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낙하산 꽂을 힘 잃어"

송윤경·선명수 기자 2016. 11. 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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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최순실’ 여파로 연말 금융기관 인사 기류 변화
ㆍ현기환 수석, 기업은행장 고사
ㆍ대선캠프 출신 임명설도 사라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정국을 강타한 이후 금융권 안팎의 ‘낙하산 행렬’ 구도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다음 대선을 앞두고 줄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대선캠프 출신의 기관장·임원 임명설은 쏙 들어갔다. 대신 세월호 참사 이후 위축됐던 관료 출신들이 뜨고 있다.

애초 금융권에서는 청와대의 ‘보은성 낙하산’에 의한 올해 말의 인사 태풍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 새 기관장을 임명해야 하는 주요 금융기관은 IBK기업은행, 우리은행, 수출입은행, 기술보증기금, 한국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 등이다. 사실상 현 정권 임기 내의 마지막 대형 ‘물갈이’를 앞둔 탓에 대선캠프 출신 등은 물밑에서 ‘마지막 티켓’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차기 기업은행장 ‘내정설’이 파다해 금융노조가 강력투쟁을 예고하는 성명까지 발표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순실 파문’ 이후 분위기가 확 바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국정운영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청와대가 낙하산을 내려보내기 힘든 처지가 됐다. 기업은행장 자리를 둘러싼 분위기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현기환 전 수석이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의혹이 커질 때쯤 기업은행장 자리를 고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낙하산 비판 여론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은행권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청와대는 기업은행에 낙하산을 꽂을 동력이 더 이상 없어 보인다”면서 “내부 인사 승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12월 말 임명될 차기 기업은행장으로는 박춘홍 전무이사가 유력하게 꼽히고 있고 권선주 행장의 연임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치권 인사가 ‘지는’ 사이 새롭게 떠오른 ‘강자’는 관료 출신이다. 국정이 마비되는 비상시국 속에서도 관료 출신들은 금융기관장과 임원 자리를 꿰차고 있다. 보험개발원은 3일 신임 원장에 성대규 전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이 선출됐다고 밝혔다. 성 원장은 원장 공모에 홀로 지원했다. 보험료율을 산출하는 보험개발원은 민간 보험사 회비만으로 운영되는 민간 기관이지만, 지난 30년간 민간 출신 원장은 1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금융당국 출신을 원장으로 맞았다.

지난 1일에는 손해보험협회 전무에 서경환 전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국장이 임명됐고, 지난달 20일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 출신인 홍재문 전 한국자금중개 부사장이 은행연합회 전무에 앉았다. 금감원의 양현근 전 부원장보는 지난달 21일 한국증권금융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 속에서 관료 출신에 대한 주목도가 덜한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관피아 척결’을 내세우던 때와 비교하면 관료 출신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달 중 홍영만 사장 임기가 만료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지난 2일 유재훈 사장이 사임한 한국예탁결제원도 관료 출신 기관장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자산관리공사 사장에는 문창용 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예탁결제원 사장에는 이병래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송윤경·선명수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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