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경인데.." 침묵한 청와대 공무원들, 왜?

이미영 기자 입력 2016. 10. 2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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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靑 직원들 "정상적 업무 불가능할 것".. 조직이론 전문가 "내부 문제 침묵, 우리나라서 강해"

[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전 靑 직원들 "정상적 업무 불가능할 것"… 조직이론 전문가 "내부 문제 침묵, 우리나라서 강해"]

25일 오후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의혹 관련 대국민사과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사진=뉴스1

"나 같으면 벌써 그만뒀을 것이다. 자기 업무가 마비된 상태에서 어떻게 자리를 지키고 있나."

전 청와대 보좌진으로 일했던 A씨는 최근 밝혀진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에 대해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 보좌진으로 청와대에서 2년 넘게 근무했다. A씨는 "물론 대통령의 뜻과 의도를 명확하게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지경까지 왔다면 실무진들의 업무가 거의 마비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심각해질 때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면 조직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봐야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의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있다. 박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과 담화문 등이 사전에 최씨에게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의 국정개입 논란은 현실화됐다. 한국 사회는 충격을 받았고 정치에 대한 불신도 커져가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직원만 수백명,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사태를 막지 못했다.

또 다른 청와대 출신 보좌관은 "대변인이나 홍보수석은 수시로 대통령과 만나 논의하는 게 현 정부 이전까지의 일하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이번 정권에서는 대변인의 발언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대통령과 직접적인 상의나 논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핵심 비서진들이 국정에서 배제됐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나왔지만 4년 동안 청와대의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왜 그동안 '침묵'했을까. 전문가들은 조직의 문제를 회피하고 '나만 피해를 보면 되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예라고도 분석한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내부자와 외부자를 철저히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며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제기한 당사자가 피해를 보는 구조가 보편적이다 보니 조직의 자정작용이 힘들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향은 엘리트 집단일수록, 조직의 이익이 클수록 더 커진다. 신 교수는 "조직의 영향력과 개인의 이익이 큰 집단일수록 그 집단 내부자 고발을 꺼려 한다"며 "위계적 특성이 강한 학계, 법조계, 언론계 등이 잘 바뀌지 않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조직의 유지 기간이 한시적이고 명예가 높을수록 더 심화될 수 있다고 봤다. 신 교수는 "조직이 나에게 높은 지위를 주고, 그 조직의 기간이 지속적이지 않다면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조직의 문제를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한 국회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조직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어느정도 있기 때문에 내부조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보단 조직을 잘 지키는 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직 내부 문제에 대한 침묵은 속을 곪게 하고 외부 자극에 의해 터지게 돼 결국 조직원 당사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는 게 문제다.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 외에도 최근 벌어진 롯데사태, 잇따라 밝혀진 검사 비리,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등도 비슷한 예다. 수장의 잘못된 선택, 조직의 문제을 막지 못하면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조직원에게 온 것이다.

한 경영학과 조직이론 전문가는 "조직의 침묵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이 우리나라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군대문화, 위계질서 등이 결합돼 내부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불이익이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강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하지만 이럴 경우 단기간에는 자신에게 보상이 따를 수 있지만 조직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개인이 생각하는 조직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영 기자 my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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