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보면 다 안다, 최순실 게이트 총정리 2탄 [더(The)친절한 기자들]
비선실세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이게 나라냐.” ‘헌정 사상 최대의 국기 문란 사건’으로 비화한 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습니다. 어떤 공적인 지위도 전문성도 없는 일반인이 대통령의 연설문부터 나라 정책, 국가 기밀까지 쥐락펴락했다는 사실은 충격과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안깁니다. 딸의 입시비리부터 수조원대 ‘창조경제’에 드리워진 음모, 청와대에 포진한 최순실의 사람들까지… 쏟아지는 뉴스를 따라잡기만도 벅찹니다. “상상 그 이상” “막장 드라마를 뛰어넘는다”는 말이 나오는 최순실 게이트, ‘더(The) 친절한 기자들’이 2탄을 전해드립니다.
<한겨레>는 앞서 ‘이것만 보면 다 안다, 최순실 게이트 총정리’를 통해 그동안 가려져 왔던 ‘비선 실세’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는 누구이며 어쩌다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게 됐는지 소개했습니다.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800억여원을 뜯어내 미르재단·케이(K)스포츠재단을 세웠고, 문화체육관광부를 움직여 초고속 설립허가를 받았으며, ‘창조경제’를 빌미로 정부 예산을 ‘셀프 낙찰’해 쓸어담은 사상 초유의 재단 비리 사태 뒤엔 대통령의 “친구” 최씨가 있었습니다.
‘더 친절한 기자들’은 9월26일 총정리 1탄에서 “앞으로는 청와대의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의 역할을 살피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마무리한 바 있습니다. 안종범 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이 알면서도 이들 재단을 지원했다면, 현직 대통령이 권력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기업 돈을 뜯어낸 거대한 비리로 비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라는 얘깁니다.
▶1탄 보러 가기 이것만 보면 다 안다, 최순실 게이트 총정리 1탄
한 달 여가 지난 10월말에 이르러, 마침내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은 “재단 모금은 안종범 수석이 지시했다”고 검찰에 털어놓았습니다. 검찰은 11월 2일 안종범 수석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입니다. 칼 끝이 청와대 핵심부로 향해야 할 판입니다. 얼마나 깊게 파고들 지가 이제는 관건이 될 겁니다.
■ ‘박근혜 게이트 막아라’… 새누리당이 전면에 나섰다
이승철 부회장이 ‘자발적 재단 설립’이랬다가 ‘실은 청와대 지시’라고 실토하기까지, 지난 한 달 간(9월26일~10월25일)은 재단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청와대와 흔적을 추적하는 언론 간의 맞대결이 팽팽하게 펼쳐진 최순실 게이트의 ‘2막’이었습니다.
사태 초기, 청와대를 위시한 친박계는 “최씨는 대통령 곁에 없다”고 부인합니다. 최씨가 비선이 아닌데, 어떻게 재단 기금 모금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느냐는 논리입니다. 안종범 수석도 “기업에 지시하지 않았다” “최씨를 본 적도 없다”고 부인합니다.
한편 새누리당은 국정감사가 시작된 9월26일엔 유례없는 ‘국감 거부’를 선언합니다. 국감에 재단 관련 증인이 출석하는 것을 막는 한편, 국민들의 관심을 비선실세가 아닌 ‘여야 정쟁’으로 돌리려는 의도였습니다. 심지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느닷없이 단식에 들어가며 카메라를 끌어모았습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꼬투리 삼았지만, “대통령의 심기를 언짢게 하는 최순실 문제로부터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관련기사보기 이정현 단식, 왜 감동보다 조롱이 쏟아졌을까?)
여당이 수선을 피우는 동안 청와대와 여당은 우병우 민정수석 비리 의혹, 최순실 게이트를 정리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9월28일 두 재단과 관련한 문서 자료를 없애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단독] “미르·K재단 문건 모두 없애라” 문서파쇄 증거인멸 ) 29일엔 두 재단 내사를 벌였던 청와대 특별감찰관실을 사실상 ‘해체’해 버렸습니다. (▶국감 증언 막으려 이석수 이어 특감실 전원 해직 통보) 30일 검찰은 우병우 수석 비리 문제도 ‘혐의없음’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0월2일, 새누리당은 이정현 대표의 단식 종료와 함께 국정감사에 복귀합니다. 사태의 마무리 수순을 밟는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의 파국은 국회가 아니라 다소 엉뚱한 곳에서 닥쳐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최씨의 딸, 승마선수인 정유라(개명 전 이름 유연)씨의 ‘특혜’ 의혹이 불거진 이화여대에서입니다.
■ 분노 기폭제 된 최순실 딸 이화여대 입시비리·학점특혜
이정현 대표가 방문을 닫아걸고 단식에 돌입한 26일 밤, <한겨레>는 또다른 단독보도를 온라인에 공개합니다. <한겨레> 9월27일치 1면에 실린, 최씨가 이화여대에 찾아가 딸의 제적을 경고한 지도교수에게 폭언을 퍼붓고 교체했다는 보도였습니다. (▶ [단독] 딸 지도교수까지 바꾼 ‘최순실의 힘’ ) 그림자도 밟기 어렵다는 스승을 갈아치우는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박 대통령의 측근이지만 노출을 극도로 꺼렸던 최씨가 권력의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은 항상 딸 문제였습니다. 정체 모를 비선이 박 대통령의 인사에 개입하는 거 아니냐는 의혹이 처음으로 크게 불거졌던 2014년 말 ‘정윤회 게이트’ 때도 그랬습니다. 정윤회씨는 최씨의 전 남편(2014년 5월 이혼)입니다. 당시 정윤회·최순실 부부가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딸인 정유라씨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발탁된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황이 역시 <한겨레> 보도로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 (▶관련기사 보기 ‘정윤회 파문’ 총정리 2탄-정윤회 딸 ‘판정 시비’부터 박 대통령 “나쁜 사람”까지 ) 정유라씨는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에 힘입어 이화여대에 합격합니다. (▶관련기사 보기 실세 의혹 정윤회와 최순실, 이들의 딸과 말의 비밀 )
딸이 받은 특혜 의혹을 짚는 것은, 부모가 정권 실세로서 휘둘러온 영향력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정윤회씨가 아닌 최순실씨가 비선 실세라는 <한겨레> 보도 이후, 여러 언론이 일제히 정유라씨를 주목한 이유입니다.
수상한 점은 속속 추가로 드러났습니다. 이화여대는 정유라씨의 입학 전 체육특기자 종목을 처음으로 승마까지 확대했고, 원서마감일 뒤에 받은 아시안게임 실적까지 감안해 합격시켰습니다. 입학 1년 뒤 정유라씨가 제적 위기에 놓이자, 체육특기생이 결석하더라도 학점을 주도록 학칙을 개정했습니다. (▶이대, 최순실 딸 위해 학칙 뜯어고쳤다” )
■ “총장 사퇴” 이대생들의 분노
‘승마특기생’ 문제는 입시비리에 민감한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분분한 뒷말이 나왔습니다. 9월28일 야당 단독으로 열린 국회 교문위 국감에선 이화여대가 최씨의 딸에게 특혜를 제공한 대가로 교육부 재정지원사업에 대거 선정된 것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야당 교문위원들 ‘최순실 딸 학점 취득 의혹’ 이대 현장조사 ) 특히 이대생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이대생들이 들고 일어난 배경을 알려면,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하기 전인 7월 말로 돌아가봐야 합니다. 7월30일, 이화여대에서는 300여명의 학생들이 사흘째 본관 점거농성 중이었습니다. 교육부가 30억원을 지원하는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사업에 이대가 선정됐는데, 교내 의견 수렴 없이 졸속으로 강행한 것에 항의하며 ‘총장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대학에선 종종 있는 일로, 총장이 학생들을 만나주면 자연스레 대치가 풀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이대 안에 무려 경찰 21개 중대(1600명) 병력이 들이닥쳤습니다.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단순한 학내 갈등을 이유로 이만한 규모의 경찰 병력이 학교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 ▶[연합] 이화여대 시위에 경찰 투입… “과잉진압 해외토픽감” ) 이 소식에 분노한 졸업생들마저 시위에 합류합니다. 8월3일 결국 미래라이프 단과대학은 전면 백지화됐지만, 이대생들은 학내에 경찰을 끌어들인 총장은 물러나라고 요구하며 긴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교수들까지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데도, 최 총장은 끈질기게 버텼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학 쪽이 교육부 지원사업을 따내려고 정유라씨에게 여러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겁니다. 최경희 총장 때 이대는 교육부가 돈을 주는 9개 사업에 응모해 8개를 따냈습니다. “최경희 총장 뒤에 최순실이 있었다!” (사진) 이대생들은 총장 사퇴 시위와 언론 제보를 이어갑니다.
■ 대학·기업·공무원도… 최순실 딸에 ‘벌벌’
10월11일,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누리집에 “입학처장이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며 사실상 정씨를 지목해 뽑으라고 했다”는 입시면접관의 폭로가 올라왔습니다. 12일치 <한겨레> 지면에는 정씨가 계절학기 수업에 제대로 출석하지도 않은 채 학점을 받았다는 보도( [단독] 최순실 딸 이번엔 이대 의류학과 ‘학점특혜’ 의혹 )가 나왔습니다. 중국 패션쇼에 참여하는 현장학습 수업이었는데, 정씨는 학생들과 따로 비즈니스석을 타고 보디가드를 동행한 채 움직였고 과제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담당교수인 이인성 교수는 최경희 총장의 오른팔로, 1년여간 무려 55억원에 이르는 정부 지원 연구 프로젝트를 따냈습니다. (▶정유라 학점 특혜 의혹 교수, 1년 새 정부지원 연구 3건 맡아 )
13일에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씨의 ‘엉터리 리포트’를 공개했습니다. “해도해도 안되는 망할새끼들에게 쓰는 수법”같은 비속어를 비롯해, 오타와 비문 투성이인 수준 미달의 리포트로 B학점 이상을 받았습니다. 교수들은 엉망인 리포트에도 맞춤법까지 첨삭을 해주었고, 심지어 첨부파일을 보내지 않았는데도 “잘하셨습니다”하고 답장했습니다. (▶리포트 곳곳 오탈자…이대 학점 특혜 의혹 )
대학만이 아니었습니다. 공공기관, 대기업이 일제히 비선 실세의 딸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대한체육회는 정씨의 훈련 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훈련 수당을 지급했습니다. (▶[JTBC] 최순실 딸, 승마 국가대표 훈련 ‘이상한 일지' ) 한국마사회는 정씨 한 명을 위해 독일에 승마감독을 파견 보내 나랏돈으로 ‘황제 교습’을 해주었습니다. (▶[경향]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승마관련 의혹 끊이지 않는 까닭은 ) 국내 기업이 정 선수가 훈련할 수 있도록 독일의 승마장을 인수해 제공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JTBC] ‘삼성 인수설' 독일 승마장, 모나미 측이 구입 )
공무원도 ‘파리 목숨’이었습니다. 10월12일치 <한겨레> 1면은 ‘이 사람 아직도 있어요? 대통령 한마디에 문체부 국·과장이 강제 퇴직’ 보도를 실었습니다. 과거 정유라씨의 편의를 봐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직 해임당했던 문체부의 노태강 국장·진재수 과장을 박 대통령이 거명해가며 끝내 사표를 받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게다가 ‘남북 체육교류’ 등을 내세우며 대기업 돈 288억원을 걷은 케이스포츠 재단이 한 일을 뜯어보니, 최씨의 딸 독일 전지훈련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겨레>는 10월17일치 1면에 케이스포츠 재단의 박헌영 과장 등이 재단이 설립된 2016년 1월께 최씨를 수행해 독일에서 딸의 숙소와 훈련지를 물색했다는 보도를 냈습니다. 정유라씨의 특혜 문제, 두 재단 문제 등에 <경향신문> <제이티비시>(JTBC) 등 여러 언론도 가세하며 사건 보도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 재단도 딸 위해 만들었나… 차은택·고영태 거느려 운영
10월 들어 ‘최순실의 사람들’의 윤곽도 점차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것은, 미르재단을 좌지우지한 차은택 CF감독(47)입니다. 차씨는 2014년부터 최씨와 막역한 사이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르재단의 공식적인 직책을 직접 맡지는 않았지만, 재단 이사장, 사무총장, 각급 팀장까지 모두 차씨가 아는 사람으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미르재단 사무실도 차씨의 후배인 그래픽디자이너 김성현씨의 이름으로 빌렸습니다. 김성현씨는 미르재단 사무부총장직을 맡았고, 케이스포츠 재단에 최씨의 지시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 최순실, 미르 김성현 통해 K스포츠 관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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