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저성장의 늪에 빠지나

2016. 11. 2. 10: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현 정부들어 2%대 성장에서 못 벗어나… 일본식 장기 저성장 우려

한국 경제에 저성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분기 경제성장률이 장기간 0%대에 머물면서 저성장이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질서가 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연간 5% 안팎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정부가 직접 돈을 쓰거나 건설경기라도 띄우지 않으면 연간 2%대 성장도 버거운 상황이다. 물론 불평등과 양극화 등 과거 고도성장의 폐해가 여전하고, 성장이 삶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성장률 수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고용과 투자, 가계소득 증대 등이 선순환을 이루고 경제가 활력 있게 돌아가려면 적정 수준의 성장이 필요하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도 성장은 필요조건이다. 한국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질적 성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성장경로를 찾아갈 것인가의 기로에 놓여 있다.

부동산 거품 외에는 별다른 효과 못 내

14.8%, 13.2%, 12.5%…. 1970~80년대 기록된 우리나라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다. 그야말로 ‘고공행진’을 하던 시대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도 연 7~8%대를 무난히 기록했다. 저렴하면서도 숙련된 노동력은 기업들의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져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쌓아가는 동력이 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반도체 등 세계 시장에서 1등을 하는 제품도 속속 등장했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1998년 성장률은 -5.5%까지 곤두박질쳤다. 2000년대 후반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후 성장률은 추세적인 하향선을 그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2014년(3.3%)을 제외하고 2%대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도 정부와 한은은 2.7~2.8% 성장을 예상한다. 이것도 건설투자와 정부지출 덕에 간신히 나올 수 있는 성적이다.

이는 잠재성장률보다도 낮은 것이다. 잠재성장률은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를 최대한 사용해 물가상승 등 부작용을 유발하지 않고 최대로 이뤄낼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한은이 올해 초 밝힌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연평균 3.0~3.2%(2015~2018년)다. 한 거시경제 전문가는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는 높아야 하는데 지금은 그에 못미치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일본처럼 4만~5만 달러쯤 되는 것도 아니고 아직 3만 달러가 안 되는데 2%대 성장을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015년 1월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이후 브리핑에서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하고 있다./김기남 기자

잠재성장률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한은은 내부적으로 잠재성장률이 2%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0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9%에서 2.8%로 낮추면서 “잠재성장률이 하향 추세에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8% 성장 전망은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민간에서는 잠재성장률을 2%대로 내려잡았다. LG경제연구원은 2.5%(2015~2019년), 현대경제연구원은 2.7%(2016~2020년)로 추정한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간 정부와 한은은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재정과 통화정책을 반복적으로 써 왔다. 현 정부 들어서는 2014년을 제외하고는 추가경정예산이 매년 편성됐고, 한은도 이주열 총재 취임(2014년 4월)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1.25%까지 내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동산 거품 외에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게 대다수의 평가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빠른 시일 안에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잠재성장률은 다음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에 2% 아래로, 그 다음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에 1% 아래로 추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부터 줄어드는 생산가능인구

다른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미국은 내년까지 1%대 저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중국도 연 6%대의 중속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이미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불사하며 경기 부양에 올인했지만 0~1%대 성장률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 만한 곳이 없는 셈이다.

저성장에는 여러 요인이 중첩돼 있다. 우선 주력업종의 위세가 예전같지 않다. 과거 한국 경제의 성장을 주도했던 조선, 해운, 전기·전자, 자동차 등 ‘대표선수’들이 고전 중이다. 조선·해운업 부실은 대량 구조조정으로 이어져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 산업계의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제품 불량, 수출 감소 등으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중국 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추격 중이다. 미국, 유럽 등에서 확산되는 보호무역주의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악재다. 중소·벤처기업은 대기업 하청업체로 전락해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성장률 하락은 결국 선진국을 모방·추격하며 성장해온 ‘캐치업(catch-up)’ 성장방식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의미”라며 “이젠 우리 기술력도 선진국 수준에 이르러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13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도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올 2분기 가계부채가 있는 대출자 1인당 평균 부채액은 7206만원에 달한다(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 빚에 짓눌린 가계가 지갑을 열지 못하면서 민간소비가 부진하고, 이는 투자 감소→기업 실적 악화→고용·투자 부진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기조적으로는 인구 문제가 있다. 그동안 인구 증가는 경제발전의 동력이었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절벽’은 필연적으로 소비 침체, 성장 정체, 복지비용의 급증으로 이어진다. 일본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 경쟁력을 갖추고도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올해 정점을 찍고 내년부터는 감소세로 접어든다. 특히 30·40대 주력 생산인구가 1% 이상 줄어들면서 경제의 생산과 소비 활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역시 1995년 생산가능인구가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국면에서 부동산경기가 급락하고 가계소비가 감소했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저성장 기조가 오래가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흔히 말하는 일본식 저성장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경기 둔화가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는 만큼 성장잠재력 하락을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삼성·현대차 등 대표기업과 조선·해운 등 주력산업이 모두 좋지 않고 가계부채, 미국 금리인상, 중국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내년에는 한국 경제에 실물적인 충격이 올 것”이라며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많아 금리를 인하하면 부작용이 많은 만큼 실물경제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재정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리스크는 단기적인 급락보다는 중장기적인 성장활력 저하”라며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대책보다 지속가능하고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재정지출에서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주영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young78@kyunghyang.com>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