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대국민담화]국민은 국정 못 맡기겠다는데.."국민이 맡긴 책임"

이용욱 기자 2016. 11. 4.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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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성난 민심’ 못 읽는 대통령

장막 뒤로 퇴장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박근혜 대통령은 4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내외에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국정은 하루라도 중단되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국민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이라고도 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하야와 탄핵 여론이 압도적인,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 발표한 2차 담화였음에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메시지만 내놓은 것이다. 정국을 수습하기는커녕 악화될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근본적 수습책 없이 “공백 없어야”

박 대통령은 “안보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고,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더 큰 혼란과 국정 공백 상태를 막기 위해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은 검찰에 맡기고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속히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유의 안보·경제 위기론을 반복하면서 국정주도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임을 강조한 것이다.

국민적 하야와 탄핵 여론에 직면했음에도 2선 후퇴, 거국내각 구성, 책임총리, 김병준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권한 이양 등 수습을 위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담화 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 총리 후보자가 그런(책임총리) 의지를 표명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그것을 ‘기다, 아니다’라고 얘기할 필요가 없다”면서 “(박 대통령이) 김 지명자와 충분히 협의해서 권한을 드렸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직접 언급이 아닌 익명의 관계자 설명이어서, 박 대통령의 권한이양 의지가 분명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도 이날 국회 운영위에서 “나로서는 그런 (2선 후퇴) 건의를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대통령 임기는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히 계속돼야 한다”며 “여야 대표님들과 자주 소통하면서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여야 대표 회담을 제안했다. 임기 내내 ‘불통’했다가 절박한 상황에서 뒤늦게 정치권과 소통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며 2선 후퇴를 선언해야 대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내가 (회담을) 받겠다고 했는데 안 해주면 어떡하느냐”면서도 “안보·민생경제를 언급한 것은 조금 이율배반적으로 앞으로도 국정 중심에 서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여야 대표회담에서 ‘김병준 카드’를 설득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지명철회를 대화 참여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혼돈 지속…“세 번째 사과 나올 것”

상황들을 종합하면 이날 대국민담화는 성난 민심을 풀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개인사’까지 거론하면서 사과한 만큼 중·장년층 일부 지지층은 재결집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2선 후퇴 등 사태수습 방안들이 빠진 이날 담화가 5%까지 떨어진 국정지지율을 반등시켜 국정동력을 회복할 수준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이 ‘더 이상 실수는 반복하지 않겠으니 도와달라’는 입장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다. 국정이 파탄지경인데도, 동정여론에 기대려는 듯한 사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국정 협조’를 받아야 할 야권이 반발하는 데다, 지지 기반은 붕괴 상태다.

당장 5일 주말 집회에선 대규모 인파가 집결해 박 대통령 퇴진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이 등을 돌리고 민심도 요동치면서 국정진공 상태도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지원 위원장은 “세 번째 사과도 곧 나오리라고 본다”면서 “대통령이 이렇게 말한 건 또 다른 세 번째 사과를 요구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용욱 기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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