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취재기]우병우가 다가가자 수사관이 벌떡 일어났다

고운호 기자 2016. 11. 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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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6일 오후.

오후 편집회의가 끝난 뒤 부장으로부터 취재지시가 떨어졌다.

“검찰 밖에서 보이는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아니라 조사실의 우병우를 찍어보라”는 지시였다.

앞서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한 우병우 전 수석은 질문을 하는 여기자를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봐 언론의 지탄을 받은 터였다. 사진 부장의 판단은 이런 것이었다. “소환과정에서 보여준 우 전 수석의 고압적인 자세, 그리고 검찰의 저자세. 조사실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이 연출될지 우리가 확인해 보자”

사진부 야간 데스크가 곧바로 검찰출입 기자에게 연락, 우병우 전 수석이 조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사실 층수와 호수 정보를 파악해줬다. 다음 숙제는 조사실이 잘 보이는 촬영지점을 물색하는 것. 데스크는 조사실이 가장 잘 보이는 맞은편 건물의 ‘지점’을 낙점해줬다.

밤 8시30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맞은편 건물에 도착했다. 운좋게 옥상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올라갔다. 기자의 무기는 캐논 1DX 카메라, 렌즈는 600mm 망원 렌즈. 여기에 2배율 텔레컨버터(화질은 떨어지지만 2배로 확대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를 끼우고 모노포드를 사용했다. 옥상 울타리에 렌즈를 거치한 후,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안정적’ 포즈를 잡았다. 이렇게 해야 셔터를 누를 때 흔들림이 없다. 데스크가 직접 건네줬던 고배율 망원경도 틈틈히 사용해 가면서 조사실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제 남은 것은 조사실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밤 8시 50분.

건물 오른쪽부터 1호가 시작된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카메라 렌즈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며 겨눴다. 건물 중간에서 약간 왼쪽. 1118호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우 전 수석 조사를 담당한 김석우 특수2부장실이었다. 그 순간 특수2부장실 바로 옆에 딸린 부속실 창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 생각 없이 첫 셔터를 눌렀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고 눈으로 식별이 불가했지만, 느낌이 왔다. 누군가 목을 뒤로 젖혀 돌리는 식으로 스트레칭을 하면서 검찰 관계자들에게 다가갔다. 그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수사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촬영된 사진을 살펴보니 역시나 우병우 전 수석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있었다.

밤 9시 19분.

육안으로 보기에 흐릿한 형상의 누군가 나타나 다시 셔터를 눌렀다.

그는 우병우의 변호인 곽병훈 변호사였다. 곽 변호사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검찰 관계자들 앞에서 크게 웃는 모습이었다.

밤 9시 25분.

다시 무언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우병우였다. 점퍼 차림의 그는 팔짱을 끼고 웃음을 띤 채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었고, 그의 옆에 있는 두 사람의 검찰 관계자는 정자세로 서서 우 전 수석의 말을 듣고 있었다. 뒤이은 컷에는 우 전 수석이 계속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향해 서 있었고, 검찰의 두 사람은 자세를 풀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손을 모은 채, 우 전 수석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3초. 셔터를 누른 시간이었다.

노트북을 열고 사진을 송고했다. 이 사진들 중 마지막에서 두번째 사진이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우병우 전 수석의 모습이다.

이후로도 7일 새벽 1시까지 조사실과 부속실을 향해 카메라를 맞추고 있었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그 동안 잠깐 빛만 스쳐도 찍은 사진만 900장. 우병우의 ‘위세’는 검찰에 출두할 때는 물론, 조사를 받을 때도 ‘한결 같은 것처럼’ 보였다. 조사실 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지켜보는 눈’이 없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판단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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