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제 선교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28잔입니다. 매일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셈입니다.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커피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언제일까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890년대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왔던 프랑스 신부들이 모국에서 가져와 마셨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당시 서양 외교관들은 조선 왕실과 양반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커피를 진상했고 커피의 향과 카페인이 양반들을 매혹시키면서 곧 기호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 마시던 커피는 ‘양탕’(서양인들이 준 탕국)이라고 불렸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커피에 대해 처음 기록한 이는 개화를 꿈꾸던 구한말 선각자 유길준(1856∼1914)입니다.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기도 했던 그는 유학 중 유럽을 순방하며 본 선진문물을 1895년 발간된 ‘서유견문’에 소개했습니다. “1890년쯤 커피와 홍차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됐다.” “서양 사람들은 주스와 커피를 조선 사람들이 숭늉과 냉수 마시듯 한다.”
구한말에 커피는 선교의 매개였습니다. ‘한말 외국인 기록 4권’에 의료선교사 알렌이 궁중을 출입할 때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같은 만남을 통해 선교사들은 제중원 이화학당 배재학당 설립에 고종의 윤허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최초의 한국인 커피 애호가’로 불리는 고종이 처음 커피 맛을 본 건 1895년 을미사변 당시 피신해 있던 러시아 공관에서였습니다. 고종에게 커피 맛을 보인 이는 러시아 초대 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손탁(孫澤) 여사입니다. 그가 손탁호텔에서 커피를 판 것이 우리나라 커피 하우스의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고종은 커피를 궁중 다례의식에까지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덕수궁에 정관헌(靜觀軒)이라는 사방이 트인 서양식 정자를 짓고 여기서 커피를 마시며 외국 공사들과 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커피는 단순히 즐겨 마시는 기호품이 아닌 듯합니다. 커피의 방대한 소비량과 보편성이 충분히 선교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커피미션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커피가 생산되는 나라를 선교지로 정해 커피 농민들과 아이들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선교단체, 카페를 수익 추구를 위한 장소가 아닌 만남을 위한 ‘접촉점’으로 여기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커피가 주는 선교의 유익은 많습니다. 비즈니스 선교, 소통하는 지역공동체 만들기, 윤리적 착한 소비운동, 공정무역, 다양한 문화예술 선교 등 교회카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합니다. 사회적기업 커피밀 본부장 박상규 목사는 “커피를 통해 지역사회가 소통할 수 있고, 커피숍 고용창출을 통해 관련된 사람들을 제자화하고 양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미션을 수행하려면 전문성을 갖추고 선교 콘텐츠를 구축해야 합니다”라고 제언했습니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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