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꺼지지 않는 산불.. 인도네시아는 타들어 간다

정재영 2016. 10. 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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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 현장을 가다] 기후변화·난개발이 부른 재앙.. 잦은 산불·연무로 생존 위협 / 리아우주 대기업 무분별 개발 / 주민들 자구책 마련 / 생명·삶의 터전 빼앗겨 분노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리아우주 등 6개 지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건기가 시작된 5, 6월 확산한 산불로 인한 연무(煙霧)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주변 국가로 퍼져 국가 간 분쟁으로 번질 위기였다. 지구온난화로 가뭄이 길어지면서 산불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기상청은 지난해 동남아 등에 가뭄을 몰고 온 엘니뇨가 1997∼98년 슈퍼 엘니뇨에 비견될 만큼 강력했다고 기록했다. 엘니뇨는 적도 아래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0.5도 이상 높은 상태가 6개월가량 지속되는 현상. 통상 동태평양의 페루·에콰도르 등 중남미에 폭우나 홍수가 이어지고, 서태평양의 동남아 등에는 가뭄이 발생한다.

 
인도네시아 리아우주 가루다 삭티 인근에서 지난 8월 말부터 3주간 이어진 산불로 나무들이 검게 타 밑동만 남았다. 지난해 산불로 인한 연무로 8만여 주민이 호흡기 질환에 시달린 리아우주에서는 올해도 산불과 연무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리아우=정재영 기자
특히 수마트라의 리아우주는 지난해 1997년 이래로 가장 큰 산불 피해를 보았다. 지난 9월 말 만난 리아우 주민들은 올해도 크고 작은 산불과 연무 피해가 이어졌다고 증언했다. 그들은 특히 펄프와 팜오일 농장을 운영하는 대기업과 미흡한 산불 방지 대책을 원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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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되는 산불… 난개발로 가속화

리아우 주도 프칸바루에서 차로 1시간30분가량 떨어진 가루다 삭티. 지난 8월 말 발생한 산불로 연무가 3주간 지속됐다. 한때 작은 농장이 있었지만 이젠 산불 흔적만 남았다. 아름드리 나무도 검게 타 동강 난 채 누워있을 뿐이다. 검은 땅에선 벌써 초록의 새싹이 자란다. 이 지역 토박이라는 이만 왈리는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씌웠지만, 연기가 짙어져 결국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며 “지난해에는 연무 탓에 석 달이나 학교를 쉬었다”고 한탄했다.

차로 1시간쯤 더 이동하자 물구덩이를 파 구획을 나눠놓은 큰 부지에 닿았다. 누군가 소리치며 달려온다. 땅 관리인인 나완은 “여기는 마피아 소유의 땅이니 함부러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한때 농장이었지만 지금은 주택단지 예정지라는 설명.

올해 리아우주 산불 피해는 지난해보다는 덜하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2위 배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보다 우기가 잦은 게 피해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다. 올해 도심 집값이 오르자 외곽에 작은 주택단지 개발이 늘면서 토지정리를 위해 불을 놓는 사례도 더해졌다.

리아우주 플랄라완 화재
산불 원인은 이처럼 복잡했다. 전통적 화전 농업도 원인. 하지만 대기업이 열대우림을 농장으로 개간하려고 불을 놓다가 큰 산불로 이어진 경우가 여럿 보고됐다. 식물이 불완전 분해돼 쌓인 습한 이탄지(泥炭地·peatland)에 농장을 세우려고 물을 빼면서 ‘건조한 석탄지대’가 됐고, 여기에 불이 붙자 유기물이 타면서 수개월간 화염과 연무를 뿜어댄 것이다.

비정부기구(NGO) 그린피스 프칸바루의 루스마디아 마하루딘 소장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농장 개간에 난개발까지 겹쳐 산불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펄프 생산업체 ‘APP’와 팜오일 생산업체 ‘APRIL’이 리아우주 전체 땅(850만ha)의 65%인 550만ha를 소유하고 있다”며 “주민 1000만명이 산불 피해를 막으려고 해봐야 기업이 나서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지적했다.

◆매일 불끄러 다닌 민간 소방대

산불 진화도 쉽지 않다. 통상 도심에서 떨어진 지역인 데다 산불 규모가 워낙 방대하다. 소방차는 고사하고 소화기나 불을 끌 물도 부족하다. 3년여 전 농사를 접은 맘방 하르몬은 “팜오일 농장을 하는 기업에 소방헬기까지 있지만 인근 산불을 모른 체했다”며 “결국 농장에 피해가 생길 듯하니 산불 진압에 나서더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인니법상 기업은 인근 산불을 진압할 의무가 있지만, 이를 지키는 기업은 물론 의무 불이행을 단속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토착민들 화재 진압 진압도구가 없어서 인근 4헥타가 탔다.
주 외곽의 마을공동체 부촌장인 해리(34)는 2007년 큰 산불을 경험하고서 이듬해 주민 8500명 중 43명으로 민간 소방대를 조직했다. 그는 “지난해 9000만㎡의 마을 땅 가운데 5000만㎡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했다. 밥 먹을 틈도 없이 매일 불만 끄러 다녔다”며 “순찰하기 힘든 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소방수 공급을 위해 지하수까지 뚫었다”고 뿌듯해했다. 산불 진압 도중 다친 사람도 속출했다. 다른 민간 소방대에서는 사망자도 나왔다. 그는 불씨가 깊은 인니 산불 특성상 소방 헬리콥터보다 지하수를 소방용수로 사용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해리는 하지만 “2010년 정부에 관정(管井) 공사를 요청했는데 지난해에야 일부가 지원됐다”며 “정부 정책 진행이 너무 느려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이 잃은 부모, 터전 빼앗긴 농부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도 매년 거듭되고 있다. 지난해 아들 라마단 룻피(당시 9살)를 잃은 릴리(41·여)는 “삶이 무너져내렸다”며 “지난해 같은 연무는 처음이었다”고 되뇌었다. 룻피는 연무가 심했던 지난해 10월20일 오후 열이 나고 구토가 이어져 산타마리아 병원으로 실려갔다. 산소호흡기를 달고서도 3시간여 구토하던 룻피는 결국 병상에서 숨졌다.

의사는 “폐에 연기가 가득 찼고 혈액 속 산소 농도도 매우 낮다”며 연무가 아이 목숨을 앗아갔다고 밝혔다. 릴리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국가에 책임이 있다며 지루한 소송을 1년째 진행하고 있다. 연무 피해가 극심한 지난해 9∼10월 리아우 주민 수천명은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산불로 연무가 심각했던 지난해 10월, 숨진 라마단 룻피의 가족이 폐에 연기가 가득 찬 흉부 엑스선 사진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화전으로 먹고사는 농부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산불 대책을 배척한다. 대기업의 팜오일 농장 개간이 대형 산불의 원흉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화전 단속에만 열을 올리는 등 불공평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산불 피해가 심해지자 소작농에 허용했던 ‘2만㎡ 이하의 화전’까지 금지되면서 불만이 쌓였다. 리아우주 북쪽에서 화전을 일구다 적발돼 2년의 형기를 마치고 최근 출소한 우딘 헤르만은 “소작농에게 법을 철저히 적용했지만, 당국이 진행한 대기업 조사는 대부분 흐지부지 끝났다”고 주장했다. ‘파디’(padi·쌀) 수확을 못하게 된 농부들은 다른 직업을 찾거나 인적이 드문 외지로 숨어들었다. 결국 대기업을 제어할 실질적 대책만이 수년째 계속되는 산불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릴리나 헤르만에게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는 아주 먼 얘기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산불과 연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 뭐든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별기획취재팀=정재영·이희경·정선형·조병욱·이현미·조성민 기자 climat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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