 대형사업으로 발전했다. 이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 지원 아래 '문화창조융합벨트'로 확대돼 현재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차은택 씨가 초대 본부장을 맡은 문화창조융합본부에서 총괄했다.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새 국가브랜드 ‘CREATIVE KOREA’를 발표하고 있다. 2016년 7월 4일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새 국가브랜드 ‘CREATIVE KOREA’를 발표하고 있다. 2016년 7월 4일

또 중점 사업 1번으로 돼 있는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통합 작업'은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 중점사업으로 추진돼 지난 6월 새 국가 브랜드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로 발표됐으나 표절논란에 휩싸여 있다.

공연계는 전문성도 없는 차 감독이 만든 뮤지컬 '원데이'에 문화체육관광부가 국고 1억 7,890만 원을 긴급 지원한 것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견우와 직녀를 소재로 한 융복합 공연 '원데이'는 '문화가 있는 날'인 2014년 8월 27일 상명아트센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관람하는 가운데 공연돼 화제가 됐으나 이후 한 번도 무대에 오른 적 없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예술행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박근혜 퇴진 블랙리스트 예술가 시국선언’에서 참가자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2016년 11월 4일)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예술행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박근혜 퇴진 블랙리스트 예술가 시국선언’에서 참가자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2016년 11월 4일)

공연 관계자는 "정말 지원을 해줘야 하는 연극인들은 블랙리스트로 구분해놓고는 이런 작품에 국고를 긴급 지원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김균섭(왼쪽부터), 황영식, 정유라, 김동선이 시상대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4년 9월 20일)2014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김균섭(왼쪽부터), 황영식, 정유라, 김동선이 시상대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4년 9월 20일)

이들 사업 가운데 '차세대 스포츠 인재양성 프로그램 개발 및 은퇴 메달리스트 복지확보' 사업은 체육 관련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120억 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 이는 2014년 당시 고교 3학년으로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준비하던 최 씨의 딸 정유라 씨를 염두에 둔 예산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아름 씨가 2014년 11월 2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서 늘품체조를 하고 있다.박근혜 대통령과 정아름 씨가 2014년 11월 2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서 늘품체조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팀이 만든 '늘품 건강체조'를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이 체조는 차은택 씨와 미스코리아 정아름 씨가 합작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11월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늘품 건강체조' 시연을 참관한 후 동작을 따라 배우기도 했다.


최순실-차은택의 문화체육행정 농단 행태를 보면 정부 안에 자기들만의 비밀 조직을 만든 뒤, 최 씨와 차 씨가 사업안을 짜고, 청와대와 문체부가 다듬어 정부 사업으로 결정한 뒤, 세금까지 대고, 최 씨와 차 씨가 만든 회사들이 다시 사업권을 따내는 구조로 돼 있다.

최순실-차은택의 문화체육부 농단 실체가 드러나면서 그간 차은택 인맥으로 문체부에 똬리를 텄던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종 전 차관, 김상률 청와대 전 교육문화수석,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고, 일부는 검찰수사를 기다리고 있다.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하고 있다. (2016년 11월 1일)국회 본청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하고 있다. (2016년 11월 1일)

이런 가운데서도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개인적인 책임과는 별도로 국가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면서 문화융성 사업을 지속적으로 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장관은 이후 여론과 언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는 '문화 융성' 관련 사업 가운데 이른바 최순실-차은택 예산으로 의심되는 19개 사업의 내년도 예산을 전체 대비 20.5%인 731억 원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가 줄이겠다고 밝힌 주요 사업은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확산(86억 원 중 81억 원 삭감), 문화창조융합벨트 글로벌 허브화(169억 원 중 145억 원 삭감), 문화창조벤처단지 구축 및 운영(555억 원 중 145억 원 삭감), 융복합 콘텐츠 개발(188억 원 중 88억 원 삭감) 등 문화창조융합벨트와 관련된 사업이 대거 포함됐다.

최순실 씨가 독일에 세운 비덱 스포츠의 전신인 코레 스포츠 대주주인 장시호최순실 씨가 독일에 세운 비덱 스포츠의 전신인 코레 스포츠 대주주인 장시호

차은택 씨의 개입과 표절 논란이 일었던 국가브랜드 개발 및 홍보 확산 사업도 30억 원 중 절반인 15억 원을 줄이기로 했다. 올해 5억 원의 예산이 집행됐으나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동계스포츠 영재선발 육성지원 사업도 폐지 대상 항목에 올라 더는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이 사업은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개입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아울러 문체부는 차 씨가 총괄감독을 맡거나 연출한 밀라노엑스포 한국관과 뮤지컬 '원 데이' 등 이미 종료된 사업에 대해서도 추후 재정산 등 정밀 점검을 통해 위법 부당한 자금 집행이 드러나면 즉각 환수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대회 정례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조양호 회장 (2016년 5월 3일)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대회 정례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조양호 회장 (2016년 5월 3일)

이 밖에도 최순실 씨 일가가 자신들의 특혜 창구로 알려진 K-스포츠 재단을 내세워 300억 원대 정부 사업인 K-스포츠 클럽을 차지하려 했다는 의혹과 평창 올림픽 관련 사업을 따내려고 방해가 되는 조양호 전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을 사퇴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 의혹을 캐기 위해서는 여기에 주도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 씨 조카 장시호 씨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구속된 최순실씨가 4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2016년 11월 4일) 구속된 최순실씨가 4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2016년 11월 4일)

최순실 씨는 창조문화와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세운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설립 명목으로 안종범 정책 수석과 더불어 대기업을 상대로 강제로 기금을 모았고, 자신의 개인 기업을 위해 K-스포츠 재단의 돈을 일부 빼돌리려 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최 씨의 측근으로 문화계의 황태자로 불리며, 문체부의 문화융성 사업을 주도하고, 개인적인 비리까지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차은택 씨는 오는 9일 귀국하겠다는 뜻을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K-스포츠 재단을 통해 평창 올림픽 사업 이권까지 차지하려 한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 씨 조카 장시호씨는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수남 검찰총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2016년 10월 13일)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수남 검찰총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2016년 10월 13일)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차은택 씨와 장시호 씨의 신병을 확보하고 이미 구속된 최순실 씨를 통해 이들이 문화융성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체육부를 농단한 전모를 밝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멍이 들고 자신들의 삶과 창작의 무대를 송두리째 유린당한 문화예술체육계 인사들의 분노를 풀어주고 참담한 마음을 위로해야 할 것이다.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인근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있다. (2016년 10월 31일)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인근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있다. (2016년 10월 31일)

이참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새로 태어나야 한다. 인적 구성과 조직을 쇄신하고 문화융성 사업을 밑동에서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 예산지원을 이유로 문화예술체육분야를 쥐락펴락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안석환·봉태규가 출연한 연극 ‘웃음의 대학’안석환·봉태규가 출연한 연극 ‘웃음의 대학’

문화예술체육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렵겠지만 나라의 정신문화를 이끈다는 긍지로 권력이나 금력으로부터 문화예술의 독립성을 지켜 내려는 노력을 더욱 해야 한다. 여기에는 국민들의 애정 어린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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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플러스] “우리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 입력 2016-11-07 15:32:44
    • 수정2016-11-07 17: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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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의 주 무대는 문화예술체육계다. 그래서 '최순실 국정농단'을 지켜보는 문화예술체육인들의 분노와 참담함은 일반 국민들보다 더 강하고 처절하다. 이들에게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기 전에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이미 가슴이 새카맣게 멍이든 상태여서 더욱 그렇다. 나아가 '문화융성'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기조가 실상은 '최순실과 차은택'이라는 박 대통령 비선 실세들의 사익 채우기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문화예술계에선 박근혜 정부가 자신들을 유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커지고 있다. 대학가에서 촉발된 '최순실 국정농단' 규탄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시위로 수위가 높아진 가운데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최순실 국정 농단'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질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예술행동위원회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이른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모두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예술행동위원회 소속 예술인들은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앞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해명과 진상규명을 요구한 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이 주축이 됐다. 이들은 288개 문화 예술 단체가 참여한 시국선언문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의 많은 부분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벌어졌다는 사실과 문화융성 운운했던 박근혜 정부 문화정책이 실상은 최순실·차은택을 위해 기획됐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연극협회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권력의 뒤편에서 기생한 하수인들은 모두 물러나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출판종사자들은 SNS 등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출판인 선언' 서명을 받고 있다. 만화가들의 모임인 '우리만화연대' 역시 "더 큰 불행을 자초하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춤비평가협회는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무용계를 비롯해 문화예술계의 현장은 싸늘하게 식어왔다"며 "대통령 권력 뒤에서 문화예술계를 농단한 이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문화예술인들은 평소 단체 행동을 잘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해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자신들의 창작과 삶의 무대가 대통령을 등에 업은 얼치기 문외한들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유린당했다는 억하심정 때문일 것이다. 2014년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 출전해 경기를 펼치는 정유라 언론 보도를 보면 '최순실-차은택' 비선 라인의 문화계 유린은 2013년 4월 상주 승마대회에 출전한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대한승마협회의 감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정 씨는 이 대회에서 준우승한 뒤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민원을 제기했으며, 이와 관련해 특별감사를 했던 문체부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이 '승마협회 내부의 최순실 씨와 관련된 파벌 싸움을 정리해야 한다'고 보고했고, 이 보고가 대통령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김종 차관이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2016년 9월 27일) 이를 계기로 2013년 10월 김종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가 문체부 제2차관에 임명되면서 최순실 씨 측근들의 문체부 유린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김종 전 차관은 박근혜 정부의 2기 내각이 발표되기에 앞서 문체부 장관 후보자와 한국콘텐츠진흥원장 후보자를 최순실 씨에게 추천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후 2014년 7월 유진룡 문체부 장관이 경질되고, 차은택 씨의 대학원 스승인 김종덕 씨가 문체부 장관에, 차 씨의 외삼촌 김상률 씨가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에 임명됐다. 그리고 같은 해 8월에는 차은택 씨가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최순실-차은택 비선 라인'의 문체부 유린과 국정 농단은 본격화된 것으로 언론은 보고 있다. 압구정동 CGV에서 열린 SBS 2부작 금요 단막드라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제작발표회 겸 기자시사회장에서 연출을 맡은 차은택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2007년 3월 22일) 차 씨가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이 된 두 달 뒤에는 문체부 내 '유진룡 라인'으로 분류되는 1급 공무원 6명이 사표를 내고 이 중 3명이 문체부를 떠났다. 한 방송사는 바로 이 시기에 최순실 씨 및 그의 측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4대 국정 지표 중 하나인 '문화 융성' 관련 세부 사업을 짜고 사업별 예산까지 책정했다고 보도했다. 최 씨와 측근들이 만든 것으로 보도된 '문화 융성' 관련 문건에 따르면 2014년에서 15년 사이에 1,796억 원의 예산으로 12개 사업과 28개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사업과 예산을 보면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통합 작업' 50억 원, '관광 콘텐츠 개발 및 보급' 130억 원, '명품 브랜드와 한복의 콜라보 패션쇼' 30억 원, '대형 융합공연' 140억 원, '드라마 영화 뮤지컬 제작지원' 300억 원 등이다. 서울 마포구 문화창조융합센터에서 열린 오픈 하우스 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시설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2015년 5월 20일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은 '문화창조센터 건립'이다. 문건에서 여기에 배정한 예산은 당초 400억 원이었으나, 현재 5년간 총예산 7,000억 원이 넘는 대형사업으로 발전했다. 이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 지원 아래 '문화창조융합벨트'로 확대돼 현재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차은택 씨가 초대 본부장을 맡은 문화창조융합본부에서 총괄했다.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새 국가브랜드 ‘CREATIVE KOREA’를 발표하고 있다. 2016년 7월 4일 또 중점 사업 1번으로 돼 있는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 통합 작업'은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 중점사업으로 추진돼 지난 6월 새 국가 브랜드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로 발표됐으나 표절논란에 휩싸여 있다. 공연계는 전문성도 없는 차 감독이 만든 뮤지컬 '원데이'에 문화체육관광부가 국고 1억 7,890만 원을 긴급 지원한 것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견우와 직녀를 소재로 한 융복합 공연 '원데이'는 '문화가 있는 날'인 2014년 8월 27일 상명아트센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관람하는 가운데 공연돼 화제가 됐으나 이후 한 번도 무대에 오른 적 없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예술행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박근혜 퇴진 블랙리스트 예술가 시국선언’에서 참가자들이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2016년 11월 4일) 공연 관계자는 "정말 지원을 해줘야 하는 연극인들은 블랙리스트로 구분해놓고는 이런 작품에 국고를 긴급 지원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김균섭(왼쪽부터), 황영식, 정유라, 김동선이 시상대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4년 9월 20일) 이들 사업 가운데 '차세대 스포츠 인재양성 프로그램 개발 및 은퇴 메달리스트 복지확보' 사업은 체육 관련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120억 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 이는 2014년 당시 고교 3학년으로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준비하던 최 씨의 딸 정유라 씨를 염두에 둔 예산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아름 씨가 2014년 11월 2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서 늘품체조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팀이 만든 '늘품 건강체조'를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이 체조는 차은택 씨와 미스코리아 정아름 씨가 합작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11월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늘품 건강체조' 시연을 참관한 후 동작을 따라 배우기도 했다. 최순실-차은택의 문화체육행정 농단 행태를 보면 정부 안에 자기들만의 비밀 조직을 만든 뒤, 최 씨와 차 씨가 사업안을 짜고, 청와대와 문체부가 다듬어 정부 사업으로 결정한 뒤, 세금까지 대고, 최 씨와 차 씨가 만든 회사들이 다시 사업권을 따내는 구조로 돼 있다. 최순실-차은택의 문화체육부 농단 실체가 드러나면서 그간 차은택 인맥으로 문체부에 똬리를 텄던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종 전 차관, 김상률 청와대 전 교육문화수석,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고, 일부는 검찰수사를 기다리고 있다.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하고 있다. (2016년 11월 1일) 이런 가운데서도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개인적인 책임과는 별도로 국가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면서 문화융성 사업을 지속적으로 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 장관은 이후 여론과 언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는 '문화 융성' 관련 사업 가운데 이른바 최순실-차은택 예산으로 의심되는 19개 사업의 내년도 예산을 전체 대비 20.5%인 731억 원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가 줄이겠다고 밝힌 주요 사업은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확산(86억 원 중 81억 원 삭감), 문화창조융합벨트 글로벌 허브화(169억 원 중 145억 원 삭감), 문화창조벤처단지 구축 및 운영(555억 원 중 145억 원 삭감), 융복합 콘텐츠 개발(188억 원 중 88억 원 삭감) 등 문화창조융합벨트와 관련된 사업이 대거 포함됐다. 최순실 씨가 독일에 세운 비덱 스포츠의 전신인 코레 스포츠 대주주인 장시호 차은택 씨의 개입과 표절 논란이 일었던 국가브랜드 개발 및 홍보 확산 사업도 30억 원 중 절반인 15억 원을 줄이기로 했다. 올해 5억 원의 예산이 집행됐으나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동계스포츠 영재선발 육성지원 사업도 폐지 대상 항목에 올라 더는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이 사업은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개입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아울러 문체부는 차 씨가 총괄감독을 맡거나 연출한 밀라노엑스포 한국관과 뮤지컬 '원 데이' 등 이미 종료된 사업에 대해서도 추후 재정산 등 정밀 점검을 통해 위법 부당한 자금 집행이 드러나면 즉각 환수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대회 정례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조양호 회장 (2016년 5월 3일) 이 밖에도 최순실 씨 일가가 자신들의 특혜 창구로 알려진 K-스포츠 재단을 내세워 300억 원대 정부 사업인 K-스포츠 클럽을 차지하려 했다는 의혹과 평창 올림픽 관련 사업을 따내려고 방해가 되는 조양호 전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을 사퇴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 의혹을 캐기 위해서는 여기에 주도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 씨 조카 장시호 씨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구속된 최순실씨가 4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2016년 11월 4일) 최순실 씨는 창조문화와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세운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설립 명목으로 안종범 정책 수석과 더불어 대기업을 상대로 강제로 기금을 모았고, 자신의 개인 기업을 위해 K-스포츠 재단의 돈을 일부 빼돌리려 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최 씨의 측근으로 문화계의 황태자로 불리며, 문체부의 문화융성 사업을 주도하고, 개인적인 비리까지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차은택 씨는 오는 9일 귀국하겠다는 뜻을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K-스포츠 재단을 통해 평창 올림픽 사업 이권까지 차지하려 한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 씨 조카 장시호씨는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수남 검찰총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2016년 10월 13일)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차은택 씨와 장시호 씨의 신병을 확보하고 이미 구속된 최순실 씨를 통해 이들이 문화융성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체육부를 농단한 전모를 밝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멍이 들고 자신들의 삶과 창작의 무대를 송두리째 유린당한 문화예술체육계 인사들의 분노를 풀어주고 참담한 마음을 위로해야 할 것이다.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인근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있다. (2016년 10월 31일) 이참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새로 태어나야 한다. 인적 구성과 조직을 쇄신하고 문화융성 사업을 밑동에서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 예산지원을 이유로 문화예술체육분야를 쥐락펴락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안석환·봉태규가 출연한 연극 ‘웃음의 대학’ 문화예술체육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렵겠지만 나라의 정신문화를 이끈다는 긍지로 권력이나 금력으로부터 문화예술의 독립성을 지켜 내려는 노력을 더욱 해야 한다. 여기에는 국민들의 애정 어린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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