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세월호 엄마·아빠가 기억 속으로 건져올린 '그날의 아이들'

2016. 11. 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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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홍성담 화백이 아이들 그린 <들숨·날숨> 전시회 현장
유가족 10명이 직접 방문객에게 그림 설명하며 소통
금요일엔 단원고 희생자 넋 기리는 기억시 낭송회 열려
홍 화백 “좌절 말고 고통과 직면해 참사 진상 규명해야”

“죄송합니다. 울지 말아야 할 자리인데 자꾸 눈물이 나오네요. 그래도 아파만 할 수 없기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달 27일 오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현대상가 3층에 마련된 ‘416기억전시관’. ‘도슨트’(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로 나선 양옥자씨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양씨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7반 허재강군의 엄마다.

양씨는 아들과 그 친구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그림이 전시된 방에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한다. 노란 티셔츠를 입고 차분하게 방문객을 맞이하는 게 일상이 됐지만, 그날의 참상이 담긴 그림 앞에만 서면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만다.

온 나라가 ‘최순실 게이트’로 침몰하고 있지만, 우리의 망각에 침몰당한 아이들을 다시 기억 속으로 끌어올리는 뜻깊은 전시회가 이 전시관에서 지난 9월23일부터 두 달째 열리고 있다.

민중 미술가로 널리 알려진 홍성담(61) 화백의 작품 17점이 전시된 이번 ‘기억 프로젝트’는 <들숨·날숨>이란 제목이 붙었다.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홍 화백에게 교육을 받은 유가족 10명이 직접 도슨트로 나선다는 것이다. 큐레이터나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들이 직접 방문객과 소통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1000일 되는 2017년 1월9일까지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그림과 시낭송 문화제인데, 매주 금요일 7시 ‘금요일엔 함께하렴’이란 기억시 낭송회가 열린다. 기억시는 희생된 단원고 학생 261명 중 개인기록이 수집되고 가족이 동의한 256명에 대해 이시백, 김진경, 안도현, 송창섭 등 ‘교육문예창작회’ 소속 작가 35명이 창작한 작품들로, 내년에는 기억시를 따로 전시할 예정이다.

희생된 아이들을 추억할 수 있는 소품이 가득 메운 천장 아래 전시된 홍 화백의 그림을 마주하면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가슴이 미어진다. ‘그날의 참상’이 고스란히 기록된 그림마다 아이들의 고통스런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친구와 마지막 셀카를 찍는 아이들, 원혼이 돼 세월호를 바다 위로 들어 올리는 아이들, 물이 가득한 배 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며 발버둥 치는 아이들…. 여기에 ‘얘들아 이제 그만 일어나서 집에 가자’며 차디찬 주검이 된 아이들을 끌어올리는 고 김관홍 잠수사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지켜보는 방문객들은 안타까움에 발을 구를 수밖에 없다. 또한, 희생된 아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원망하며 만나는 장면과 의문의 죽임을 당한 유병언씨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416기억저장소 원애리 문화기획팀장은 “우리는 숨 쉬는 것조차도 부끄럽고 힘들어야 했던 시간을 보내 왔다. 들숨과 날숨을 제대로 쉴 수 있는 그 날에 대한 바람을 담아 프로젝트의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원 팀장은 “그동안 ‘잊지 않을게’라는 숱한 다짐이 있었다. 그러나 참사 당일 아이들이 물속에서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생중계로 본 정부조차 그 고통을 애써 외면해왔다. 이제는 진실을 규명해야 숨통이 트이고 고통이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당한 고통을 모두 직면해야 한다’는 홍 화백의 도움을 받아 기획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참사 당시 2학년 3반 김도언양의 엄마인 이지성(416기억저장소장)씨는 “이 모든 것은 흔적을 지우고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과의 싸움이자 저항이다. 억울한 죽음과 고통을 증언하는 생생한 그림을 통해 우리는 ‘기억의 확산’을 주장하고 있다. 이제 다시 국민이 ‘기억과의 싸움’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작품을 전시 중인 홍 화백은 “고향 뒷산에 올라가면 아이들이 희생된 맹골수도가 보인다. 참사 이틀 뒤 팽목항으로 달려갔지만, 군사정권 시절 물고문을 당했을 때의 악몽에 시달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이제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며 위로만 하면 안 될 시기가 됐다. 유가족은 물론 우리 모두 슬픔에 좌절만 하지 말고 고통에 직면해야만 한다. 그래야 진상규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12년째 안산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홍 화백은 “작가의 상상력을 총동원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데 매진하겠다”고 덧붙였다. 10월 말 현재 400여명이 다녀간 이 전시회는 세월호 참사 1000일 이후에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가 한창인 경북 성주를 비롯해 전국을 순회 전시하게 된다. 문의 (031)411-7372. 안산/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들숨·날숨> 전시된 416기억전시관에서 홍성담 화백의 작품을 직접 설명하고 안내하는 도슨트 교육을 받고 있다. 416기억저장소 제공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양옥자씨가 지난 10월27일 416기억전시관에서 도슨트로 나서 홍성담 화백의 작품 앞에서 그날의 참상을 설명하고 있다. 안산/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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