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 무시한 축구대표팀, 차두리가 그렇게 급했나

이준목 입력 2016. 10. 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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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라이선스 없는 차두리 사실상 코치로 기용, 좋지 못한 선례

[오마이뉴스이준목 기자]

전 축구 국가대표 출신 차두리가 슈틸리케호의 전력분석관으로 선임됐다. 대한축구협회는 27일 오후 2시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두리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의 전력분석관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차두리는 다음달 7일로 예정된 대표팀 소집일부터 참여하여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까지 슈틸리케호의 일원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경우 계약이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차두리의 대표팀 합류는 최근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슈틸리케 감독의 동의를 받아 차두리에게 제안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까지 독일에서 지도자 연수 중이던 차두리는 대표팀 참여를 위하여 지난 26일 귀국했다.

다만 굳이 왜 코치도 아니고 '전력분석관'이라는 직함이었을까. 이는 차두리가 소유한 지도자 라이선스와 관련이 있다. 차두리는 아직 A대표팀 코치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A급 라이선스를 획득하지 못했다.

A급 라이선스 없는 차두리, 사실상 코치 역할

차두리와 기자회견에 동석한 이용수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일단 전력분석관이라는 직함으로 돌렸지만 차두리가 대표팀에서는 실질적으로 코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차두리는 올 연말 UEFA A라이선스를 취득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축구협회는 차두리가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즉시 정식 코치로 임명하겠다는 방침이다.

차두리의 대표팀 스태프 합류 과정은 과거 홍명보(항저우), 서정원(수원)의 대표팀 코치 승선과 상당히 흡사하다. 홍명보는 현역 은퇴 이후 2005년 9월 독일 월드컵을 앞둔 아드보카트호에 코치로 합류했다. 당시 홍명보 역시 정식 라이선스를 취득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자격 시비가 일기도 했다. 2009년에는 서정원이 U-20 월드컵을 앞둔 홍명보호의 요청으로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는데 역시 라이선스를 취득하지 못해 공식 직함이 바로 전력분석관이었다. 홍명보 때의 논란을 의식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서정원은 사실상 대표팀에서 코치 역할을 수행했다.

차두리가 한국축구에 많은 업적을 남긴 레전드이고, 코칭스태프로서도 대표팀에 기여할게 많은 인재라는 사실은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굳이 이런 무리수를 두어가면서까지 차두리를 데려오는 게 급했는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코치와 전력분석관은 엄연히 다른 보직이다. 모든 이들이 동등하게 정해진 절차와 원칙에 따라 과정을 올바르게 준수하고 권한을 취득하라고 '자격증' 제도가 있는 것이다. 차두리는 절차를 밟아서 내년 이후에 당당히 정식으로 대표팀 코치로 부임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엄연히 미자격자인 차두리에게 코치 역할을 맡기기 위하여 본래 임무도 아닌 전력분석관이라는 '가짜 보직'을 위조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명백한 편법이고 꼼수다. 운전은 잘하지만 운전면허는 아직 없으니, 면허를 따기 전까지는 운전대만 잡는 대신 기사가 아니라 안내양이라고 불러달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가뜩이나 대한민국 사회에서 '특혜'가 민감한 사회적 화두가 된 상황이다. 동네 축구팀도 아니고 일국의 국가대표팀에서 무자격 코치 한명을 억지로 밀어넣기 위하여 편법까지 썼다는 걸 당당히 기자회견까지 열어서 공개적으로 호들갑을 떨어야했는지는 의문이다. 감독이나 코치도 아니고, 전력분석관 한 명을 선임하기 위하여 기자회견까지 여는 경우도 보기 드문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편법이 보편화될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차두리의 전력분석관 선임은 절차상 좋지못한 선례를 남긴 셈이다.

위기의 슈틸리케호, 그렇게 급했나

안타까운 것은 대표팀이 이렇게까지 차두리를 급하게 호출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다.  차두리는 슈틸리케호의 호주 아시안컵 멤버였고 당시 대표팀 맏형으로서 후배들을 아우르며 선수단의 존경과 신망을 한 몸에 받았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차두리에 대한 신뢰가 매우 두터웠다. 공교롭게도 차두리의 은퇴 이후 대표팀은 구심점이 되어줄 만한 리더와 베테랑의 부재가 약점으로 지목받고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아드보카트 감독이 홍명보를 코치진에 포함시킨 것도 2002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으로서 선수단 장악과 리더십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존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K리그와 유럽무대를 두루 거친 차두리는 국내파와 유럽파를 막론하고 폭넓은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어에 능통하여 독일 출신인 슈틸리케 감독과의 직접적인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이란과의 최종예선 원정에서 0-1로 패한 이후 성적부진에 이어 경기 내용에서도 선수 탓을 하는 듯한 실언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단 사이에서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하는 A대표팀 코치진 구성이 빈약하고 역할분담도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치진 보강의 필요성을 절감한  축구협회는, 선수 시절의 명성이나 경력, 감독 및 선수단과의 가교 역할 등을 두루 고려할 때 종합적으로 차두리가 최고의 적임자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편으로 이미 은퇴한 차두리의 리더십이라도 수혈해야 할 만큼  현재 대표팀이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축구대표팀은 오는 11월 캐나다-우즈벡과의 A매치 2연전을 앞두고 있다. 특히 우즈벡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은 한국축구의 월드컵 본선행과 슈틸리케 감독의 운명까지 좌우할 수 있는 단두대 매치로 평가받고 있다. 차두리는 프랑스 월드컵 경질의 아픔을 겪은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아들이자, 본인은 한일 월드컵 신화의 주역으로서 대표팀의 흥망성쇠를 모두 체험해 본 인물이다. 잘못된 절차로 지도자로서의 첫 출발에 아쉬움을 남기기는 했지만 코치 차두리가 앞으로 대표팀의 재건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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