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시민항쟁]"4·19 역사가 어제처럼 느껴진 날..변명이 더 필요한가"

이재훈 | 시인 2016. 11. 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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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이재훈 시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현장’

지난 5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국민행동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성일 기자

11월5일 토요일. 다른 날 같으면 늘 그렇고 그런 오후를 보냈을 것이다. 아내가 일하러 나가는 토요일 열 살, 일곱 살의 두 아이는 오로지 내 몫이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볶음밥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를 돌아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광화문에 나가야 하는 것이다. 광장에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최순실의 국정개입 파문으로 ‘멘붕’에 빠져 있었다. 그전부터 하나씩 쌓였던 울화들이 폭발되었다. 모든 국민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밥맛도 없고, 술맛도 없고, 일하는 것도, 개그 프로도 재미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국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 나라가 왜 이 꼴이 되었는지 서로 모여 한탄했을 것이다. 분을 표출하는 것에는 젬병인 나도 분명한 이유를 가진 분노 때문에 괴로웠다. 그렇기에 ‘오늘은 광화문 광장에 나가야만 한다’고 아침부터 마음을 다그쳤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은 좀 신이 난 모양이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는지 들고 갈 피켓을 만들어야겠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런데 아빠. 국정농단이 뭐야? 피켓에는 뭐라고 써야 돼?” 딸도 인터넷 기사를 좀 읽은 모양이다. 열 살이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국정농단은 한마디로 국민들을 속이고 놀았다는 말과 비슷한 거야.” “하야는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말. 그러니까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말.” “대통령이 그렇게 잘못한 거야?” “응. 국민들 편이 아니거든.” “그럼 초등학생들 편도 아니겠네.”

딸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딸도 언젠가는 다 알게 될 것이다. 오늘도 역사이니까. 딸은 매직펜으로 삐뚤빼뚤 글씨를 썼다. ‘하야하라 퇴진하라’. 아들은 안 가겠다고 떼를 썼다. 장난감 차를 사주겠다는 당근을 주고 겨우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일곱 살이 무얼 알겠는가. 하지만 나도 일곱 살 적 일이 가끔씩 선명하게 기억난다.

딸은 장난감 플라스틱 삼지창에 자신이 쓴 피켓 ‘하야하라 퇴진하라’를 붙여 들고 다녔다. 지하철에서 이를 본 어르신들은 잘했다며 엄지척을 해주신다. 이모 삼촌들은 귀엽다며 웃어주신다. 모두 같은 마음이다. 초등학생이 든 저 ‘하야하라 퇴진하라’는 거친 말을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게 만든 지금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어쩌면 앞으로 더 자극적이고 험한 말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한 말들이 일상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열 살 아이에게 저런 말을 가르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 버렸다. 어찌할 것인가.

지하철 시청역에서 내려 광화문까지 걸어갔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많이 보였다. 20만명이 광화문 광장을 다녀갔다고 한다. 20만명이라니. 웬만한 중소도시의 인구가 광장에 나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쳐 저 높은 위정자들에게 국민의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광장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고대로부터 모든 시민들이 모여 의견을 전하는 공간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뿐인가. 광장에 나오지 못한 더 많은 국민들이 한마음이었을 것이다.

광화문에서 종로 쪽으로 행진했다. 교복을 입은 십대의 친구들도 많이 보였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 기타를 치며 민중가요를 부르는 아저씨들. 피켓을 들고 천천히 걷는 어르신들. 모두 하야하라, 퇴진하라를 외쳤다. 우리는 종로 쪽에서 광화문 집회의 현장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폭로의 시대이다. 분노의 시대이다. 그리고 변명의 시대이다. 나라도 문단도 모두 쑥대밭이 되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요즘처럼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없다. 폭로도, 분노도, 변명도 모두 잘해야 한다. 우리들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국민들을 무시하는 저 ‘비겁한 변명’이다. 우리 국민들은 오랫동안 잘 분노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자괴감 들어’라는 말은 하루 만에 유행어가 되었다. 이젠 홀로 사는 대통령의 개인사를 안타까워해야 할 감성이 국민들에게 남아 있지 않다. 제아무리 좋은 선의도 여러 번 되풀이되어 그 민낯의 본심이 탄로 나면 악의인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위로의 자리가 없다. 그만큼 절박하다.

언제부터였을까.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변명할 때부터였을까. 하야하라, 퇴진하라는 거친 말들이 자연스러운 말이 되기까지. 광장에서 ‘하야하라’고 외친 날들이 어제오늘만은 아닐 것이다. 4·19의 역사가 어제처럼 느껴진 날이다. 이제 이런 날들이 자주 혹은 매일 있을 것이다. 광장에서의 외침이 추억이 아니라 일상이며, 기억이 아니라 가장 절박한 실존의 시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저 애처로운 척하지만 오만하고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지금 우리가 외치는 이 바닥으로 내려올 때까지. 이후 국민들의 목소리가 외면당하지 않는 그날까지.

■이재훈 시인은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벌레 신화> 등. 현대시작품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이재훈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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